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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l 25. 2022

애호박 이야기

그곳에는 없고 이곳에는 있는 것





동네 마트에서 귀여운 애호박을 발견했다. 비닐봉지에 쌓여 비슷하게 생긴 매끈한 애호박이 아니라 길에서 키웠음직한 제멋대로 생긴 애호박이다. 한 개에 천오백 원. 일 년 정도 전에만 해도 애호박 하나에 천 원 남짓, 이렇게 막생긴(?) 애호박이 두 개에 천원도 심심치 않게 보였는데, 물가가 올랐음이 이런 곳에서 느껴진다.



집에 돌아와 호박을 깨끗이 씻었다. 호리병 모양으로 살이 통통 오르게 생긴 애호박은 씨가 꽤 크다. 동그랗게 자른 후 반달 모양으로 한 번 더 잘라낸다. 식용유를 넉넉하게 두른 웍에 애호박을 넣어 센 불에 달달 볶다가 투명하게 익기 시작하면 새우젓을 한수저 작게 떠서 넣는다. 새우젓 국물을 좀 더 넣고 좀 더 볶아내다 참기름을 넣을 때는 참깨로, 들기름을 넣을 때는 들깻가루로 마무리한다. 둘 다 맛이 좀 다르다. 고소한 애호박 볶음이 간단하게 완성이 된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던 애호박 볶음은 자주 밥상에 올랐지만 제대로 한번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애호박의 물컹한 식감도 싫어했을뿐더러 이게 무슨 맛인지, 흔히 말하는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느낌이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볶음뿐 아니라도 애호박은 대부분 싫었다. 조림에 든 것도 별로였고, 그 좋아하는 부침개에 든 것조차 감자와 오징어 때문에 먹을 정도로 애호박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신기하게도 너무나 확 애호박을 좋아하게 된 시기가 있었는데, 20대 초반 일본에 잠시 살 때였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가능하면 오래오래 살고 싶을 정도로.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취직을 해야 하고 현실적인 문제들로 예정했던 시간만 머물고 돌아왔지만 아직도 종종 생각이 난다. 과거는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인 데다 20년이 다되어가는 이십 대 초반의 시간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만 기억에 남겠는가만은, 그때를 생각하면 참 즐겁고 좋았다. 하지만 역시 돌이켜보면 일본 어학연수 시절은 꽤 빈곤한 데다 경험치도 낮았기 때문에 일본의 음식 문화를 마음껏 즐겼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느낄 때여서 싸구려 규동 (불고기 덮밥)이나 텐동 (튀김 덮밥)을 먹어도 신이 났을 때였다. 가끔씩 990 엔하는 맥도널드 치즈 버거도 맛있게 먹었다. 낯설고 겁먹었던 초기와는 달리 시간이 가면서는 종종 비싸다 싶은 음식들을 무리해서 사 먹기도 하고 오래 있던 언니 오빠들이 사주는 꽤 비싼 음식을 얻어먹기도 했지만 역시 주식은 집에서 해 먹던 한식이었다. 신오쿠보에 있던 어학교에서 걸어서 신주쿠로 가서 놀다 이케부쿠로에 있는 집까지 자주 오곤 했는데, 동네마다 있는 마트를 들러 장을 보는 것이 우리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집 근처 마트에는 매일 타임세일과 마감세일이 있었는데 시간을 잘 맞춰 들렀을 때 비싼 식재료를 싸게 구할 수 있을 때는 신이 나서 한걸음에 뛰어갔다. 룸메이트들에게 오늘 저녁 메뉴는 연어구이라거나 닭볶음탕이야, 같은 문자를 보내고 냄비밥을 지어 함께 저녁을 먹고는 했다. 


일본에 살면서 자주 마트에 들르고 많은 것들을 사서 먹었는데 보이지가 않아서 생각나는 식재료가 있었다. 그렇다 일본에는 애호박이 없었다. 지금은 일본에서 판매를 할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깻잎, 애호박은 일본에서 볼 수가 없었다. 애호박은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그때 이후로 계속 애호박이 생각났다. 가장 생각난 것은 애호박전.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먹지 않던 애호박전을 바삭하고 부쳐서 간장에 콕 찍어서 먹고 싶어졌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애호박전이 너무나 그리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언니가 뭐 먹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처음으로 나온 답이 애호박전이었다. 평소 좋아하는 음식도 아니고 그럴듯한 거창한 음식도 아니어서인지 언니도 인상적이었다고 아직도 종종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 와서 애호박전을 먹고, 그날 이후로는 애호박이 애정 하는 식재료 중 하나가 되었다. 애호박 요리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애호박전. 동그랗게 잘라내어 소금과 후추로 살짝 간을 하고 밀가루 옷을 입힌 후 계란을 묻혀 부쳐낸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다. 또 좋아하는 메뉴는 애호박 건새우전인데, 몇 년 전 소유진 씨네 집에 놀러 갔을 때 백종원 대표님께서 해주셨던 것이다. 잘게 채 썬 애호박에 건새우를 잘게 가루를 내어 섞는다. 물과 감자 전분을 아주 소량 넣어서 부쳐낸다. 별 거 들어간 것이 없는데 매우 맛이 있다. 감자 전분 덕분에 쫄깃하면서 건새우의 감칠맛, 애호박의 맛이 모두 잘 어우러져있다. 지금은 방송에도 나와서 유명한 레시피지만 처음에는 맛있어서 깜짝 놀라고 집에 와서 몇 번이나 다시 해 먹었다. 이후로 건새우를 꼭 냉동실에 구비해 두고 애호박을 사게 되면 종종 해 먹곤 한다.






일본에서 살면서 한 번도 먹지 못했음에도 일본을 생각하면 재미있게도 애호박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워낙 무역이 활발한 시대니 어느 나라에 가도 대부분 필요한 것들을 다 구할 수 있지만 아직도 나라마다 있고 없는 식재료가 조금씩 있다. 당연히 20여 년 전에는 더 했었고. 그것이 애호박이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가 있다. 일본에 가기 전의 나였다면 애호박은 없어도 모르고 살았을 만큼 관심이 없던 식재료였으니까. 요즘도 시장에서든 마트에서든 온라인 마트에서든 애호박을 보면 눈길이 한 번 더 가고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나는 아직도 애호박에게 그립고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끔씩 호박전을 듬뿍 부쳐낼 때가 있다.
복순도가의 빨간쌀 막걸리와 즐겨본 호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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