자식들이 커 가며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
나는 아들과 딸, 두 성별 모두를 가지고 있는 운이 좋은 부모이다. 그동안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느라 모아 놓은 돈도 없고, 키워 놓고 나면 내 것도 아닌데, 골고루 다 가졌다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딱 초등학생 때까지만 내 것 같았다.
아무튼 키우기가 어려워 그렇지 뭐, 낳기야 남들 다 하는 거니 여력이 닿는 한 많이 낳아야지 욕심을 부렸다. 옛날부터 자식을 농사로 비유했으니 힘든 만큼 수확도, 행복도 많아지려니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시대는 한물갔다. 그래도 다 모아 놓고 쳐다보고만 있어도 뿌듯하고 흐뭇하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에게 나처럼 살라고 하면 아무도 그 길은 택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아무리 애 낳으라고 이것저것 지원해 주고 구슬려 봐도, 어디 젊은 사람들이 인생 최대의 리스크를 짊어지려 하겠는가? 세상은 달라졌다.
아직은 독립한 아이가 하나 없어 한집에서 드글대고 살다 보니, 가정이라는 이 작은 사회에서도 남녀 갈등의 문제들이 종종 보이곤 한다. 군대를 다녀온 아들은 아직도 군기가 안 빠진 채 여동생들에게 무게를 잡고 훈수 두기가 일쑤이다.
“여자애들이 더 덜렁대고, 더 어지럽히고, 더 지저분해요. 자기 방이라도 좀 치우라고 혼내 주세요.”
그러면 여자애들도 자꾸 성별을 들먹이며 훈계를 한다고 못마땅해 죽는다. 어려선 오빠말도 잘 듣고, 잘 따르며, 잘 놀더니만 자라며 점차로 오빠를 내외하고, 지들끼리 맛난 거 해 먹고 사 먹고 따돌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학교생활을 하며 사춘기를 지나가는 이성의 교우들을 마치 외계인 취급하면서, 자기들도 보편적 병역 의무를 다하고 사회에 나가 남자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겠다고 괜히 열을 낸다.
듣고 있던 아드님 왈,
“제발 군대 들어와서 민폐 끼치고 일 만들지 마세요. 손 많이 갑니다.”
라며 가소로운 듯 자리를 뜬다. 무슨 여자아이들을 짐덩이 취급을 한다. 저러다 연애는 할 수 있을까, 장가는 갈 수 있을까 심히 걱정이 든다.
한편 여자아이들은 말한다.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남자들도 임신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해. 왜 여자들만 달마다 생리 증후군을 겪고, 결혼해서는 여자 혼자 열 달 동안 힘들어야 해? 군대 갔다 올 테니까 남자들도 애 낳아 키워 보라고 해!”
심지어는 남자들이 우위에 있는 세상에서 그들이 계속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남자가 임신할 수 있는 의학 기술은 일부러 연구하지 않는다는 세계적 음모론까지 거론하며, 그것이 마치 사실인 양 흥분을 한다.
‘오냐, 상상할 수 있는 데까지 맘껏 상상해라. 하지만 피해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폄하해서는 안 되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여성으로 태어나 임신과 출산이 반복되어 힘들었던 것과 시집살이가 어지간히 힘들었던 것을 빼면 여성으로 큰 불만이 없었다. 어린 시절엔 예쁘게 생겼다고 어른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고, 어쩌다 실수를 해도 말만 싹싹하게 하면 너그럽게 봐줄 때가 많았고, 젊어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과 호감을 많이 받았으니 이 정도면 여성으로 태어나 프리미엄급 혜택을 본 것 아닌가? 귀가 가려우면서 무수히 날아오는 돌멩이들이 감지된다. 그리고 나는 여자애들 생각과 다르게 가장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평생 돈벌이 하느라 고생하는 내 남편이 참 힘들고 안쓰럽게 보인다. 내 남편이라서, 가장이라서 손해 보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은 알아서 한다. 우리 둘 중 누가 더 고생하는지는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 아들 딸 모두가 참 어렵고 힘든 책임을 지고 태어났다. 내 아들, 딸도 비위 맞춰 가며 성별에 따른 균형을 맞춰 주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 취업, 승진, 임금에서 유리함과 불리함이 갈려 억울한 일이 생긴다면 형평성을 맞추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나만 해도 아이들을 여럿 낳고 키우느라 십수 년 경력 단절을 겪었던 사람 아니었나. 밖에서 일하지 못하는 무력감을 오랜 세월 겪은 후라 지금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양성평등에 대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만큼, 역설적이게도 남녀 간의 갈등 또한 격심한 시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서로를 비하하는 태도가 만연해지고 살면서 이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혐오 표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로를 폄하하는 낯선 신조어들은 기성세대인 우리는 그 뜻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조차 없다.
이것이 단순히 상대 성별에 대한 차별과 미움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불안한 정서들이 젊은이들에게 그대로 전가된 결과인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남녀평등 제도는 타 선진국가의 복지제도가 안 부러울 정도로 잘 설계해 놓았음에도 막상 현실에서 개인의 사정에 따라 써먹으려면 제한과 눈치와 걸림돌을 헤쳐 나가야 하는 현실 아닌가?
아무튼 남녀평등의 문제와 남녀 갈등의 문제는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내 머리로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해결 방법을 잘 모르겠으니 더 열나고 속상하다.
내 집 거실 안에서 일어나는 우리 아이들 간의 언쟁과 불신은 어쩌면 치열해지고 각박해진 생존 경쟁의 세상 속에서 ‘자신들의 고단함’을 증명하고 싶은 대한민국 젊은이들 모두의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 안에서 현대 젊은이들이 각자 마주한 현실이 각박하고 혼돈스럽고 부당하게 느껴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라고만 강요하는 우리의 책임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