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모 - 양고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양꼬치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양고기를 좋아한다.
양꼬치가 크게 유행하기 몇 년 전부터 무척 좋아했지만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서, 그러니까 자주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 중에서는 함께 양꼬치를 먹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느 날인가 그런 내 처지를(?) 딱하게 여긴 친하게 지내던 잡지사 편집장님이 나를 초대해 주었다. 와인 수입사를 다니던 나와 동갑인 한 여성, 프랑스의 유명 디저트 브랜드의 나보다 열 살 정도가 어린 한 남성, 그리고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잡지사 편집장님. 큰 접점이 있지 않은 우리는 그날 동대문의 한 양꼬치 집에서 만났다. 벌써 4년 전, 더운 여름날이었다.
8월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니 양꼬치를 먹기에는 조금 더운 날이었다. 동대문 뒤쪽의 양꼬치 집에서 처음 만났던 우리는 직업상, 또 어느 정도의 사회 경험이 쌓인 사람들이 그러하듯 어색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로 인사를 나눴다. 그날의 메뉴는 양다리였다. 양의 뒷다리를 통째로 구워내는 것이라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3-4인은 되어야 주문할 수 있는 메뉴였다. 메뉴가 나오자 양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답게 다들 감탄했다. 자리를 더 즐겁게 만든 것은 일행이 가져온 수정방이었다. 향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중국술을 조금씩 음미하면서 먹었다. 에어컨을 넘어서는 열기에 조금 더웠던 것을 제외하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콜키지를 내고 마신 수정방이 다 떨어지자 연태고량주와 맥주를 곁들였다. 양다리를 해치우고는 (이 표현이 가장 적확하다) 양꼬치를 추가로 시켰다. 맥주가 열병이 넘게 쌓여갔다. 해가 지는 저녁 무렵, 마음껏 먹은 양고기에 향이 좋은 술까지 곁들인 우리는 모두 즐거웠다.
양다리에 양꼬치, 수정방에 연태고량주에 맥주까지. 더 부족할 것 없이 배불리 먹었건만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음식 취향이 맞는다는 건 처음 만난 사람들이 쉽게 친해지기 좋은 조건이 된다. 의견이 같았던 우리는 2차로 근처에 있는 훠궈 집에 갔다. 걸어서 3분 거리, 역시나 중국인들이 하는 유명한 훠궈 집이었다. 훠궈 집이지만 양꼬치를 비롯한 여러 중국 음식들을 솜씨 좋게 파는 곳이었다. 떠들썩한 그곳에서 한쪽에 자리를 잡고 양고기 훠궈로 화룡정점을 찍자는 것에 모두의 뜻이 모였다.
배가 많이 불렀지만 훠궈와 하얼빈 맥주는 끝이 없이 들어갔다. 사소한 일상 이야기부터 해외에서 살아온 이야기들, 그 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온 기묘한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쌓여가는 맥주병 숫자만큼 길어졌다. 우리에게는 양고기를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공통점들이 몇 가지 더 있었는데, 술을 매우 좋아하는 것과, 모두 엄지발톱이 한 번씩 뽑혀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엄지발톱이 뽑힌 경험이라니, 게다가 4명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신기한 공통점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다양하게 이어졌다. 그중에 가장 큰 건 역시 음식 취향의 공통점이었는데, 대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한 분은 참기름에 다진 마늘, 고수를 듬뿍 넣은 훠궈 소스를 제조해 주었다. 지금보다 훠궈 소스가 다양하지 않던 그때 그것은 어느 소스보다 맛있고 모두의 취향에 맞았다.
이후로 양사모의 모임은 이어졌다. 많은 양고기와 중국 요릿집으로 섭렵했다. 어느덧 양고기가 많이 대중화되고 같이 먹을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양사모의 모임도 점점 줄고 이제는 만나도 양고기만이 아니라 다른 음식을 먹을 때가 많다. 그러나 여전히 내 기억 속의 최고의 양고기는 양사모와 함께였고, 그것은 여름날의 뜨거은 열기와 함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오랜만에 양사모와 함께 한 양고기가 떠오르는 여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