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1
일본 교토
교토 헤이안진구 근처의 '무린안'. 시가지 내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무린안 안으로 들어가니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어 관광객도 많지 않았고요. 차가운 다다미 방 위에 곱게 깔린 전기장판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니, 문득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라는 그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오래전부터 일본식 정원을 꼭 한 번 보고 싶다던 엄마도 무린안이 무척 마음에 들어 보였습니다. 작지만 수려하고 고즈넉한 곳이었거든요. 우리나라 정원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 자연스러운 미(美)를 추구했다면, 일본의 정원은 인공의 미를 극대화한 느낌이었습니다. 자연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주인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까요, 마치 산과 호수를 작은 정원으로 축소한 모습이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나무 하나에 인부 두 명이 들러붙어 나뭇잎 한 장 한 장을 정성스레 다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린안은 조선 침략에 앞장섰던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별장입니다. 별장 옆에는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이 위치했는데, 이곳은 야마가토 아리토모, 가쓰라 타로,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러일전쟁 전 일본의 외교 방침을 최종적으로 정했던 '무린안 회의'가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러일전쟁은 조선 침략에 발판을 마련한 중요한 초석이었다고 하죠.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들인 우리는 400엔의 입장료를 내고 원수의 고요한 별장에 방문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이자 관광지인 동시에,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교토는 1000년 넘게 일왕이 살던 일본의 수도였고, 지금도 2000여 개의 사원과 신사가 즐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 침략을 주도하고 임진왜란의 주역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교토는 4년 전 홀로 여행을 떠났을 때 기억이 너무도 소중해 퇴사 후 첫 번째로 다시 찾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선 이상하게도 가끔씩 미묘하고 때로는 죄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무린안처럼 아픈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을 방문했을 때, 예를 들면 도시샤 대학 교정에 꽃으로 둘러싸인 정지용과 윤동주 시인의 시비라던지, 4만 여 개의 귀와 코가 묻혀 있는 귀무덤을 방문했을 때라던지.. 심지어 카모가와강을 마주칠 때면 꼭 한 번씩 정지용 시인의 시 '압천'(카모가와강)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무린안의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초록잎들 사이로 조금씩 빨갛게 물드는 나뭇잎, 열매처럼 맺힌 물방울, 타닥타닥 비가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노부부의 뒷모습.. 하지만 동시에 이런저런 생각들도 머리가 어지럽기도 했습니다.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국인인 우리가 여기를 관광 오는 게 맞는 걸까?'
엄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일본에 오면 안 되지. 특히 교토는 더더욱. 아는 게 중요하지, 사실을. 그나저나 이 정원 참 예쁘다.'
저는 특별히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복잡한 한일관계에 대한 풍부한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끊임없이 자문하고 공부하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역사와 사실을 제대로 알고 마주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토 여행을 떠나기 전, 서점에 들러 교토 역사책을 훑어본 건 뭔지 모를 죄책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억하고 배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수가 두 발 쭉 뻗고 여흥을 즐겼을 별장에서, 한국인인 저는 이런 생각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압천(鴨川) 십리(十里)ㅅ벌에
해는 저믈어…… 저믈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쌍 떠ㅅ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압천(鴨川) 십리(十里)ㅅ벌에
해가 저믈어…… 저믈어……
-정지용, 압천(鴨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