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이야기

기묘한 밥상 이야기

by MJ




회사에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떡볶이 이야기>에 썼듯이 우리 회사는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인데, 크고 작은 모임을 가지는 살롱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 그날은 뷰티 브랜드 담당자들과 떡볶이를 곁들인 오후 미팅이 있었다. 미팅을 준비하는데 함께 일하고 있는 언니에게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일 낮에 온 전화라 무심히 받았는데, 언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아빠는 그렇게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3일간 장례를 치르고, 주말을 보내고 회사에 나왔다. 며칠 동안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지나고 보니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었다. 그 해는 일본과 홍콩 등 해외 출장이 잦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에 정신은 없었지만 평범한 일상과는 달라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아빠 생각이 조금 덜해서 마음은 더 나았다. 2월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몇 개월간 계속 일본을 오가며 지냈다. 바쁜 날들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또 밤이고 낮이고 수시로 눈물이 흘렀다. 예전 사진을 보거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할 때 모든 시점이 아빠가 죽기 전후로 나뉘었다. 아 저때는 아빠가 살아계셨네, 아 저때는 아빠가 돌아가셨네. 지금 생각하면 현실감이 많이 떨어진다. 다시 돌아봐도 무슨 정신으로 살았나 싶지만, 시간은 꾸역꾸역 잘 흘러갔다.

7월에 홍콩 출장을 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조금 여유를 가진 마지막 밤이었다. 호텔에서 밤에 자는데 꿈을 꾸었다. 그때 나는 본가의 안방에서 사진 앨범을 보고 있었는데, 중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는 어릴 적 아빠가 들어오시는 순간을 내가 상징적으로 기억하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정아, 아빠 밥 줘라"


네, 크게 대답을 하고 나갔지만 꿈속위 나는 아빠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시체처럼 얼굴이 하얬다. 나는 기다리는 아빠에게 밥상을 차려서 거실로 들고나갔다. 아빠는 앉아서 밥상을 받으셨는데 손가락이 붓고 굳어 있어서 수저를 잡지 못하셨다. 나는 울면서 아빠 손에 수저를 꼭 쥐어 드렸다. 아빠는 그렇게 식사를 하셨고 그대로 잠에서 깨어났다. 호텔 방에 누워서 말도 못 하고 눈을 꿈뻑이고 있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새벽 4시쯤이었다. 다른 침대에서 자던 언니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자다 깼어도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언니"

"응"


언니의 여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다 깨어 부르는데도 평소처럼 아무 위화감이 없는 것이 조금 기묘했다.


"언니 나 아빠 꿈을 꿨어"


언니에게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무언가 몽롱한 것이 현실감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던 언니가 그거 아빠 오신 거다,라고 조용히 말을 했다.

언니는 가끔 점을 보러 가면 점보는 사람으로부터 너는 왜 다 알면서 왔냐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용하다는 점쟁이가 갑자기 수줍어하면서 언니에게 해줄 말이 없다고도 했고, 점을 보러 갈 때마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하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처음 구두 브랜드를 냈을 때 청담동의 한 작은 오피스텔에서 시작을 했었다. 그때 옆 집에 신점을 보는 언니가 있었다. 우리 강아지 초코가 종종 문이 열려있는 언니네 집으로 들어가면서 말을 트기 시작해 친하게 되었는데 유독 우리 언니와 친했다. 그 점쟁이 언니도 우리 언니가 영이 맑아서 잘 안다고 다른 점쟁이들과 비슷한 소리를 했었다. 신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점들 때문에 나는 언니의 감을 신뢰하는 편인데 아빠가 오신 거라는 말을 들으니 덜컥 놀라고 말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집을 비우면 아빠 밥을 도맡아 차리곤 했었다. 물론 엄마가 만들어둔 국과 찬을 따로 담아 상을 차리는 수준이었지만, 어릴 때를 떠올릴 때 꽤 많이 차린 편이었다. 엄마는 집을 비울 때 나에게 많이 부탁을 했고, 주방에 관심이 많던 나는 어떤 반찬이 있는지, 아빠가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 알고 차려드리곤 했었다. 언니는 꿈 이야기를 듣고 얘기했다. "아빠가 네 밥상이 드시고 싶었나 보다"라고.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엄마에게 얘기해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를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빠가 식사를 하시던 곳에 밥상을 차렸다. 밥그릇을 가득 채운 하얀 밥, 우거지 된장국, 조기구이, 고구마 줄기 무침, 김구이, 김치. 소박하기 그지없던 밥상이었다. 아빠는 늘 그렇게 많지 않은 반찬과 정량의 밥만을 드셨다. 밥상을 차려두고 가만히 옆에 앉아 있었다. 고요한 시간이 지나갔다. 마치 아빠가 옆에 와 계신 것 같았다.

그리고 난 후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여전히 슬프고 눈물이 불쑥불쑥 나왔지만, 명치를 조이듯 꽉 막혔던 것은 사라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고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여름밤의 꿈을 꾼 후의 기묘한 감정과 상황은 어쩌면 아빠가 돌아가신 후 슬픔에 잠겨 있던 딸이 맞춰낸 허황된 조각일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믿는다. 이후로 아주 가끔 아빠꿈을 꾸지만 그때처럼 선명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 것이 실날같은 믿음으로 이어져온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벌써 5년이나 되었다. 가끔 마음이 헛헛해지고 눈물이 넘쳐 흐를 때가 있다. 그럴 때 생각이 난다. 그 여름 밤 아빠가 내게 찾아와 밥상을 차려달라 하시던 그 목소리. 그 꿈의 기억으로도 나는 다시 슬픔을 참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