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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만한 당신 Apr 03. 2022

나도 응원의 마음을 보내

7년 전 학생의 연락을 받았다. 

일요일 오전이 끝나갈 무렵에 느지막이 눈을 떴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켜고 확인하는데, 첫 학교에서 제자였던 학생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프로필 사진은 없었지만 이름을 보는 순간, 문득 그때 그 학생의 얼굴이 그려졌다. 나만한 키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늘 얼굴이 햇빛에 그을려있었던 아이였다. 싱글거리는 표정에, 또래 남자애 답지 않게 대화할 때 배려가 묻어나왔던 것 같다.  


열어본 카톡에는 안부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방 정리를 하다 내가 졸업을 축하한다며 써 준 편지를 발견했다며 사진을 찍어 보낸 것이었다. 사진에 덧붙인 말에 마음에 물기가 돌았다. 


"되게 힘이 많이 됐었는데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3년 6개월을 일했던 첫 학교는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학교에 처음 배치된 상담교사인 데다 상담교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학교에서 상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부당한 일을 주거나, 교과교사들이 상담교사 업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부를 갓 졸업한 나는 학생을 상담하고 만나는 일이 어렵기만 해서 자주 머뭇거렸고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아 무기력해지곤 했다. 


업무에 치이고 무시와 무력감에 실망하고 억울함이 많았던 때였으나, 그 시절 나를 살게 했던 건 학생들이었다. 투박한 말투로 쌤, 하며 찾아오던 학생들, 간식 달라며 놀러 와선 수업 들어가기 싫다고 떼를 썼던 학생들, 선생님은 왜 늘 웃어주냐며 좋아하면서도 의아하게 물었던 학생들, 졸업하고도 연락하며 따르고 좋아해 주었던 학생들. 


연락 온 그 학생은 내가 상담을 했던 학생은 아니었다. 동아리 지도학생으로 2년 간 가끔 만나 교육을 하고,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나 이벤트에 함께 했었다. 상담이 아니었으니, 학생을 '도와야겠다'라는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 애는 나에게 "되게 힘이 많이 됐었는데"라고 말해주었다. 초라하고 엉망이었던 교사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너에게는 힘이 되는 순간을 주었던 사람이었냐고,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만두었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들을 그 아이는 간직하고 있겠지. 그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아이의 웃는 모습이나 걸음걸이 같은 것을 내가 추억하고 있는 것처럼.  


2015년에 중학교를 졸업한 그 아이는 지금은 스물서너 살의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7년의 세월을 보낸 그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 단어를 골라 답문을 보냈다. 



"인사 전해줘서 고마워. 그 시절 네 모습이 선생님은 아직 생생하네. 어른이 된 너도 여전히 잘 웃고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니? 선생님도 늘 응원하는 마음 보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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