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외식의 추억
연말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를 제외하고 부모님은 딱히 크리스마스나 연말을 챙기지 않으셨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은 주로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놀던 시간이었다.
가족끼리 크리스마스나 연말 송년회를 챙긴 것은 우리가 좀 크고 난 후, 기억으로는 내가 일본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부터였다. 그즈음 가족들과의 송년 모임을 정했었고, 십여 년 동안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다 일이 생기면 신년회로 미뤄지기도 했다. 부모님은 가족 송년회나 신년회를 먼저 챙기신 적이 없었다. 때마다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은 우리 부모님의 성향일 수 있지만, 한참 바쁘게 일을 하던 나에게는 배려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가족 모임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 가끔 시간에 쫓기거나 부담스러울 때면 고맙게 느껴진다. 부모님은 한 번도 서운한 티를 낸 적이 없었다.
4년여 전,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우리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휴일이기도 해서 부모님 집을 찾았고, 역시나 큰 의미 없이 함께 외식을 했다.
메뉴는 도가니 수육과 소꼬리찜, 도가니탕, 설렁탕.
그리고 그것이 아빠와의 마지막 외식이었다.
어릴 때 엄마는 사골국을 잘 끓여 주었다.
주방 위 가스레인지 위에서 밤새 끓던 하얗고 뽀얀 사골국. 기본 잡뼈를 넣은 사골 베이스에 고기는 종종 바뀌었다. 양짓머리일 때도 있고 소꼬리나 우족이나 도가니일 때도 있었다. 언니나 동생은 주로 기름기 없는 고기류를 선호했지만 아빠를 닮았던 나는 기름진 부위가 좋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건 도가니였다.
쫄깃하고 씹는 식감이 좋았던 도가니는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던 부위 중 하나였다. 어릴 때는 주변에 도가니를 좋아하는 또래가 없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이상한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라고 말도 못 하나 싶지만 어릴 때는 괜히 남들과 다른 걸 좋아한다 말하는 것에 용기를 내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비슷한 이야기인데 내 친구는 어릴 때부터 콩을 좋아했는데 하도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말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우리는 다 커서야 그 사실을 웃으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도가니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에는 내 취향을 잘 파악하지 못한 점도 있는데, 예전 소울푸드 글에도 썼던 내용인데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아서 헷갈려하던 나는 무엇이 더 좋은지를 스스로도 잘 몰랐었다.
스스로 취향을 자신 있게 말하기 시작한 것은 서른이 훌쩍 넘은 후이다.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무엇이 좋은지를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고 그 후에야 그것들이 말로 나오게 되었다.
아쉽지 않게 잘 많이 먹고살았으니 취향을 늦게 깨달았다고 해서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조금 안타까울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수준급의 사골을 우려내는 엄마 덕에 우리는 곰탕이나 도가니 등의 사골과 관련된 외식은 잘하지 않았었다. 왜 그런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런 걸 왜 밖에서 사 먹니, 라는 말이 나오는 음식. 그게 우리 가족에게는 곰탕이었다. 우리가 커서 독립한 후로 엄마의 사골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로 줄었고 그제야 외식 메뉴로 추가될 수가 있었다.
아빠가 도가니를 좋아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단 한 번, 마지막 외식을 빼고 제대로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한 적이 없다. 물론 아빠가 그것을 아쉬워하지는 않았을 거라 추측해본다. 아빠가 무언가를 말하지 못했다고, 혹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았다며 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것은 아빠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취향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외식의 메뉴를 고를 때 굳이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을 주장한 적도 없었다. 정해진 곳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 그것을 먹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즐기던 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이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빠는 한 번도 불평이나 불만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모습 때문에 나는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꽤 알았음에도 다양하게 도전해 보지 않았다.
이것은 꽤나 오랜 후에 나를 슬프게 했는데, 서울의 유명 도가니 집에 처음으로 갔을 때 아빠와 함께 왔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에 조금 목이 맨 상태로 식사를 더디게 한 기억이 있다.
다시 4년 전,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딱히 크리스마스를 챙기던 건 아니었지만 그날은 휴일 겸 송년회 겸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부모님 집을 찾았다. 우리는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아빠의 취향에 따라 아빠의 단골이었던 곰탕집에 갔다. 소꼬리찜과 도가니 수육을 함께 주문했다.
마지막 날의 외식. 기억에 남을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면 더 좋으련만, 우리는 평범하게 약간의 반주를 더한 식사를 했고 아빠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량으로 식사를 끝냈다. 사실 그날의 식사가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도가니 수육을 제대로 처음 먹어본 날이기 때문일 거다. 그간 도가니탕 외에 도가니 수육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도가니 수육을 정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커피를 마시자 했으나 들른 스타벅스에 자리가 없어서 그냥 돌아서는 아빠를 두고 언니와 나는 10분이 넘게 기다려 테이크 아웃 커피를 받아왔다. 식당이나 카페에서의 대기가 익숙하지 않은 아빠는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오래 기다려 마시냐고 웃으며 핀잔을 주셨는데, 그 눈빛과 스타벅스에서 주차장까지 걸어가던 길 등 별 것 아닌 풍경이 굳이 기억에 남았던 일상적인 날이었다.
끝을 잘 알 수 없어서 슬프다는 황경신의 시는 머릿속에 남아 떠오를 때마다 나도 슬프게 했는데, 아빠와의 마지막 외식도 그러했다. 그것이 마지막 외식일지 몰랐다.
무수한 외식 중에서 아빠가 좋아한 도가니 수육을 함께 먹은 것이 처음이라는 것, 그런데 마지막이라는 것, 하필 그게 나를 슬프게 한다. 우리가 자주 먹었던 오리구이였다면 덜 슬펐을까, 모르겠다. 그냥 가져다 붙이는 궤변일 것이다. 아빠가 좋아해서 종종 함께 먹은 샥스핀이나 불도장이었다고 해도 슬프지 않을 리 없겠지. 그래도 마지막 외식이 도가니라서 다행이다. 처음으로 사먹은 도가니 수육이 아빠와 함께라 좋았다.
뭔가가 시작되고 뭔가가 끝난다
시작은 대체로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났구나, 했는데 또 시작이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정말 끝이었구나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때가 가장 슬프다
황경신 「그때가 가장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