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에 입덕한 날의 기억
나는 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십 대 중반까지. 고기나 생선 모두 생으로 먹는 것보다 모두 익혀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회를 좋아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미식가들은 모두 조리법을 최소화하고 재료의 본연의 최선의 맛을 끄집어내는 생선회를 칭찬했고, 나 역시 그런 미식가들 틈바구니에서 아는 척 한 줄이라도 해보는 것이 오래된 로망이기 때문이다. 생선회라는 음식을 나는 리스펙 하고 있었지만, 식감이나 맛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에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십몇년이 지난 이제는 회를 즐긴다. 나이 들다 보면 안 좋아하던 음식을 좋아하게 되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런 이유는 아니다. 그 사이에 내게는 회에 대한 강렬한 추억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광어회였던 순간을 경험한 순간의, 약간 불쌍하고 조금 웃기는 이야기다.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니 이미 십수 년 전의 일이다. (정확한 년도수는 세어보지 않는 것을 비슷한 세대에서는 이해해 줄거라 믿는다.)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틈만 나면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우곤 했는데, 그때는 유학을 간 친구들도 있었고, 4학년이라는 부담감으로 못 가겠다 한 친구들도 있어서 항상 10여 명이 가던 여행을 단 3명이 가게 되었다. 한껏 부풀었던 마음이 쪼그라들면서 일정도 취소했지만 당일이 되어서 미련이 남은 우리는 강의가 일찍 끝난 금요일 결국 꾸역꾸역 길을 떠났다. 솔직하게 말을 하면 미련이 남았던 건 나였고, 그 두 친구는 사실 내가 하도 가고 싶어해서 같이 가준 착하기 그지없던 아이들이다. 항상 신나서 여행을 짜던 때와 달리 처음부터 삐그덕 거렸던 여행이라 일정도 없었다. 떠나기 전 학교 컴퓨터 인터넷으로 급하게 서해 여행지를 검색해보다가 그냥 얻어걸린 충남 당진에 있는 '도비도'라는 섬에 가기로 했다. 인터넷 정보의 양이 그리 많지 않던 시대였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해도 제대로 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을 뿐더러 폭탄 같은 요금 때문에 벌벌 떨던 때이기도 했다. (nate, june을 아는 분이라면 이해해 줄거라 믿는다.)
말 그대로 무작정 떠났다. 농어촌 특별지역 어쩌고라는 당진시의 홍보 페이지를 대충 둘러보고는, 이런 즉흥여행도 괜찮다며 순하고 착한 친구들에게 엉망진창 브리핑을 했었다. 숙소도 장보기도 없이 그렇게 대충 간 도비도는 우리가 상상한 여행지나 섬이 아니었고, 낚시꾼들만 드나드는 곳이었다. 썰렁하기 그지없던 그곳에서 난감해하다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간 우리는 선착장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난지도라는 섬에 간다는 것을 알고는 바로 표를 끊어서 배에 올랐다. 하루 3번 배가 다니고 있었고, 그 배는 마지막 배였는데 출발 직전에 잠깐만요!!! 를 외치며 뛰어서 탔다. 난지도라고 해서 아는 곳도 아니었는데 마지막 배를 뛰어가면서까지 잡아서 탄 이유는 어디든 여기보다는 나을거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배를 타고 난지도에 가면서 도비도에 도착해 허탈했던 마음은 약간의 설렘으로 바뀌었다.
'섬이다 섬, 진짜 섬으로 간다!"'
우리는 매점에서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들에게 주기도 하고, 간식도 먹고, 사진도 찍어가면서 여행의 기분을 만끽했다. 섬에 도착하면 맛있는 걸 먹고, 마트나 슈퍼가 있을 테니 술과 안주도 잔뜩 사 먹을 생각이었다. 꿈에 부풀어 있는 사이 곧 배가 섬에 도착했다. 느긋하게 내리는 준비를 하고 내리려던 찰나, 무슨 조화인지 갑자기 배가 다시 출발을 하는 거다. 그때부터 우리는 사색이 되었다. 이대로 어디에 팔려가는 건가, 이 배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울기 직전이 된 친구를 달래고 선원에게 뛰어가 물었다. 방금 내린 곳은 소난지도고, 다음은 대난지도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친구는 울음을 멈췄지만 우리의 멘털은 탈곡기에 탈탈 털린 쌀겨처럼 너덜거렸다. 하지만 ‘대’가 ‘소’보다는 나을거란 희망에 눈물을 훔쳤다.
잠시 후 배가 대난지도에 도착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시기, 해는 이미 지기 시작해 주변은 어두워졌고, 함께 배를 타고 온 주민들은 각자의 집으로 바쁘게 사라지는 사이, 황량한 선착장에 선 여자 세명은 갈 곳도 없이 불안한 눈빛과 너덜거리는 멘털을 쥐고 덩그러니 남겨졌다.
한 아저씨가 너희는 뭔데 여기에 있냐는 눈빛을 하고는 다가와 어딜 왔냐고 물어왔다. 우리는 여행을 왔는데 해수욕장은 어떻게 가면 되냐고 물었고, 아저씨는 여기는 해변이 있지만 여름 성수기를 빼고는 아무도 오지 않는, 낚시꾼들이나 오는 곳이라며 우리를 딱하게 쳐다봤다. 그러면서 꽤 불쌍해 보였는지, 자기네 숙박업체에 빈방이 있으니 묵으라면서 차에 태워주셨다. 해변 근처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는 차를 타고 가다 우리는 잠시 해변을 둘러보고 가겠다고 차에서 내렸고, 아저씨는 친절하게 본인의 숙박업체의 위치를 설명해 주셨지만, 숙소의 금액이 입이 벌어지게 비쌌던 것으로 봐서 아저씨의 검은 속내를 짐작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긍정적 기운을 억지로 챙기며 해변으로 뛰어간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어둡고 조용한 바다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성수기에는 꽤 사람이 많은 곳인지 해변을 따라 쭉 횟집이 즐비했는데, 모두 문을 닫아서 컴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늘 사람이 북적한 유명한 관광지를 다녔던 터라 그런 적막한 바다는 본 적이 없었다. 그 많은 가게 중에 단 한 집만이 불빛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멘털은 부여잡고 그 집에 갔다. 다행히도 낚싯배를 대절해서 온 단체 손님이 예약을 해서 영업을 하는 집이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메뉴는 단 하나, 광어회였다.
배고픔에 손이 떨릴 지경이라 생각할 틈이 없이 무엇이든 먹어야 해서 주문을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횟집이니 약간이나마 밑반찬이 나오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광어회 외에는 쌈과 마늘, 고추, 김치, 그리고 조개탕이 나올 뿐이었다. 그러니까 보충하자면 그때까지의 나는 횟집에 나오는 곁들이찬 때문에 횟집을 가던 사람이었다. 부들부들한 계란찜이나, 부드럽게 익힌 전복까진 아니어도, 바삭하게 익은 꽁치나 느끼한 맛이 제맛인 콘치즈 정도는 있어야 만족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날, 2n 년 만에 처음으로 오롯이 광어회와 마주치게 되었다.
불행히도 나뿐 아니라 친구들도 회를 먹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는 불빛이 켜진 횟집이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이라도 된 것 마냥 반가웠기에, 아무도 아무런 불평 없이 기쁘게 차려진 회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광어회를 찬찬히 씹으면서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강렬한 맛을 깨닫게 된다. 생애 처음으로 물컹하고 느물거리는 생선 쪼가리가 광어느님으로 탈바꿈하던 기억이다. 이렇게 쫄깃하고, 신선하고, 고소하고 감칠맛이 느껴지다니. 이 집은 광어회에 무슨 조화를 쓴 것일까. 머리에서 종소리가 울리듯 회는 내 전두엽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날 우리는 회 한 접시를 야무지게 먹고, 조개탕도 리필해 먹고, 매운탕까지 끓여서 먹었다. 마트를 상상한 난지도에는 슈퍼도 없어서, 그나마 하나 문을 연 횟집에서 운영하는 작은 매점에서 소주와 라면을 살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지덕지였는지. 여행지에서 장을 볼 생각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친구는 고구마 몇 개를, 나는 마른오징어 몇 마리를 가방에 넣어와서 배에서는 절망적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횟집 앞에 지펴둔 모닥불에 구워 먹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졌다. 물론 회를 먹으면서 마신 소주가 엔도르핀으로 탈바꿈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던 것을 인정하겠다.
난지도 해변의 모래사장을 전세 낸 것마냥 즐겁게 놀던 우리는 산속 숙소로는 가지 않고 횟집 2층 민박을 구하게 되었다. 횟집은 식당, 매점, 민박 모두를 가지고 있는 복합 숙식 공간이었다. 이 곳을 예약해서 문을 열게 만든 낚시 모임 아줌마 아저씨에게 깊은 감사를 십몇년이 지난 지금도 드리고 있다. 다들 복 많이 받으시길.
다음 날 아침 바닷가 바로 앞 민박집에서 눈을 떴다. 잔잔한 파도치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던 그 적막한 바닷가의 이층 집의 허름한 숙소는 어느 호텔보다도 포근하고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무조건 호텔부터 예약을 하기 때문에,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런 기억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생선회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광어회의 가장 맛있는 부분은 지느러미였다는 개인적인 취향도 알게 되었다.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 엄청나게 스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 스릴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어떤 기억이든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려운 순간도 긍정적으로 즐겨야겠다는 깨달음도 덤으로 얻게 됐다.
그 날 이후로 회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정말 비싸고, 신선하고, 맛있는 회를 먹을 기회를 많이 만나기도 했다. 5성급 호텔이나 제주, 강릉, 일본에서 먹은 고급스러운 회부터, 바닷가 근처 횟집이나 수산시장들, 낚시 배 위에서 바로 잡아서 먹던 회라던가, 요즘은 오늘회라는 어플에서도 너무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회들까지. 모두 맛있게 먹는다.
그러나 예상하는 대로 뻔한 결말이지만, 누군가 내게 생애 가장 맛있는 회를 묻는다면, 스물네 살에 대난지도의 한 작은 횟집에서 먹은 광어회일 것이다. 그것의 실체는 사실은 무모했던 청춘의 한 조각이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날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허기가 만들어낸 최고의 식사였을 테지만 말이다. 뭐가 되었든 좋다. 비슷한 경험을 몇 번 더 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