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연곡 솔향기 캠핑장] 예약 취소가 된 자리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캠핑장 바로 앞에는 잠실 종합운동장 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고 하늘과 맞닿아 더욱 푸르게 보이는 바다가 있기에 주말에는 항상 예약이 가득 차 있는 곳이다. 기쁨도 잠시 나는 서둘러 모임 공지를 작성해야 했다. 내가 다니는 산악회 사람들은 주말마다 전국을 다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일정이 비어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레트로스 허브쉘터 빅
공지글의 처음은 나의 멋진 텐트 사진을 올리고 이렇게 아늑하고 멋진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라는 강력한 메시지 던진 후 본문 내용으로는 나와 함께 강릉에 간다면 맛있는 음식과 다양하고 재미있는 볼거리로 가득하다 라는 공지 글을 올렸다.
아마도 강릉 캠핑 공지글은 나와 함께 가고 싶은 사람들의 예약 전쟁터 가 될 것이다.
{참석자 0명}
결과는 참담했다. 0명이라니. 멍하니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내 안에 천사와 악마가 싸우듯 {가지 말까?}와 {혼자 라도 괜찮아! } 이 두 문장의 치열한 혈투가 시작되었다.
겨울 바다 , 겨울 대방어회, 동해의 백골뱅이, 양미리 구이, 정말 가고픈 고래 책방, 등등 강릉에 가고 싶은 이유를 쭈욱 늘여놓아 보았다. 그리고 만약 간다면 감당해야 될 돈의 액수, 혼자 식당에 갔을 때 뻘쭘함 , 혹은 겨울바람처럼 내 뺨을 차갑게 후려칠 쓸쓸함, 등등 혼자 간다면 감당해야 할 것들도 나란히 적어놓아 보았다. 출발 직전까지인 금요일 밤까지도 난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꿔주는 법] 중
금요일 밤 잠들기 전에 읽던 책 [일기를 에세이로 바꿔주는 법]에 나오는 한 구절에 나는 강릉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행복해서 캠핑을 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싶어서 캠핑을 가는 것이니까.
생각해보니 혼자 떠난다면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코스 계획도 가능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는 것도 가능하다. 내가 산책하고 싶을 때 걸을 수 있고 , 책을 읽고 싶다면 책을 읽어도 된다. 취침 전에 꼭 샤워를 안 해도 욕할 사람 하나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저절로 나에게 말할 수 있었다.
[혼자여도 괜찮아!]
그렇게 토요일 아침 양주시를 출발해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강릉항이었다. 안목항이 강릉항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강릉항(안목항) 백사장 풍경
안목 커피거리 조형물
강릉항의 첫인상은 프랑스의 파리 거리처럼 쭈욱 이어진 커피숍들과 파란 하늘빛 닮은 바다, 그리고 왁자지껄한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와 같이 혼자 인 사람은 없나 두리번거렸지만 나만 빼고 전부 삼삼오오 일행들이 있었다. 혼자이지만 당당해져 보자. 강릉에 혼자 왔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혹은 나 혼자 온 걸 알아채더라도 날 불쌍히 볼 사람은 없다. 책 [미움받을 용기]에 나오는 구절을 되새김 질 해보았다. '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나뿐이다.'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싶은 것에 집중하면 된다. 그것이 이번 여행의 첫걸음이지 싶었다.
겨울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솜이불 같이 포근한 햇살과 발등 위로까지 올라와 신발 속으로 들어간 모래사장의 모래의 촉감, 바다 공기 속에 스며있는 듯한 커피 향기를 즐겨가며 걸었다. 실제로 우리 집 강아지 마음이 처럼 킁킁 거리며 커피 향기를 맡아보지는 않았지만… 해변에 많이도 설치되어있는 "나와 함께 사진 찍어주세요."라고 말하는듯한 조형물들의 사진도 찍으며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서 강릉당의 커피콩 빵을 사러 게으르게 해변을 걸었다.
커피콩 빵이 연상되는 조형물
강릉다아 안목해변점
불과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30분이나 걸었으니 이 얼마나 게으르단 말인가. 오늘은 배고픔보다 햇살의 게으른 따스함이 더 좋았다.
커피콩 빵 은 5개 5,500원, 한입에 1,100원이다. 커피는 따로 사지 않았다. 패딩의 커다란 주머니 속에는 카누가 두 봉지나 들어간 텀블러가 있기 때문이었다.
커피콩 빵
강릉당 커피숍 테라스에 앉아 커피콩 빵 딱 두 개만 맛보았다. 커피의 진한 갈색 이 돌며 커피콩 모양을 흉내 내어진 이 빵 속에는 커피가 아닌 팥이 들어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들어있지 않는 이유와 같은 것이겠지. 나머지 3개는 내 동생, 그리고 함께 일하는 형님 몫으로 남겨두었다. 선물용으로 포장해 가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내 지갑은 쉬이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먹고 나니 더 배가 고프다. 강릉에 오면 가장 먹고 싶었던 방어회, 와 백골뱅이를 사러 가려면 다시 30분을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커피콩 빵이 들어있는 봉지를 휘휘 흔들며 다시 백사장을 걸어간다. 쪼그려 앉아 있는 연인들을 피해 걷는데 조개껍데기가 내 발을 붙잡았다.
[인호(하트) 수연]
앳되 보이는 커플이 쪼그려 앉아 조개들을 열심히 모아 글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오그라드는 손을 꽈악 쥐고 와락 달려가 발로 조개들을 휘휘 저어놓고 싶었지만 꾸욱 참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서로 깔깔 대며 셀카를 몇 장씩이나 찍고 커플은 사라졌다.
찬스다. 얼른 달려가 두 이름을 지웠다. 발로 휘휘 지운 것이 아니라 내 두 손으로 조개껍데기를 싸악 싹 모으며 지웠다. 그리고 나도 이 오그라드는 글씨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문선(하트)]
방금 전 여자아이는 참 예쁘게 잘 그렸는데 내가 그린 조개껍데기 글씨는 나 필기체 마냥 삐뚤 못난이 같다. 이런 게 더 이쁜 것이 수도 있으니 괜찮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니까. 나도 열심히 이각도 저 각도로 사진도 찍고 [문선(하트)] 그림과 함께 셀카도 찍고서 손을 휙휙 저어 지워버렸다. 다른 사람의 발 혹은 손으로 지워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빠른 걸음으로 해변을 빠져나와 회센터에서 8kg급 대방어 회 와 쥐치 4마리 를 6만 원에 구매를 하고 백골뱅이 한소끔 서비스로 받아왔다. 오늘 저녁은 아주 맛날 것이다.
강릉항에서 30분을 달려 캠핑장에 도착했다. 오늘 내 집을 지을 터를 찾아내곤 이내 텐트 설치를 시작했다.
10 각형의 그라운드시트를 깔고 텐트에서 바라볼 가장 탁 트인 방향을 골랐다. 내 텐트는 3창이 가장 매력적이기에 신중해야 했다. 텐트의 방향을 결정했으니 어서 오늘의 집을 만들자. 집의 뼈대인 메인 3 폴대를 텐트 스킨에 고정시키고 팔뚝에 힘들 꾸욱 주어 밀어 올리면 텐트가 자립을 한다. 자립을 하고 나면 나머지 7개 폴대를 착착 결합하여 메인 폴대 구멍에 끼워 넣어주면 집 기둥이 완성되는 것이다. 기둥이 완성되었다면 스킨 위 별처럼 많이 달려있는 훅을 폴대에 결합시켜주면 오늘의 집이 탄생한다.
허브쉘터 빅 피징 완료 된 모습
힘겨운 건축이 끝났으니 이제 인테리어를 시작해보자. 우전 바닥부터 시작했다. 그라운드시트 위에 보들보들 한 촉감 가졌지만 엄청 무거운 카펫을 텐트 모서리 각에 딱 맞추서 깔아준 후 텐트에 투명색 우레탄 창문을 달아준다. 작은 내 키를 도와줄 파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장에 9개의 예쁜 조명을 설치해주고 따뜻한 공기가 바닥으로 올 수 있게끔 팬도 하나 달아주었다. 에어매트가 빵빵해질 수 있게 공기를 넣어주고 그 위에는 누우면 잠이 솔솔 올 것처럼 포근해 보이는 아이보리색 이불을 덮어 주었다. 침대가 완성된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살림살이들을 예쁘게 올려놓을 가구들을 설치하고 커튼도 달아주면 인테리어가 끝이 난다.
쉘터 내부 모습
텐트를 따뜻하게 만들어줄 등유난로에는 매캐한 등유도 하나 가득 넣어준 뒤 불도 당겨놓았다. 전부 하고 나니 나만의 호텔방이 생긴 것 마냥 아늑했다. 힘든 만큼 만족스러웠다.
텐트 풍경
가장 중요한 아이템을 빼먹었다. 오늘 내 여행의 이유 이자 가장 하고픈 책 읽기.
오늘 독서 할 책
책을 예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사진 한 장 후다닥 찍는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내가 지금 내 기분을 나누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혼자 왔지만 이 작은 휴대폰만 있다면 나는 수백 명의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과 같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 카페에 사진을 업로드한다. 솔직히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이거 봐! 나 혼자서 이렇게 예쁜 집을 만들고 그곳에서 나는 우아하게 독서를 할 거야. 부럽지?"라고 말이다. 물론 지금부터 책을 읽을 것은 아니다. 지금 나는 배가 너무 고프기에 테이블 위 책 사진을 찍은 후 바로 휙 책을 내려놓았다.
울긋불긋 한 대방어회 와 꼬도독한 식감의 쥐치 회 마지막 멍게까지 올려놓았다. 다른 반찬이 필요하겠는가? 회간장, 초장, 고추냉이 세가지만 있다면 아무리 많은 양의 회라도 다 먹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대 방어회, 쥐치 회, 멍게
대 방어회, 쥐치 회
“여행의 본질이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의 이유] 중 나오는 말인데 오늘 나의 여행은 시련 하나 없이 너무 성공적이다. 엉뚱하게도 내가 이번 여행의 주인공이 아닌 것 아닐까 라는 의문도 잠시 해보았다.
"이렇게 시련 하나 없다니."
조금은 섭섭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 가장 성공한 것을 꼽아보자면 바로 이 방어회와 쥐치 회, 그리고 백골뱅이를 꼽아본다. 기름진 방어회는 입에서 살살 녹아내리고 지취회는 오도록 씹히는 식감과 더불어 고소함이 날 즐겁게 해 주었다. 젓가락 끝을 꾸욱 찔러 넣어 스크류바의 회오리 모양대로 돌려가며 살을 쏙 빼낸 후 초장에 콕 찍어 먹는 백골뱅이의 재미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으리라.
백골뱅이 난로위에서 삶아지고 있다
혼자만의 만찬은 이렇게 끝이 났다. 설거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다 먹어치웠다. 정말로 깨끗하게.
배도 부르고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비록 깜깜해서 파도가 부서지는 것이 보이진 않지만 철썩철썩 소리치는 파도, 사락 거리는 해변 모래 밟는 소리가 걷는 내내 귓가를 간질간질거렸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금 나에겐 이 모든 것을 함께 하고픈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고 내 얼굴을 자세히 보는 내 얼굴(오늘 하루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나 자신을 말함이다.)이 보였다. 여행을 와서 꼭 무엇인가를 얻어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절로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비록 무엇을 얻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아 지나쳤을 뿐인 것 같다. 혼자 라도 용기를 내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라는것 과 이 모든 걸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 두 가지를 얻어가는 기분이다.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다. 오늘 밤 잠은 솔솔 꿀잠을 잘 것만 같다.
[2일 차 아침]
연곡 솔향기 캠핑장은 아침 일출을 보기 아주 좋은 캠핑장이다. 모든 사이트에서 걸어서 2분 이내에 바다가 보이니 일출을 보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것이다. 나도 일출을 보기 위해서 전날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들었다. 하지만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푹 잠들었던 것이다. 당연히 일출 시간을 놓쳐버렸다. 밤새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자장가였고 꿈나라로 대려다 주는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눈을 뜨고 나서 이미 밝아버린 창밖을 보고는 일출 보기를 포기했다. 부스스 어렵사리 일어나 산책부터 하기로 했다. 파도 소리에 이끌려 갔다는 표현이 맞겠다.
캠핑장 앞 바다의 일출 풍경
어제에 이어 나의 여행에는 시련이 없나 보다. 놓친 줄만 알았던 일출을 아직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떠오르는 태양의 첫 모습은 놓쳤지만 모든 것을 놓친 것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 아니 한가!. 차갑게 푸르른 바다 저 편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하루 시작을 완벽하게 열어주었다.
더 가까이 걸어가기
뒤뚱뒤뚱 걸었다. 비몽사몽이라 그런 것 일까? 아니면 모래사장의 푹신함 때문 인 걸까? 한걸음 한걸음이 구름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바다의 요정 세이렌의 전설이 있다. 세이렌들은 지중해의 시칠리아 섬 근처의 한 작은 섬에 살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매혹적인 노래를 불러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잡아먹었다고 한다. 저 해변 끝에는 세이렌들이 있는 것만 같았다.
더욱 붉어진 태양
세이렌의 유혹을 뒤로하고 다시 해변을 걸어 나왔다. 뒤돌아 보니 태양은 더 붉어졌고 길고 긴 흔적이 남았다. 나의 발자국이다. 아마 곧 사라지겠지만 내가 여기 있었던 흔적이 남았다는 사실이 매우 기분이 좋았다.
발자국
어제 했었던 여행에서 얻는 것들 중에는 이 흔적도 포함되어야겠다. 혼자 하는 여행에 한아름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이제 서둘러 아침을 정리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할 시간이다.
이번 강릉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곳인 [고래 책방]이다. 지난번 대전 장태산 캠핑 때 들렀던 서점 [다다르다]가 너무 좋았었기에 앞으로 캠핑 혹은 여행을 할 때마다 그 지역의 멋진 서점 혹은 도서관에는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많은 검색과 강릉 현지인들 의 추천을 받은 곳, 강릉에서 가장 예쁜 서점이라 불리는 고래 책방이다. 고래 책방으로 달려가면 가장 먼저 여행 에세이를 찾아보려 한다. 독서를 시작하면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여행 에세이를 써보는 것이다. 여행을 가서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서투르지만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글이 전에도 몇 번 여행기를 쓴 적이 있다. 다시 읽어보면 정말 초등학생 일기 수준인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나도 전업 작가님들의 여행 에세이를 읽고 나면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오늘 고래 서점에 간다면 꼭 여행 에세이를 볼 것이다.
고래 책방 전경
고래 책방의 첫인상은 박물관 같았다. 심플하지만 무엇인가 가득 차 있는 느낌의 건물이었다.
특히 “이봐 여기에는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많은 것이 있으니 어서 들어와”라고 하는듯한 간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고래 책방 1층 모습
지난번 서점 다다르다 에서 느낀 것 이 있다. 이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기 같은 것이 있다. 다다르다 의 향기는 친숙함이었다. 도시여행자가 되고픈 점원이 한 권 한 권 추천해주는 작은 서점의 향기.
이 인터뷰의 말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곳이 서점 다다르다 이다. 강릉의 고래 책방에서는 풍요로운 향기가 났다. 실제로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와 그윽한 커피 향이 가득한 책방이지만 책장 가득 채운 책들과 그 책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 가득한 책방. 당장 커피 한 잔 사들고 책을 펼쳐보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힘들었다. 어떤 책을 봐야 할지 한참을 고르고 골랐다. 하지만 난 어느 책도 고르지 못했다.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그 어느 책도 선택하지 못한 것이다. 20분을 책과 책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보니 커피 한잔이 간절했다.
아이스 커피 와 고래 쿠키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과 귀여운 쿠키 하나를 구입했다. 쿠키는 귀여운 고래 모양 때문에 구입한 것이다. 귀여우니 더 맛있어 보였다. 가방에서 챙겨 온 책도 꺼내 놓았다.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 따뜻함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비록 여행 에세이 책은 못 골랐지만 이날 읽은 책은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이었다.
오늘은 안 쓸 수가 없다!
강릉으로 출발하기 전에 상상하던 그 느낌 그대로였다. 완벽한 시간이란 바로 이런 시간일 것이다. 책방은 더없이 포근했고 조용했으며 마치 책 속으로 도착 예정인 비행기 창가 같았다. 카페에서 책 읽는 느낌과는 너무 다르다. 테이블, 커피, 조용한 음악 아마 이런 외형적인 요소들은 거의 같지만 본질이 다른 느낌이다. 오롯이 책을 위한 장소라는 이 느낌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고래 책방 지하 풍경
고래 책방 지하 풍경
고래 책방 2층 풍경
1박 2일의 강릉 여행 일정을 정리해보면 1일 차 안목항을 시작으로 연곡 솔향기 캠핑장에서 여유로움을 즐기고 2일 차 고래 책방에서 풍족함을 즐기고 난 후 강릉 중앙 시장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어느 지역을 간다면 꼭 들러보는 곳이 바로 시장일 것이다. 아마 그 지역의 특징을 한눈에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시장 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날 먹은 강릉의 맛은 소머리국밥이었고 이 국밥의 깔끔함 과 진득한 느낌은 아주 기분 좋은 마무리였던 것 같다.
소머리 국밥 과 반찬
소머리 국밥 의 머릿고기들
"기대와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여행의 이유] 중
이번 강릉 여행에서 나는 기대와 다른 어떤 것을 얻었을까? 나도 모르게 얻어진 이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의 인생의 행로가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운전하듯 나는 내 인생을 잘 운전하고 있는 걸까?
내가 무엇을 얻었고 내 인생의 행로를 생각하는 어렵고 복잡한 생각보다는 이번 여행의 결론은 단순하게 정리하고 싶다.
“강릉 여행은 혼자라서 더 잘 놀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가고 싶어 진다면 혼자 라도 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