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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경량문명과 HR의 새로운 공식

by 인싸담당자 신민주

추석 연휴를 앞둔 며칠 동안, 뉴스에서는 연일 공항 파업 예고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일정이 차질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혹시 몰라 비행시간보다 네 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했죠. 그 기다림 속에서 펼친 책 한 권이 바로 송길영 작가님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이었습니다.


책을 덮는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AI는 파업하지 않는다.”
머지않아 이 공항에서도 파업이나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자동화 시스템이 대부분의 역할을 맡게 되겠죠.
그럼 사람은 어디에 서야 할까요?
‘일’이 줄어드는 세상이 아니라,
‘판단’이 남는 세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책은 그런 변화를 문명 단위로 해석합니다.
“경량문명”, 즉 불필요한 무게를 덜고 판단과 연결의 속도로 경쟁하는 시대.
그리고 HR의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우리 조직문화 담당자에게도 세 가지 명확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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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조의 경량화, 대마필사: 거대함의 시대는 끝났다


‘대마필사, 거대하면 죽는다.’


이 문장은 규모의 경제가 더 이상 성장의 방정식이 아님을 선언합니다.
이제는 인원 수가 아니라, 인당 시가총액이 경쟁력의 지표가 되는 시대입니다.
많이 가진 조직이 아니라, 가볍게 움직이는 조직이 더 높이 납니다.


책에서는 이를 클러스터라 표현했습니다.
필요할 때 빠르게 뭉치고, 목적이 끝나면 흩어지는 조직.
조직의 밀도를 낮춰 변화의 공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조직이죠.


부서 중심 평가에서 과제 중심 평가로
직책 중심 위임에서 문제 중심 권한으로
고정된 팀에서 프로젝트 단위 결합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결국 조직의 경쟁력은 규모가 아니라 결정의 속도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는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빨리 전환하는 자’가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2) 역할의 경량화, 에이전시의 몰락


두 번째 메시지는 바로 ‘에이전트의 등장, 에이전시의 몰락’입니다.
AI가 반복적인 중개 업무를 대신하면서
인간의 가치는 판단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죠.


2024년, 아디다스코리아가 수십 개 대리점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하면서 공정위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계약 분쟁이 아니라,
중개 구조가 무너지는 징후였습니다.
직접 고객을 만나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판단의 단계를 줄이는 방식으로 구조를 경량화하고 있죠.


이 흐름은 채용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2025년, 쇼피파이의 CEO 토비 뤼트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AI로 대체할 수 없는 일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람을 뽑지 않는다.”
AI는 일을 ‘하는 방법’을 대신하지만,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이제는 판단을 시험하는 채용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AI가 ‘정답’을 알려줄 수 있는 세상에서
조직은 판단의 철학을 가진 사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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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화의 경량화, 위대한 쇼맨 리더십


세 번째 메시지는 조직문화 담당자인 저에게 가장 강렬했습니다.
“조직문화의 새로운 역할은 엔터테인먼트다.”
이 말은 단순히 ‘재미있게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경량조직에서는 위계보다 몰입의 무대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무대를 설계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입니다.


책에서는 영화 '위대한 쇼맨'을 비유로 들었습니다.
주인공 ‘바넘’은 자신이 무대의 주연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을 빛나게 만드는 무대를 설계하죠.
그의 진짜 재능은 노래가 아니라, 연출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리더의 덕목입니다.
리더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무대 감독,
관리자가 아니라 에피소드의 큐레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조직문화 담당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몰입의 장을 여는 연출자가 되어야 합니다.
각자의 능력이 빛나도록 설계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줘야 합니다.
결국 조직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스토리의 집합체가 되어야 합니다.



4) 벤치마크가 아닌 자기 발전의 상시화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말합니다.
“긴 비행을 위해선 짐을 줄여야 한다.”
경량문명은 무거운 것을 더하는 문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걱정과 관성을 덜어내는 문명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있는 것을 가져오는 벤치마크의 자세가 아니라, 우리가 늘 하던 일을 다르게 바라보는 자기 발전의 태세를 상시화 하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개혁에는 반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시기를 뚫고 나왔기에
우리는 지금의 문명 속에 있습니다.


성장은 언제나 불편함을 동반합니다.
경량문명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조직을 가볍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고의 무게를 덜어내는 일, 그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던진,
새로운 HR의 공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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