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사람의 걷기 2일차
요즘 돌아다니는 MBTI의 간단하고 웃긴 해석을 통해보면 나는 [밖에 싸돌아 다니는 쓸떼없는 생각 많은 문과 감성의 게으른 새끼]이다.
MBTI를 잘 모르고 누가 얘기해 주면 오 오하면서 듣는 사람이지만, 매우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꿰뚫린 듯한 해석에는 뜨끔하고 말았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이다. 약속도 잘하지 않으려 한다. 잘 지키지 않을뿐더러 못 지키는 것에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새해 계획은 늘 한 달 이상을 가지 못했다. 보름이 가면 다행일까. 고백하자면 올해의 만보 걷기도 사실 그렇게 자신이 있지 않았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조차 자신이 있지는 않다)
마음은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의지가 약하고 끈기가 없는 자신이 늘 불만이던 나는 고작 이틀째일 뿐이지만 아직 나에게 붙어있는 의지에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불끈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은 2022년 1월 4일이다.
(앞의 마음은 아마도 고작 이틀째라는 숫자에서 생겼을 거다.)
집에서 한강 나들목까지는 30분이 조금 넘게 걸린다. 걸음으로는 약 3 천보 정도다. 걸어서 한강 입구에 도착을 한다. 내가 정한 터닝포인트인 스타벅스 서울 웨이브 아트센터까지는 다시 25분 정도가 걸린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정도를 걷고 스타벅스에 들러 차를 마시고 왔던 길을 돌아오는 것이 어제부터 정한 루트였다. 시간과 걸음수가 적당하다. 하지만 곧 익숙함에 질려할 나를 위해 한강 말고도 남산을 후보에 두었다. 자신의 속마음이지만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변덕만큼은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강바람이 차다. 한강에는 여전히 사람이 별로 없다. 두 번째 날에서야 장갑과 모자가 있으면 더 좋을 거란 것에 생각이 미쳤다. 가끔 나는 좀 당연한 부분에서 생각이 모자란 부분을 발견한다. 어제도 손이 시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는데 오늘에서야 장갑과 모자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자람을 더 고백하면, 이러고도 이틀이나 더 지나서 집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대체로 초록초록한 풍경을 좋아하지만 겨울의 쓸쓸한 풍경도 멋있다. 채도가 조금 낮은 차가운 색감은 정돈된 분위기가 든다.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이 풍경이 반갑다. 이런 모습을 눈에 담는 것이 좋아서도 걷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는 모닝 노트를 적었다. 일어나서 바로 써야 하는데 앉다 보면 늘어질 것 같은 나를 알기에 일단 옷부터 입고 나가다 보니 모닝 노트가 조금 미뤄졌다. 걷고 난 후의 생각도 적다 보니 원래 취지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나름의 수확은 있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 ‘아티스트 웨이’에 영감을 받은 언니는 몇 년째 모닝 페이지를 쓰고 있다. 처음에 나에게 추천을 해주었을 때 나도 몇 주 정도 쓰다가 어느새 잊어버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써왔다면 얼마나 엄청난 양의 모닝 페이지가 남아있을까. 그리고 나는 또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계획을 잘 세우지 않고, 지키지 못하는 만큼 나는 후회도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했다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모닝 노트도, 걷기도 일 년 후, 이년 후를 위해서 조금 더 의지를 가져보려고 한다. 아무리 계획 없는 새끼라 하더라도 (^^)
이번만큼은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