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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니 Jan 25. 2023

그 꼴을 확인하다

바람둥이와 매너남의 그 어디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남편의 휴대폰을 보게 된 건 남편의 본모습에 눈뜨기 시작해서부터이다. 눈치가 없는 나는 그 눈이 참으로 늦게 뜨였다.


남편은 매너 있는 남자다.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다. 여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쯤 되면 바람둥이인지 그냥 매너가 좋은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연애 때는 남편의 그런 모습이 날 사랑하기에 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계산할 틈 없이 그런 모든 모습이 나에게만 하는 남편의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결혼한 지 19년 차.

남편은 여전히 친절하고 매너 있다.

그리고

..... 

다른 여자에게도 친절하고 매너 있다.


언젠가부터 남편의 그런 모습이 날 사랑하기에 특별히 나온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온몸에 매너를 장착해 나온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누굴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우러나오는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논점이며 여기에는 내가 주장하는 관성의 법칙이 등장한다.


사랑의 호르몬 분출이 진작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관성의 법칙대로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간 남편의 친절함과 매너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남편의 타고난 성품(?)을 알기 전까지 난 질투했다. 그가 베푸는 행동들이 사랑에서 우러나왔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남편은 절대로 누가 보기에도 잘생기고 멋들어진 그런 사람이 아님을 밝히고 싶다. 


하지만 유독 타인 특히 젊고 예쁜 여자에 대한 남편의 그런 매너 있는 친절한 행동이 꼴 보기가 싫었다. 그 꼴이 싫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휴대폰을 뒤져 그 꼴 보기 싫음을 굳이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여사친과의 대화를 보고 이렇게 친절하게 왜 쓸데없는 얘기를 하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고 사소한 일에 왜 연락을 하는지 꼬치꼬치 묻기도 했다. 남편의 사생활은 그렇게 파헤쳐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남편은 휴대폰의 패턴을 바꾸었고 다시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 후 오랫동안 난 남편의 휴대폰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남편의 사생활은 쌓여갔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눈치 빠른 둘째가 와서 속삭였다.


“아빠 패턴 M이야.”


남편의 패턴을 다시 알게 되었지만 바로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확인하지 못했던 그 기나긴 기간 동안 휴대폰은 남편의 분신이 되어 있었다. 화장실은 기본이요. 잘 때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가 살짝 잡을라 치면 번쩍 깨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휴대폰이 켜져 있다. 너무 환하다, 소리가 난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서 당신의 휴대폰에 이제 관심 없음을 표시했다. 그리고 전에 비하면 그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그 몇 년 사이 나이를 먹어 내가 질투할 에너지가 없다고 느껴졌다.

솔직히 진짜 그런 줄 알았다.



어느 날 우연히 부엌 싱크대 위에서 충전 중인 남편의 휴대폰을 봤다. 그동안은 패턴을 모르기에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패턴을 알고 있는 내 손은 이미 M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환하게 열렸다. 노란색 카카오톡을 여는 순간 아직 읽지 않은 빨간 숫자들이 보였고, 대화 리스트를 쭉 보며 읽어야 할 내용을 재빠르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앗!

남편의 매너가 발휘되는 그 꼴을 찾은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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