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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니 Mar 04. 2023

전쟁의 시작

과거 몇 달 전인지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안나는 그날. 남편과 나는 일대일  pt에 대해 얘기를 했다. 메인 주제는 ‘젊고 멋진 남자 선생님께 pt를 받아도 되는가’였다.

어떤 동네 엄마는  pt선생님과 점심도 먹고 친근한 관계를 유지한다에서부터 강남 산다는 친구의 친구(유부녀이다)는 피티 선생님과 사귄다는 확인되지 않은 찌라시 같은 얘기들을 했다. 남편은 당신은 절대로 안된다며 일대일  pt를 하려면 여자 선생님이 많은 필라테스가 좋을 것 같다며 강추했었다. 심지어 당시에 본인이 여자 선생님께 개인 pt를 받으면서 말이다. 게다가 회사 동료가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데 좋다고 했다면서 본인도 이제 웨이트에서 필라테스로 바꿔 운동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약이 확 올랐다. “그럼 난 안되고 당신은 된다는 거야?” 

남편 왈 날 사랑하기에 남자 선생님과 하는 운동은 허락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가끔씩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방해할 때는 정말 남편이 밉기에 똑같이 해주고픈 복수의 마음이 하늘을 찌른다. 언젠가는 하고 말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남편은 아마도 내가 그 선생님들과 바람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과대평가에 배꼽인사라도 해야 할 판인가? 그게 아니라면 사람은 자기 시야와 생각안에서 판단한다는데 본인이 여자 선생님들을 보며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물론 난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나도 당연히 본인과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었던 걸 수도 있다.

남편은 확실히 여자 선생님을 더 좋아한다. 그 이유는 나도 알겠고 이해한다. 솔직히 남편이 여자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받아도 전혀 상관없다. 남편을 믿어서라기보다는 여자  선생님을 믿는다. 하지만 남편이 나의 남자피티샘을 반대하는 이상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랄까?
나도 한마디 했다. “당신도 절~~~ 대 안 돼.”

이런 대화가 오고 간 이후 또다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난 일대일 필라테스에 이어 그룹 필라테스까지 하며 필라테스가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에 대해 남편에게 얘기했다. 마지막엔 “당신은 절~~~ 대 안 돼”라는 말로 약 올리듯 마무리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무뎅이 검은 빨래를 하고 정리를 하는데 그 빨래 더미 속에 검은 덧신처럼 생긴 그러나 덧신은 아닌 양말이 보였다. 바닥에는 아주 큼지막하게 미끄럼방지 실리콘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처음 보는 괴상망측한 양말이었다.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들 속에서도 유난히 튀었던 양말, 크기도 하고 처음 보는 양말이어서 더 그런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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