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해드릴게요의 함정. 우리는 왜 거대 아기가 되었나?

영화 <월-E>가 가르쳐준 '자생력'의 비밀

by MJ

어느덧 2월이다. OTT 플랫폼 디즈니플러스가 '2월'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뒤집으면 '월이(WALL-E)'가 된다는 재치 있는 홍보 문구를 내걸었다. 그 문구에 이끌려 오랜만에 픽사 애니메이션 <월-E>를 다시 보았다. 귀여운 로봇의 모험담인 줄 알았던 이 영화, 실무자의 눈으로 다시 보니 소름 돋는 조직 관리의 경고장이었다.


영화 속 지구는 쓰레기장이 되었다. 인류는 청소 로봇에게 지구를 맡기고 거대 우주선 '액시엄'호를 타고 떠난다. 애초 5년 계획이었던 호화 크루즈 여행은 700년 동안 이어진다. 충격적인 것은 우주선 속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걷지 않는다. 공중부양 의자에 앉아 눈앞의 스크린만 바라본다. 식사도, 옷 갈아입기도 버튼 하나면 로봇이 다 해준다. 그 결과 인류는 뼈가 퇴화하고 살이 찐 고도비만 상태가 되어,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없는 '거대 아기'가 되어버렸다.


이 장면을 보며 대학교 4학년 시절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넓은 캠퍼스를 걸어 다니기 귀찮아 큰맘 먹고 오토바이를 샀을 때다. 강의실 이동이 너무나 편했다. 땀 흘리며 언덕을 오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대가는 정직했다. 걷는 시간이 사라지자 난생처음으로 살이 찌기 시작했다.


몸이 둔해진 건 확실했다. 축구를 좋아했지만 다친 적이 없었는데,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축구하다 다리를 다친 것도 바로 그 시기였다. 오토바이의 편안함에 길들여져, 정작 위기 상황에서 내 몸을 지탱할 기초 근력과 민첩성을 잃어버렸던 탓이다.


우리 조직은 어떤가. 혹시 구성원들을 '액시엄 호의 승객'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ㅇㅇ님은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복잡한 판단은 내가 할게."

"실수하면 안 되니까 모든 프로세스는 매뉴얼 A부터 Z까지 정해진 대로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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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고, 시스템이 정해진 답만 떠먹여 주는 환경은 편안하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구성원은 '고민하는 근육'을 쓸 일이 없다. 결국 평소에는 일을 잘하는 것 같아도, 정해진 매뉴얼이 없는 돌발 상황이 닥치면 혼자서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부상을 입게 된다. 즉, '업무 비만'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 선장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처음으로 안락한 의자에서 내려온다. 비틀거리고 넘어지지만, 로봇의 부축을 뿌리치고 두 다리로 선다. 그리고 외친다. "난 생존(Survive)하고 싶은 게 아니야, 살고(Live) 싶다고!"


단순히 시스템에 얹혀가는 것은 생존일 뿐, 주체적인 삶이 아니다.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고민한다. 우리의 역할은 구성원들에게 최고급 안마 의자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의자를 치워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직접 걷게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일 근육'을 키울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진짜 구성원을 위한 복지가 아닐까.


2월을 맞아 자문해 본다. 나는 지금 동료들에게 오토바이 키를 건네고 있는가, 아니면 튼튼한 운동화를 권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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