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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만한 당신 Feb 22. 2021

언젠가 함께 걸어주었던 사람들

따뜻한 마음은 위로가 되니까

혼자 성북천을 걸었다.  겨울밤 공기와 드문드문하게 천을 거니는 사람들 사이로 호젓한 물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듯 머물고 있는 청둥오리 한 쌍과 물가의 수풀 사이를 폴짝거리고 있는 길고양이를 한참 응시하기도 하며, 느긋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걸었다. 혼자여도 충만하다. 




이 길을 혼자 걷는 게 괴로웠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다. 살고 싶지 않았고 끝이 보이지 않았고 어디로도 물러설 곳도 돌아갈 곳도 없이 느껴져서 마냥 서성이며 어찌할 바 모르며 버텼던 수많은 날들. 그러나 그 날들 속에서 나를 붙잡아주었던 건, 함께 걸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밉고 억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이 깊어가도록 뒤척이던 나의 한숨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서 적막이 내려앉은 도로를 한참 걸어주었던 사람. 내뱉는 숨마다 하얗게 흔적을 남기는 차가운 새벽이었다. 그 사람과 나는 마냥 걸었다. 머릿속을 떠다니던 혼란한 생각과 감정을 입 밖으로 간간히 내뱉을 때, 그 사람은 가만히 들어주었다. 내내 손을 잡으며 전해준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삶은 왜 이리도 자잘한 불행들과 자꾸만 슬퍼지는 일 투성이냐며, 며칠 내내 방에만 머물렀던 나를 데리고 해변을 따라 난 정돈된 길을 함께 걸어준 사람도 있었다. 겨울이었다. 패딩을 목 끝까지 잠그고 각자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산책길이 끝나는 지점과 맞닿은 바다를 보며 그 사람도 삶의 지난함에 대해 말했다. 철벅철벅, 비슷한 소리를 내는 파도처럼 우리도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함께 오가는 것 같았다. 




함께 걸어준 그 사람들, 더 정확하게는 그 시간들을 함께 버텨주고 옆에 있어준 그 사람들 덕에 나는 이제 혼자 걸어도, 혼자 시간을 보내도 무척 괜찮아진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들은 나를 위해 억지로 행동한 것도, 시혜를 베푸듯이 위로를 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할 때,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단지 그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기꺼이 내 옆에 있어주었다. 함께 걸어주었다. 


그 사람들은 그때의 자신이 나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알고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었던 사람일 것이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마음은 때로 누군가를 구원한다고 믿는다. 나와 걸어주었던 그 사람들도 혼자 걷는 길에 어려움과 슬픔보다는 홀가분하고 충만하기를, 혹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기쁘게 걷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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