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걷고 오겠습니다. - day 1

길에서 만난 사람들

by MJ






2022년 1월 3일, 나는 걷기로 했다.

커다란 포부나 각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 2일이 주말이란 이유로 친구들과 여유롭게 놀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고 보니 이제야 새해가 된 기분이 조금 들었을 뿐이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평소와 다르게 눈이 반짝 떠졌다. 고민할 틈 없이 일어나 앉았다. 일단 아이돌의 음악을 크게 틀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꼼지락 댈 때 내가 잘 쓰는 방법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아이돌을 보면서 자극을 받는 것이 그 이유이다)

미지근한 물을 한잔 마시고 일단 씻는다. 그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패딩에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일단 집을 나오는 것이면 절반은 성공했다는 기분이 든다. 반쯤은 집순이의 피가 흐르는 사람 중 하나로 집 밖을 나서는 것이 어려운 일 중 하나라서 말이다. 작년까지 걷으려면 도산공원으로 갔는데 올해는 한강과 남산을 자주 가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한강부터.

한강에 들어가기 위해 압구정 미성아파트 뒤편의 한강공원 입구로 간다. 집에서 걸어서 2-30분 남짓 걸린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거나 일을 하는, 어딘가로 향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과 스쳐간다. 평소에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지 않는 편인데 이른 아침에는 사람들에 관심이 갈 때가 있다. 내가 잠들어 있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존경심이 들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람을 동경하는 마음도 함께.



테이크 아웃 컵을 들고 출근을 하는 듯 보이는 사람과 함께 신사역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섰다. 나에게 이제 막냇동생보다도 훨씬 어린 여성을 곁눈질해보았다. 출근길에 잠을 깨려 혹은 습관적으로 커피를 사서 가는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오늘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 스스로도 생소한 감정이라 살짝 어리둥절했다.



신사역을 지나 한남대교 남단을 향해 걷는다. 사람이 많지 않은 길목에 하얀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한 안과의 광고 표지판을 들고 사이를 두고 서있었다. 평소라면 역시 눈에 띄지 않았을 풍경. 춥겠다, 혼자 중얼거리며 길을 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라섹 수술한 지 꽤 오래 지나 시력이 조금 떨어졌는데 안과에 검사를 받으러 갈까 생각이 스쳤다. 이왕이면 아르바이트생이 아침 일찍부터 일하는 저곳이 어떨까, 생각을 하면서. 스무 살 무렵에 나는 친구를 따라 전단지 배포 알바를 하겠다며 호기롭게 나선 기억이 있다. 여름이라 많이 더웠고 어른들 눈치를 보느라 쭈뼛쭈뼛거리다 그만두었던 기억. 잊고 있던 그때가 머리를 스쳤다.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웃음이 나는 그런, 다 컸다 생각했지만 어렸던 시절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다시 차지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한강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한강공원의 입구를 지나 한강을 따라 걸었다. 겨울이라 그런가 예상보다 훨씬 사람이 적었다. 추운 강바람에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손을 소매 속에 말아 걸었다. 지나가는 노부부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팔짱을 끼고 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오늘 나는 무척이나 세상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잠원지구를 쭉 걷고 스타벅스 서울 웨이브 아트센터점에 들렀다. 처음 생기고 핫플이 된 후에 종종 들렀던 곳이다. 아직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 반가웠다. 신년 기획으로 나온 시트러스 티를 주문하고 앉았다. 걸어오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다듬었다. 브런치에 쓰려다 정리가 되지 않아 올리지 못했던 글도 하나 다듬어서 업로드했다.

(도가니 이야기는 이때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지나가는 까치에게마저 친근감이 든다.




차를 다 마시고 이제 다시 왔단 길을 돌아간다.

걷는 것이 처음은 아닌데 오늘은 유난히 오가며 스친 사람들에 대한 상상이 많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옛날 말. 이 넓은 서울에서 (좀 더 오버해서 이 넓은 지구에서)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그 인연으로 오늘 스쳐간 모두에게 평안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본다.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의 하루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2022년 걷는 첫날은 그렇게 인류애 넘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작년 봄에만 해도 자주 가던 편의점이 문을 닫았다. 왠지 아쉬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