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 현대문학
허니야, 안녕? 걷기 좋은 계절 가을이야. 엄마는 매일매일 걷고, 매일매일 너를 생각한단다. 어느 주말 우리는 걸어서 도서관에 갔지. 그날 점심으로 짬뽕을 한 그릇씩 들이켜고 어찌나 배가 부른 지, 차를 타고 도서관에 가기엔 배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더구나. 엄마 혼자 걸어갔으면 돌 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쥐를 절대 보지 못했을 거야. 다리 한쪽이 잘린 채 낑낑대며 열심히 움직여 보지만 곧 죽음을 맞이할 벌도, 죽은 벌레를 부지런히 끌고 가는 개미도, 짙은 초록빛의 겉 날개를 가진 딱정벌레도 못 봤을 거야.
길을 따라 가는 동안 조우하는 온갖 우연한 만남들의 기회는 우리를 근원적인 철학으로 초대한다. 여행자는 끊임없이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어디서 왔는가? 그는 어디로 가는가? 그는 누구인가? (p101~102)
너는 특히나 쥐를 보며 무척 궁금해했잖아. ‘저 귀여운 쥐는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집에 가는 길에도 쥐를 볼 수 있을까’하고 말이야. 쥐를 보며 걸어서 도서관에 간 날, 엄마는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 이라는 책을 봤어. 책에 보니, 길을 따라가는 동안 만난 ‘온갖 우연한 만남’들이 우리를 근원적인 철학으로 초대를 한다는구나. ‘근원적인 철학’이라니, 멋지면서도 어려운 말이네. 쉽게 생각해보자. 네가 쥐를 보며 한 생각, 쥐는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 틈을 지나 어디로 가는지, 이런 것들을 ‘철학’이라고 생각하면 돼. 무언가를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생각이 철학 아니고 무엇이겠니.
걸어 다니는 동안 왜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걸까 궁금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됐어. 걷기는 우리 앞에 놓인 것들과 우리가 보는 것들에서 수많은 생각과 질문을 끄집어낸다는 것을. 혼자라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너와 함께 걸을 때는 더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 참 고맙구나.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 인정! 너와 함께 걸으면서 생각한 게 또 한 가지가 있단다. 아이와 함께 걸을 때는 시간을 넉넉히 두고 걸으라는 것. 아이들의 눈길이 닿는 곳에는 새로운 세계, 어른이 미처 깨닫지 못한 세계가 있으니까. 너와 함께 걸을 때 걸음을 재촉하지 않도록 할게. 네 눈이 내게 어떤 것을 보게 할지 어떻게 알겠니.
나는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뿌듯하게 존재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때 혼자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과 존재들 속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p24, 루소의 글 인용)
엄마는 네가 앞으로도 많이 걸어 다닐 수 있었으면 해. 이동을 위한 걷기도 좋고 걷기를 위한 걷기도 좋지. 걷는 동안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고, 세상을 향한 질문들을 많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아. 너 자신에게도 자꾸 물음표를 던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보며 너 자신을 바라보고, 그것들 속에서 너를 향한 질문들을 많이 던져볼 수 있길 바란다. 많이 걸어본 사람은 처음 보는 길, 어려운 길, 비나 눈이 내리는 길, 아주 기다란 길 혹은 짧은 길이 나오더라도 크게 당황하지 않아. 곧 정신을 차리고 그 길을 즐길 줄 알거든. 어때, 준비됐니? 참,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걸어도 좋겠지?
너무 빨리 걷거나 너무 천천히 걸으면 단절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우리는 먼저 발걸음에 다음 발걸음이 적절히 따르도록 조화를 기해야만 비로소 잘 걸을 수 있게 된다. (p88)
고백하자면, 엄마는 이 책이 참 어려웠어. 책에는 우리나라 지명이나 한국 이름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의 어딘가가 계속 나와. 도대체 어디를,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심지어 사진 설명도 다 영어로 되어 있어. (불어가 아닌 게 어디야, 작가가 프랑스 사람이거든) 중간에 확 덮어버릴까 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부분만 뽑아 읽었어.
어려운 책이지만 펼쳐보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어. 책을 보며 너와의 걷기를 떠올릴 수 있었고, 생활에 도움 주는 말을 많이 발견했거든. ‘너무 빨리 걷거나 너무 천천히 걸으면 단절이 생길 수’ 있다는 구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살다 보면, 속도라는 게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땐 속도를 조금만 늦추고 균형을 잡아보자. 모두가 빠르게 살아간다고 억지로 속도를 높일 필요는 없어. 너에겐 너만의 속도와 방법이 있으니, 너만의 것으로 참다운 세상살이를 해나갔으면 좋겠다. 아자!
걷기는 생각하는 훈련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한 순간이다. (p94)
그래서 엄마는 오늘도 걸으려고 해. 세상 속으로, 책 속으로 뚜벅뚜벅 걸으련다. 엄마는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받아야 하거든.^^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책이 길을 쉽게 빠져나가게 해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책은 곧 ‘길’이기에 책 속을 걷다 보면 그 길을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간다면 어떻게 갈 것이냐, 혼자 갈 것이냐 여럿이 갈 것이냐를 ‘내’가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 계속 걷다 보면 ‘온갖 우연한 만남’들과 마주하겠지? 그 만남들이 침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생각’을 생산해내기도 할 테지. 우리 기대해보자. 그리고 함께, 때로는 홀로 걸어가 보자. 우리의 발걸음이 닿게 될 오늘과 내일이 기대가 되는구나. 어제보다 더 사랑하고 축복한다. 아주 많이.
[허니레터] 1. 아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허니레터] 2. 생각에 잠기는 고즈넉한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