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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병규 Jun 11. 2022

여유로운 바삭함

감자튀김 편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CF 광고의 명대사를 기억하는가? 이 대사 한 줄이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일요일]이다. 2022년 6월의 무더운 일요일 은 지루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읽고 있는 세계문학 소설 [롤리타]가 지루했다. 천재 작가 라 불리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 이 책은 언어유희를 통한 묘사가 많다. 하지만 나의 문학적 지식 부족과 생소한 외국 문화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읽다 보니 이 책은 나에게 지루함으로 다가왔고 나에게는 이 지루함을 달래줄 무엇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외쳐보았다.


"오늘은 내가 감자 요리사!"


 주방 팬트리 밑 어둡고 서늘한 그곳에 오늘의 주인공 감자들이 있다. 작은 상자에 신문지를 깔고 팬트리 밑과 같은 서늘한 곳에 감자를 넣어두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봄 가뭄으로 인해서 몸값이 많이 오른 감자 11개를 꺼냈다. 보관만 잘해둔다면 찌개, 구이, 전, 튀김 등 온갖 요리로 활용할 수 있는 팔방미인이 바로 감자다. 오늘 이 감자 11개로 두 가지 간식을 만들어 보자.  


우선 1) 흐르는 물에 감자를 잘 씻어준다. 흙이 물에 씻겨 내려가면 감자의 황갈색이 드러나는데 이 색상이 참 오묘한 느낌을 준다. 땅을 그대로 퍼온 색. 감자는 바라만 보아도 포근하다.


2) 감자칼로 껍질을 벗겨준다. 뽀얀 속살이 드러날수록 내가 왜 부끄러워지는 것일까?  감자는 자신도 모르게 우리에게 주는 포근함이 있다.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모난 곳이 없는 감자다. 수많은 음식들 속에 조연으로 조용히 제 역할을 한다. 때로는 부족한 양을 채워주는 역할로 때로는 매운맛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면서 말이다. 지루한 일요일 오후를 그 포근한 존재감으로 날 위로해줄 것이다.


3) 찜기에 감자를 쪄준다. 대략 30분에서 40분 정도 쪄주면 포근함을 뛰어넘어 포실 포실 한 감자로 변해있다. 젓가락으로 감자를 꾹 찔러보면 다 익은 감자는 함박눈 눈송이 밟는 느낌이 든다. 폭, 폭, 보슬, 보슬, 포슬, 포슬.


4) 다 익은 감자를 으깨준다. 감자 으깨기 같은 기구를 사용하면 편하고 만약 없다면 국자나 주걱 같은 것으로 꾹 꾸욱 눌러 으깨준 후 체에 한번 걸러준다. 포슬포슬한 감자는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5) 부드러워진 감자에 버터 한 덩이 이와 맛소금 한 꼬집 을 넣고 잘 비벼준다. 감자의 고소함에 버터의 풍미가 더해지면서 입안에는 벌써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음식을 만들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이런 순간을 참아내는 것이다. 물론 맛을 보아도 상관은 없지만 자꾸 맛을 보다 보면 맛에 대한 기준이 사라져 마지막 결과물에 대한 객관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어떻게든 꾸욱 참아내야만 한다. 견디고 견디다 먹는 음식이 더 맛있다.


자! 감자의 기본 베이스가 만들어졌으니 이제 첫 번째 간식을 만들어보자. 6) 으깬 감자 절반을 덜어 설탕 1 테이블 스푼, 소금 1/3 테이블 스푼, 올리고당 1 테이블 스푼, 마요네즈 3 테이블 스푼을 넣고 쓰윽 쓰윽 비벼주자. (감자의 양에 따라 양념의 양이 달라진다. 그러니 설탕 소금 마요네즈 양을 조절해 가며 원하는 맛을 찾아보자.) 뻑뻑함이 느껴진다면 우유 혹은 생크림을 조금씩 넣어가면 원하는 질감이 될 때까지 비벼준다.


7)  부재료는 원하는 것 무엇을 넣어도 좋다. 삶은 달걀도 좋고 크레미도 좋다. 캔 옥수수를 넣어보는 것도 강력 추천한다. 물론 전부 다 넣어줘도 좋다! 이렇게 전부 넣고 다시 한번 비벼주면 남녀노소 좋아하는 메쉬드 포테이토 샐러드 완성이다. 예쁜 유리그릇에 옮겨 놓고 아침마다 한스쿱씩 떠서 아침밥 반찬으로도 좋고 식빵에 발라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도 훌륭하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냉장고에서 3일 혹은 4일은 보관 가능하다 보니 넉넉히 만들어 두자.


감자로 아침밥 혹은 반찬을 챙겨두었으니 이젠 오늘 나를 즐겁게 해 줄 간식도 만들어보자. 8) 오븐 팬 위에 종이 포일을 깔고 올리브 오일을 발라준다. 9) 처음 만들어두었던 감자 베이스를 짤주머니에 넣고 쿠키 만들듯이 예쁘게 짜 준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꼭 기억하자. 나처럼 한 번에 만들려다 짤주머니가 터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예쁜 감자튀김은 물 건너갔으니 못난이 감자튀김으로 전략 변경을 했다.


10) 180도에서 200도로 예열된 오븐에 만들어둔 감자를 넣고 15분 뒤집어서 15분을 굽는다. 튀기지 않는 감자튀김이 오늘의 힐링 아이템이다. 튀김은 기름에 고온으로 튀겨내어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함이 특징이다. 비록 오븐에 굽는 감자이지만 이미 쪄낸 감자는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오븐에서 겉이 구워지면서 바삭한 식감을 가지게 되니 이것도 감자튀김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건강한 감자튀김이라 불러줘야 할 듯싶다.


11) 노릇노릇 바삭하게 구워진 감자튀김 위에 맛소금을 솔솔 뿌려주고 조금 더 특별한 감자튀김을 먹고 싶다면 쿰쿰한 치즈향과 짭조름한 맛으로 중무장한 파마산 치즈 가루도 솔솔 뿌려주면 더욱 맛있다. 당연히 감자튀김에는 케첩이 빠져서는 안 된다. 감자튀김과 케첩은 솔메이트이니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즐길 수 있는 맛있는 간식 감자튀김을 패스트푸드 가 아닌 슬로 푸드로 만들어 보았다. 느릿느릿 감자튀김을 만들면서 가지는 느긋함에 완성된 감자튀김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독서 타임은 지루하고 퍽퍽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탈술 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지 않을까 한다. 감자튀김을 다 먹고 난 나의 소감은


'아 햄버거 도 만들걸 아쉽다.'




재료 소개

1) 감자

2) 버터 50g, 맛소금, 설탕, 파마산 치즈 가루, 우유, 마요네즈, 케첩, 올리브 오일


[이 글을 읽는 방법에 대한 설명]

1) 레시피 만을 원하신다면 빨간색 글 만 순서대로 읽어주세요.

2) 레시피의 스푼은 기본적인 밥 숟가락이며 티 스푼을 사용할 경우 별도로 티스푼이라고 언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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