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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병규 Jun 04. 2022

초 여름밤의 열

순두부찌개 편


 살아가다 보면 다른 누군가의 한 줄 댓글에 나의 하루가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줄 쉽게 써 내지른 글자의 나열이 누군가에게는 비수처럼 날아와 꽂힐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날카로운 무기.

 

5월 어느 날. 그 날카로운 무기가 나를 공격하였다.


 2022년 5월은 뜨겁다. 작년과는 사뭇 다른 이른 더위가 느껴진다. 걱정이 태산이다. 땀이 많은 나는 얼마나 헐떡이며 땀을 흘려댈지, 흘린 땀만큼이나 얼마나 더 먹어댈지 걱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씨가 덥워지면 입맛이 사라진다고 한다. 나는 왜 정반대 일까? 힘이 들고 지칠 때일수록 더 기름진 고기가 당기고(고기 와 찰떡궁합인 비빔냉면은 필수이다.) 땀을 많이 흘릴수록 더욱더 얼큰한 찌개류 가 당긴다.


특히 얼큰하고 매콤한 찌개는 상처받은 오늘의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이다.


 여름의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식재료품이 있다면 바로 고춧가루다. 맵고 뜨겁다. 이 맵고 뜨거운 것에 물이 함께 해준다면 화끈하고 얼큰한 국물로 변한다. 나에게 절실한 매콤하고 얼큰한 국물을 만들어볼 것이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중요하다. 고춧가루에 물을 붓는다고 얼큰한 국물로 변해주지는 않는다. 순서에 맞게 조리해 주어야 얼큰한 국물로 변하는 것이다.


 1) 웍 이나 냄비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기름을 가열해준다. 기름이 뜨거운 기운을 내뿜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고춧가루를 뿌려준다. 팍! 팍! 뜨거운 기름이 고춧가루에게 그 열기를 전달해준다. 고춧가루는 이 열기를 받으면 열정적으로 변하며 고추기름의 매콤 고소한 향을 내뿜기 시작한다. 여름밤의 뜨겁고 화끈한 열정이 생각나게 하는 향기다. 상처받아 축 쳐져 있는 나에게 절실히 도 필요했던 바로 그 힘.


 2) 다시 불을 켜주고 다진 마늘과 쫑쫑 썰어놓은 대파를 넣고 고추기름에 마늘 향 , 파향이 범벅이 되도록 볶아준다. 이것이 바로 K푸드 매운맛의 기본 베이스 향이다. 마늘과 파 와 고춧가루의 환상적인 콜라보. 베이스가 완성되었다면 3) 고기 도 좋고 해산물 도 좋다. 볶아주자. 추천하는 재료는 냉동 해물 믹스이다. 1KG에 만원 돈 이면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함 은 나의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는 풍성함을 주며 한참을 잊어버리고 있어도 상하지 않고 날 기다려주는 여유로움이 있는 고마운 재료다. 볶던 재료들이 어느 정도 익었다면 지금부터는 감칠맛을 코팅해 보자.


 4) 굴 소스 2스푼, 설탕 1스푼, 참치액 1스푼, 소고기 다시다 1스푼 을 넣고 다시 볶아준다. 마법 액체와 가루들이 적당한 비율로 첨가되고 신선한 재료들의 농축된 맛과 어우리 지기 시작하면 나의 주방에는 황홀함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한다. 매콤 하면서도 달콤 하지만 이마에 송글 송글 땀을 맺혀주는 얼큰함이 냄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내면서 볶다 보면 오늘 일은 잠시 잊게 된다. 이 열정적인 뜨거움으로 내 상처를 치료하는 기분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5) 열 라면 을 한 봉지 뜯어 스프도 넣고 볶아주자. 이것이 오늘 순두부찌개의 킥이다. 비록 유행하는 아이템 이기는 하지만 대기업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결정체 5g의 힘은 내가 어딘가에서 실패했을지 모르는 오늘의 요리에 절대적인 성공을 보장해 준다. 6) 이제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부어 주고 나면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대단원의 막을 장식해 보자. 7) 만두와 면사리 그리고 순두부 한 봉지를 넣고 후추를 무심히 툭툭.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부재료가 있다면 무엇이든 넣어보자. 많이 넣을수록 더욱 행복해지도록 말이다.


 "보글. 보글. 바글."


이 짧은 과정을 끝내고 나면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기분은 전부 사그라져 버리고 내 이마에서는 땀이 용솟음치기 시작한다. 냄비의 뚜껑을 열고 마지막 할 일을 해보자. 8) 참기름 한 바퀴와 날 계란을 국물 위로 살포시 올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인내의 시간 3분. 깨소금도 함께 해주면 더없이 고소하다. 하지만 없어도 이미 냄비 속에는 초 여름의 열정을 가득 담고 있다.


비록 다른 이에게 상처받는 하루가 되었지만 나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생각해본다. 매일 상처받고 그 상처를 치료해가며 더욱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해 간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행동은 나쁜 것이다.) 오늘의 순두부찌개 라면 한 젓가락 가득 후루룩 하면서 털어내도 좋다. 뜨거운 국물 후후 불어가며 "아우~ 얼큰하다"라는 감탄사로 위로해도 좋다. 상처받은 만큼 더 많이 치료하고 성장하면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다 보면 나는 아주 뚱뚱한 사람이 되겠지만 말이다.  


재료 소개

1) 열 라면 1 봉지, 2) 해물 믹스 혹은 돼지고기 200g, 3) 순두부 1 봉지

4) 다진 마늘, 대파, 고춧가루

5) 참치액, 굴소스, 설탕, 소고기 다시다, 식용유


[이 글을 읽는 방법에 대한 설명]

1) 레시피 만을 원하신다면 빨간색 글 만 순서대로 읽어주세요.

2) 레시피의 스푼은 기본적인 밥 숟가락이며 티 스푼을 사용할 경우 별도로 티스푼이라고 언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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