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란치 溥爛齒

넓고 찬란하게, 나를 위한 시간

by 엠제이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단어였다. 하지만 내 삶엔 없던 단어이기도 했다 — 브런치.

보기만 해도 마음이 느긋해지는 단어. 아침과 점심 사이, 잠깐 멈춰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말.

잡지 속 사진, 드라마 장면, 친구의 SNS 속에서만 존재하던 풍경이었다. 내 하루에는 그런 여백이 없었다.


육아와 업무 사이를 종종거리며 지나온 지난 몇 년간, ‘브런치’는 나에게 단지 ‘언젠가’의 단어였다.

지난주, 나는 회사를 떠났다.

오랜 고민 끝에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아이들보다 내 커리어 개발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지금은 내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브런치(Brunch)’는 19세기말 영국에서, 늦게 일어난 이들을 위한 느긋한 아침 겸 점심 식사로 시작되었다.

종종 일요일 아침, 전날 밤 과음으로 인한 숙취를 달래는 해장용 식사이자, 가벼운 술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모임이기도 했다.

이런 문화가 점차 퍼지면서, 지금은 전 세계 어디서나 ‘일상 속 작은 사치’이자 ‘주말의 여유’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나는 이 단어를 한글식 음절로 나누어 상상해 본다.

부(溥) – 넓게 퍼지는 여유

란(爛) – 찬란하고 다채로운 감각

치(齒) – 입으로 느끼는 즐거움

‘브런치’를 이렇게 풀어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넓고 찬란하게 맛보는 시간 — 부란치(溥爛齒).

그리고 며칠 전, 나는 그 시간을 내 삶 속으로 조용히 초대했다.


오전 11시,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던 날.

지인과 함께 작은 레스토랑에 앉아, 던저니스 크랩과 관자가 들어간 베이 바텀 오믈렛을 시켰다.

진하게 내려진 커피를 앞에 두고, 우리는 몇 달을 압축한 듯 쉴 새 없이 수다를 나눴다.

일 이야기, 아이 이야기, 웃음 섞인 사소한 농담들까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데이트 중인 젊은 커플, 혼자 여유를 즐기는 중년 여성,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점심시간을 맞아 잠시 들른 직장인들…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각자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풍경이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몰랐던 시간이었다.

늘 정신없이 지나치기만 했던 한낮의 레스토랑, 거리, 공원.

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풍경 안에 들어선 사람이 되었다.


식사 후엔 근처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잔잔한 바람, 푸르게 반짝이는 나무 잎, 벤치 위에서 졸고 있는 노인,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소중하게 자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를 걷는 내가 조금 낯설었고, 그래서 더 좋았다.


앞으로 매일매일, 나만의 부란치(溥爛齒)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까.

꼭 오믈렛이나 커피가 아니어도 괜찮다.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마음이 찬란해지는 순간이면 충분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햇살을 들이는 일,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는 일,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만을 위한 숨을 고르는 일.


삶은 여전히 분주하겠지만

나는 잊지 않으려 한다.

그날의 오믈렛과 햇살,

그리고 평범해서 더 특별했던 한낮의 풍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