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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Dec 11. 2017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생애 가장 따뜻하고 차가웠던

생에 가장 따뜻하고 차가웠던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파란색은 오묘한 색이다. 이 영화에서 파란색은 가장 따뜻하면서도 신비로운 색이었다가, 나중에는 그 무엇보다도 차가운 색이 되어 버리고 만다. 파란색은 채도를 달리하며 사랑과 이별을 열정적이면서도 담담히 표현한다.


아델이 엠마를 처음 만났을 때, 엠마의 머리색은 햇빛을 받아 신비롭게 빛나는 푸른색이었다. 엠마가 고른 치열을 드러내고 활짝 웃을 때마다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대충 자른 듯한 푸른 머리와 푸른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이 난다. 아델은 푸른색을 품은 엠마를 사랑하게 된다.  


동시에 아델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다. 영화 초반부에 아델이 겪는 혼란스러움과 이로 인한 친구들과의 갈등이 드러나긴 하지만, 영화는 아델의 성 정체성 자체에 중점을 두진 않는다. 영화 중반부부터 후반부는 오롯이 아델과 엠마 두 사람의 사랑과 권태, 이별 이야기로 완연히 채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좋은 영화가 그렇듯,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자와 여자가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두 연인의 처음과 끝을 따라가는 여정일 것임으로.

한때 아델과 사귀었던 토마는 잘생기고 다정한 남자 친구였지만, 아델과는 많은 것에서 부딪혔다. 독서를 좋아하는 아델과 달리 토마는 한 번도 끝까지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음악 취향도 달랐다. 토마와의 잠자리도 아델의 공허함을 채워주진 못했다. 


엠마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은 사랑에 빠진 아델에게 어떤 경이로움과 흥분을 선사한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두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까지, 엠마의 신비로운 푸른빛은 엠마를 서서히 잠식시킨다. 아무렇게나 자른 푸른 머리는 어쩐지 아델의 대충 묶은 머리와 꼭 닮아 있다. 두 사람은 낙엽이 흩뿌려진 벤치에서 책과 예술 그리고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델의 공허했던 정신까지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사르트르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존재가 본질을 우선한다.' 우리가 사랑의 본질을 '남과 여'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사회적으로 사랑과 연애는 그런 식으로 정의될 것이다. 그러나 아델과 엠마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장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각자 직업을 가진다. 자유분방했던 엠마는 순수 미술 화가가 되고, 반대로 안정감을 추구했던 아델은 선생님이 된다. 늘 서로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던 두 사람의 눈빛은, 어느새 자주 어긋나고 있다. 엠마의 지인들로 가득 찬 파티에서 아델은 열심히 음식을 나르고 때때로 따스한 환대를 받기도 하지만, 정작 엠마는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해서) 아델을 외롭게 둔다. 따뜻하게 빛나던 엠마의 푸른 머리는 어느새 차분한 갈색 머리로 돌아와 있다. 

어린 시절, 아델은 파스타를 좋아했고 엠마는 굴을 좋아했다. 아델이 조금만 용기를 내고 노력하면 굴을 먹을 수 있었지만, 사랑은 음식 취향처럼 간단하고 쉬운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은 서로의 어긋남에 조금씩 지쳐 가고 만다. 


아델은 처절하게 울며 말한다. 너를 사랑하지만 너무 외로워서 다른 남자와 잤어. 엠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델을 쫓아내고, 아델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밤거리를 헤맨다. 곪았던 상처가 아프도록 터지고, 사랑도 그렇게 저물고 만다. 아름다웠던 푸른색이 이제는 시리도록 차갑기만 하다.

세 시간의 러닝타임임에도 엔딩 크레딧이 내려갈 때쯤 내내 긴장했던 몸이 한순간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이 아름답고 처절했기 때문일까. 밀도 높은 사랑 이야기를 함께 체험한 느낌이었다. 이 영화의 원제가 <아델의 삶>이고, 아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나 또한 아델의 시선으로 영화를 따라갔던 것 같다. 다음에 한 번 더 볼 기회가 생기면 엠마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해보고 싶기도 하다. 


아델의 푸르렀던 삶이 다른 색으로 물들 수 있기를 바라며.


이미지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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