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커리어 공백기
직장과 직무변동이 많았던 나는 공백기를 필수 옵션처럼 달고 다녔다. 다음 직장을 미리 확정하고 퇴사하는 게 '국룰' 인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잠시 수습으로 일했던 곳에서 잘린 후에 대안이 없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6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뜬금없이 굉장히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 무슨 일이든 미친 듯 하고 싶어졌다. 왠지 가능할 것 같고 공무원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은 그 느낌이 너무 확실해 구직 사이트를 며칠 간 뒤적였다. 그러다 모 대학 계약직 직무와 홈페이지를 보고 가슴이 터질뻔할 정도로 설렜다. 그렇게 들어간 곳이 두 번째 직장이었다(엄밀히 말하면 세 번째지만).
계약 만료 시점에 이제는 미리 직장을 구하려 구직 사이트를 뒤졌는데 정말이지 이번에는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그렇게 반년 넘게 또 쉬었다. 쉬면서 상담 쪽이 맞을 것 같아 직업 상담사 자격증을 땄고 전 직장 경험도 밑천삼아 몇 군데 회사에 지원해 합격한 딱 한 곳이 다음 직장인 모 대학이었다. 이곳에서 프로그램 기획과 학생 진로 상담을 하며 이제는 정말 미래를 미리 대비하고 싶어 대학원을 병행했다.
그런데 퇴사 후에는 또 몇 주간은 공백기였다. 대학원 남은 학기를 다니며 상담 수련을 계획한 것은 맞지만 수련처를 확정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퇴사 후 몇 주가 되지 않아 대학 센터에 합격한 것이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수련이 끝나고 대학원도 졸업한 지금, 또 다시 공백기를 맞이했다. 상담 시험 준비 중이라고는 하지만 내 몸처럼 익숙한 이 시간은 이제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된 듯 하다. 이제 반복에 지쳐서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커리어 여정을 가장 빠르게 준비하는 방법이 나에게는 공백기라고 말이다. 더 빠르면 좋겠지만 그랬다면 어쩌면 '수평 이동'만 오래 반복했을지 모른다. 이는 인간 자원의 낭비를 싫어하는 우주의 시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직무, 재량, 책임 등 어떤 면에서라도 수직 상승 이동 기간을 최소화하려면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걸려도 밀도있게 다음 코스를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