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ettle down
도망자의 삶
늘 무언가에게서 도망치는 기분이다. 일상, 일, 사람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게 무섭고 두렵다. 안정감과 신뢰감에서 오는 긍정적인 감정과 따스함이 감동스럽지만 동시에 숨막하기도 하다.
흔히 삶은 긴 여행이라는 비유를 한다. 한때 여행을 동경하며 승무원과 해외에서의 삶을 꿈꿨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일상을 이동하며 여행하듯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동 중이다. 올해 지역 이동만 두 번째로 골드코스트에서 살며 브리즈번에서 일하는 삶을 살고 있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굳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이젠 이런 상태가 더 익숙하다.
도망에 대한 대가는 쓰긴 하다. 자주 지치고 포기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나의 결핍에서 비롯된 욕망 등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씩씩하고 독립적인 나의 추구미와 상반되게 안정적이지 못한 나는 길 잃은 아기고양이가 되어버린다. 가끔은 그 동정들이 지난 나의 생각과 마음을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존중받지 않는 것 같아서, 영원히 싸워야 할 것만 같아서 속상하다.
정착의 조건
아직은 어디에도 정착하고 싶지 않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일지도 모르겠다. 서른이 되어도 어쩐지 정착은 나에게 너무 먼 이야기 같다.
안정된 직장, 돈, 집, 차, 파트너, 친구, 애완동물 아무것도 없는 나는 내세울 것 없이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한참 어려도 먼저 자리잡거나 안정적인 친구들을 보면 나잇값 못하는 것만 같아 머쓱해진다. 그렇다고 마냥 부럽다기보단 이질감이 느껴질 뿐이다. 이상하게 이런 물질과 조건은 가지면 가질수록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더라.
매일 집이 아닌 집으로 돌아갈 때, 기댈 사람 한 명 없을 때, 악의 없는 친절을 의심하게 될 때, 사람들이 나를 자꾸만 시험할 때,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는 이 상태와 마음은 잘못된 마음에 휩싸이고 쉽게 위험해지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단점들을 뒤로하고도 아직 자유가 좋다. 현실과 정착에 계속 도전하겠지만, 아무래도 아직 나에겐 자유가 조금 더 중요한 것 같다.
정착의 타이밍
뭐든 영원한 것은 없다. 젊음도 마음도 상황도 타이밍도 모두 끝이 있으니 의미가 있다. 인생은 계획되지 않으니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비자가 1년 남은 이 시점에서 결국 한국에 돌아가는 선택지를 고를 것 같다. 여전히 해외에서 살고 싶거나 미련이 있다면, 영주권에 도전하거나 유럽에 사는 가족에게 빌붙어서 사는 선택지도 있지만. 굳이 그래야만 할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고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면 늘 후회가 따른다.
한국이 고향이긴 해도 굳이 돌아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그림을 그려왔던 오랜 세월이 지금 나의 삶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듯, 물리적인 시간과 고향은 상관관계가 없다. 내겐 어느 도시에나 있는 스타벅스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가장 익숙하니까. 또 아무리 외국에게 친절한 나라라도 평생을 외국인으로 사는 삶은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안될 것을 안다. 아무래도 마음을 먹고 정착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다짐과 시간이 걸릴 것만 같다. 영원히 젊지도 않고, 이 마음이 영원하지도 않을 테고, 끝날 시간이 올 텐데. 그래도 아니 그렇기에 더욱더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 회피본능을 없애고, 편안함과 익숙함이 당연해지는 순간이 올까. 언젠간 제대로 된 의식주를 갖추며 정착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지낼 수 있을까. 그런 삶이 나에겐 판타지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