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맛
요즘 빠져있던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가 끝났다. 아쉬운 마음에 여러 번 재주행을 하고 있다. 볼 때마다 못 보던 혹은 깨닫지 못하던 장면들이 나오는데 등장인물 하나하나 모두 관심이 가고 애정이 생긴다. 그중에서 마음이 가는 사람 중 하나가 이기우 씨가 연기하는 조태훈의 딸 유림이. 재혼한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두 명의 고모와 함께 사는 유림이는 드라마 내내 혹독한 사춘기를 거치는 중이다. 처음에는 뭐가 그렇게 불만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저럴까 싶은 꼰대 같은 마음으로 편하지 않게 보기 시작했는데 볼수록 고집스럽게 꾹 닫은 입과 표정에서 유림이가 하지 않고 있는 말들이 보이는 것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겠는데, 나는 유림이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꽤 먼 기억의 사춘기 때라고 눈썹만큼도 닮은 구석이 없으니 갖다 붙일 것이 없다만 그녀의 고집스럽게 다문 입에서 나의 사춘기의 기억이 두어 가지 떠올랐을 뿐이다.
우리 외가 친척들 중 엄마를 포함 네 자매에게는 총 10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중 큰 언니들을 빼고 7명은 고만고만한 또래였다. 매 방학마다 돌아가며 한 집으로 놀러 가 며칠씩 묵는 것이 일 년에 두 번씩 있던 친척들과의 행사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던 해의 여름 방학이었다. 그때 우리는 수원에 살고 있던 이모네 집으로 놀러 갔었는데, 이모네는 어느 저녁에 원천 유원지라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지금은 광교 호수 공원으로 바뀐 곳이다.)
에버랜드는 자주 갔었지만 원천 유원지는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알라딘의 양탄자 같은 놀이기구였는데, 어둑해진 밤 휙휙 바람 소리 같은 것을 내던 놀이기구에 사람들의 꺅꺅대는 소리가 어우러진 단편적인 기억이 있다. 그 밤에 단 하나 아주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바로 냉면이다.
구경을 하고 놀이기구를 몇 개 타고 신이 났던 기억이 난다. 놀다가 유원지 안에 있던 중국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짜장면밖에 먹지 않았던 꼬맹이였다. 나보다 세 살이 많았던 언니는 종종 짬뽕을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어른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즈음 항상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내적 갈등을 하던 어렸던 나는 늘 짜장면을 선택하면서 내심 짬뽕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은 평소 짬뽕을 먹던 언니부터 아이들과 어른들까지 모두 짜장면을 선택했다. 나는 딴에는 매우 과감하게 짬뽕을 선택했다. 인생의 첫 짬뽕 주문이었다. 무슨 큰 관문을 넘은 것처럼, 당장 어른이 된 것처럼 마냥 고무된 기분이었다. 그때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곧 짜장면과 탕수육이 먼저 나와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날따라 안 하던 짓을 한 것이 문제였을까, 나의 짬뽕만은 나오지를 않았다. 곧 나오겠지 싶어서 기다리면서 15명이 훌쩍 넘은 사람들이 주르륵 있던 곳의 끝자락에 앉아있던 나는 탕수육마저 가깝지 않아 젓가락을 들이대기가 어려워 멀뚱하니 앉아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언니가 집어준 탕수육 몇 점을 먹으면서도 곧 나올 나의 짬뽕을 애타게 기다렸다. 어른들은 구석 자리에 앉은 나의 식사가 나오지 않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때의 나는 아직 내 식사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멋쩍게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짬뽕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은 어른들이 물어보자 짬뽕 주문이 누락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른들은 왜 식사가 나오지 않은 것을 얘길 안했냐고 물어봤다. 스물여덟 개의 눈이 나에게 쏠렸다. 그게 왜 부끄럽고 민망했는지,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창피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사춘기에 막 접어들었던 소녀였다. 누가 나를 주목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가 없이 싫고 민망해하고, 누군가와 다르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시기였다. 나는 입을 조개처럼 꾹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속으로만 평소처럼 짜장면이 아닌 짬뽕을 주문한 나를 원망하고 탓하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던 나를 이모부가 데리고 나와 옆의 냉면집으로 데려갔다. 왜 냉면집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부끄러움에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었던 나는 이모부를 따라갔을 뿐이다. 그리고 기억하기로는 생애 첫 냉면을 먹었다. 사실 그게 정말로 처음으로 먹은 냉면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기억에 혼자 냉면 한 그릇을 먹은 것이 처음이었고, 냉면을 한 그릇 다 비우면서 짬뽕 주문과 같은 의미로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습도와 기온이 높고 그 와중에 식사가 나오지 않아 불쾌하기 짝이 없던 소녀의 기분을 단숨에 바꾼 달고 시원한 냉면이었다.
조개처럼 꾹 다문 입에 관한 기억은 한 가지 더 있다. 이번에는 샌드위치가 문제였다. 기억에 아마도 같은 해,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근교 바닷가로 소풍을 가게 되었다. 도시락을 지참하라고 했어서 엄마가 김밥을 싸주냐고 물었다. 같이 다니던 친한 언니는 그냥 빵을 가져갈 거라고 했어서 나도 엄마에게 그냥 식빵에 잼을 발라서 가져간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다들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다들 김밥을 싸왔고 빵을 싸온다는 친한 언니는 도시락통에 담아온 토스트를 먹었다. 나는 은박지에 싼 식빵을 꺼내지 못했다. 남들이 도시락통에서 꺼낸 것은 제대로 된 식사 같고 내 빵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부끄러웠다. 왜 먹지 않냐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 있었다. 주변에서 김밥을 같이 먹자는 말에도 같이 먹지 못하고 점심시간을 내내 멋쩍게 앉아있었다.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유년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부끄러운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그러다 권유에 못 이겨 김밥을 나눠 먹고, 신나게 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식빵을 꺼내 간식으로 나눠먹고 집으로 왔다. 나름 덜 부끄러운 해피엔딩이다.
무엇이 그렇게 부끄럽고 민망했을까, 무엇이 그렇게 불만스럽고 불편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은 커다란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한없이 소심했던, 남들과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들키고 싶지 않던, 높낮이를 알 수 없게 널뛰던 감정의 변화를 가졌던 사춘기의 기억들. 가끔씩 접하던 청소년들을, 드라마 속 유림이를 삐딱하게 보던 마음이 바르게 자리 잡아간다. 나 역시 어떻게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천방지축의 사춘기를 보냈음을 기억해내며. 사춘기의 소년소녀들을 좀 더 다정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라고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