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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Feb 08. 2021

짜장라면 이야기

오늘은 내가 요리사







  카톡이 울렸다. 어린 조카가 짜장라면을 먹은 동영상이 도착했다. 짜장라면 위에 얹어진 반숙 계란 프라이를 야무지게 먹고 있었다. 짜장라면이 갑자기 먹고 싶어 진다. 이래서 먹방을 보나 싶었다.

 혼자 살면서 깨달은 점 하나. 나는 짜장라면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혼자서 먹는 횟수로는 일 년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맛있고 싫어하지 않는데 혼자 있을 때는 잘 먹지 않는다니,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혼자 살기 일 년 차에는 습관처럼 사둔 짜장라면이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기도 했다. 그 이후로 먹고 싶을 때 바로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 전에는 그것을 왜 몰랐나 생각해보니 가족들과 살 때는 자주 먹는 편이었다. 특히나 어렸을 때는, 일요일의 상징이었던 바로 그것.









 일요일 낮, 12시가 땡 하면 정오뉴스를 하는데 그때쯤 꼭 나오던 광고. 낭랑한 목소리의 CM송.


“오늘은 내가 요리사!

짜라짜짜짜 짜파게티”


 이상하게도 그 광고를 보고 나면 꼭 짜장라면이 먹고 싶었다. 그걸 노리고 일요일 12시에 꼭 그 광고를 넣었다고 들었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심리적 확신이 들기는 하다. 티브이를 보다 보면 가족들은 짜파게티를 먹자며 슈퍼마켓으로 달려갔으니까.



 광고 속의 요리사가 된 꼬마처럼 그때는 요리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늘 설명서대로 국물이 있는 라면보다 물을 약간 적게 넣고 면과 건더기를 넣고 끓이다 면이 익어가면 짜장 수프를 넣고 잘 섞는다. 마지막에 동봉된 기름을 짜서 확 볶아 주었는데, 언니랑 동생은 늘 기름을 생략했고 나는 늘 넣었다. 역시 어릴 때부터 맛을 잘 알았던 나.(잘난 척을 해본다.)



 빛깔이 고운 짜장 라면에 삶은 달걀과 곱게 채 썬 오이를 얹어서 먹는 것이 좋았다. 다섯 봉지를 한 번에 넣어 후루룩 만든 짜장라면이지만 그렇게 데코레이션을 하고 나면 괜찮은 식당에라도 간 것처럼, 내가 정말 요리사가 된 것처럼 기분이 꽤 좋았다. 달걀을 따로 삶는 것도, 오이를 채 써는 것도 은근히 손이 가는 과정이었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때도 지금처럼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이 있었다면 음식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댔겠지. 엉성한 짜파게티의 사진이 수십 장 남아 있었을 거다. 어찌 보면 흑역사가 없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도 하지만, 필름 카메라만 있던 시절, 일상생활을 찍어대던 카메라가 없던 아쉬움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휴대폰이 있었다면 맛있게 먹는 평범한 일요일의 식구들의 모습도 사진첩에 남아 있었을 텐데. 엄마 아빠의 젊었던 시간, 우리 자매의 어린 일상이 그 식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겠지. 지금은 기억 속에만 자리하는 장면이 아쉽다.



 조카의 먹방 덕에 오랜만에 혼자 먹는 식탁에 짜장라면을 올리기로 했다. 다행히 라면을 넣어두는 찬장에 하나가 남아 있었다. 요즘에는 이연복 셰프님이 방송에서 만들었던 것처럼 양파를 수프와 함께 볶다가 끓여낸 면과 함께 볶아서 짜장면에 좀 더 가까운 맛으로 먹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옛날 방식대로 정석적으로 만들어 보았다. 보글보글 끓여서 접시에 담았다. 혼자 먹는 것이지만 꾸미기도 해 보고, 사진도 찍었다.



 일요일은 짜장라면. 이런 소소한 일상의 공식은 생각보다 재미를 주는 일 같다. 가능하다면 매주는 어려워도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짜장라면을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짜파게티뿐 아니라 짜짜로니, 짜장면, 진짜장 같은 모든 회사의 짜장라면을 섭렵해 보련다. 언젠가 짜장라면 비교 시식기를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으니.

 기대하시라 짜라짜짜 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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