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의 추억
전날 과음으로 다음날 아침이 되니 머릿속으로 따끈한 황태 해장국이 떠올랐다. 나이가 드는 것이 느껴지는 게 이럴 때 같다. 어릴 때는 아무리 속이 쓰려도 황태 해장국이나 콩나물 해장국 같은 것을 먹지 않았다. 국물이어도 좀 더 자극적인 짬뽕이나 순하다면 쌀국수 같은 것, 그런데 요즘에는 진한 북엇국이나 슴슴한 콩나물국 같은 것이 생각이 난다. 이렇게 어른이 돼버린 걸까. (하하)
20대에는 황태 해장국이 싫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는 그럭저럭 먹기는 했지만 즐겨 먹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늘 황태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 집 막내이자 반려견인 초코 때문이었다.
초코는 2005년에 우리 집에 온 시츄였다. 당시 한 살이었는데, 언니 친구의 조카에게서 파양을 당한 후 갈 데가 없어 임시 보호를 했었다. 나와 언니는 강아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아주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 며칠 후 조그마한 아이가 낑낑대며 아파해하는 것이 이상해서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배가 볼록 나와있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긴 개껌을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켜서 개껌이 그대로 강아지 목과 몸에 걸려있던 거였다. 식탐이 남달리 왕성한 시추 강아지다운 사고였다. 그날 개복수술을 하고 며칠을 앓던 강아지는 인생 아니 견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던 우리가 저 작은 것도 생명이라는 것을 느끼고 마음을 연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초코는 우리의 가족이 되어서 13년이 넘게 함께 살았다.
동해나 바닷가로 여행을 갈 때면 꼭 지역 특산물 건어물 가게에서 제일 좋다는 황태를 골라서 사들고 왔다. 꼭 불문율처럼 함께 살던 자매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아지에게 황태가 산삼처럼 좋다는 말을 듣고 황태를 끓여 간식을 주었다. 잘 먹을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황태 말고도 초코를 위한 주식과 간식은 끊이지 않았다. 주식은 사료였지만 기름기가 적은 소고기와 닭가슴살은 늘 두팩 이상씩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었다. 나도 못 먹는 소고기를 너는 잘 먹는구나, 유난스러운 세 자매와 반려견을 지켜보던 친구는 장난스럽게 얘기하기도 했고, 엄마는 초코가 제일 호강한다며 농담 반을 섞어 얘기하기도 했다.
함께 십몇년을 살면서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행을 갈 때도 갈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함께 했고, 친구들과 만날 때도 함께 했다. 식당에 가면 차에 있는 초코 때문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지금 봐도 참으로 유난스러운 자매들이었다. 셋 다 그리 유난스럽다기보다 다소 무던한 성격들인데, 처음 키워보는 강아지에게는 그 성격이 적용되지 않았다. 동물병원 선생님은 자매들이 키운 강아지가 유난히 어리광이 심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언니가 결혼을 한 후에는 동생과 나와 있는 집에서 키웠는데, 동생 방과 내 방을 오가며 잠을 자서 항상 방문을 열어두고 생활을 했다. 자고 있어도 들리는 탁탁 걸어오는 발소리가 너무 귀여웠고, 베개를 차지하며 내 머리를 밀어내도, 침대 중앙을 차지해서 옆으로 구겨져 잘 때도 잠결에 귀여워 쓰다듬어 주었다. 비가 오거나 천둥이 치면 너무 많이 떨어서 장마나 태풍이 오던 시기에는 우리도 며칠이고 잠을 설치곤 했다.
초코는 늘 나와 함께 출근하고 퇴근했다. 언니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안될 때는 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그것 때문에 욕도 많이 먹고 거절도 많이 당해서 콜택시를 부를 때 항상 강아지가 있다고 메모해 달라고 했었다. 비 오는 날 한 시간이 넘게 길에서 초코랑 덜덜 떤 적도 있었다. 가방에 넣어 있었지만, 면전에서 왜 개xx를 데리고 다니냐는 험한 말을 듣기도 했다. 그 후로 최대한 사무실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는 택시를 타는 부담감이 없어졌다.
열네 살이 되던 해 초코는 건강검진 결과에서 간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로 7개월 정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건강검진 내용을 들을 때 우리 자매들은 모두 엉엉 울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초코가 오래 살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코가 보내던 신호를 놓쳤던 것 같다. 처음 강아지를 키워서 강아지가 죽기 전의 징후에 대한 것도 잘 알지 못했다. 지금은 아프지만 괜찮아질 거라 믿었었다. 마지막을 더 많이 함께하지 못한 것 같아서, 그게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초코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진 그해 연말과 연초에는 며칠씩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2017년에서 2018년으로 넘어가는 날에는 일주일 정도 입원 후에 퇴원한 초코와 함께 보냈다. 조용하고 적막했던 새해였지만 초코가 함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날 새해 소원으로는 초코가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불행히도 내 기도는 하늘까지 닿지를 않았다.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2월의 어느 날, 그날도 호흡이 불안정해 이틀 정도 입원을 시켰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지났을 때라 아빠 추모관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동물병원에서 동생에게 초코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게 좋겠다면서 전화를 했다. 집에 돌아와 기력이 많이 빠진 초코를 눕혀놓고 소고기를 삶아주었는데 전혀 먹지를 않았다. 동생과 황태를 삶아서 물로 주면 어떨까 얘기를 하고 동생이 황급히 마트에 달려가 황태를 사 왔다. 갈아서 주사기로 조금씩 주자 그제야 아주 조금씩 받아먹었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고, 다시 누운 채로 앓는 소리를 냈다. 약간씩 새어 나오는 우는 소리가 커지면서 그때서야 나와 동생은 초코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언니에게 전화를 해 얼른 집으로 오라고 했고, 언니는 달려왔다.
그리고 힘겹게 숨을 잇던 초코는 우리 셋이 한 번씩 차례로 안아주자 마지막으로 안은 동생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어떤 반려견은 가족들이 모두 돌아온 후에 세상을 떠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초코가 그랬었다.
황태 봉지는 며칠이나 그대로 식탁 위에 방치되어 있다가 며칠 후에 냉장고로 들어갔다. 버릴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냉장고에서 자리하던 황태는 대청소를 하던 어느 날 냉동실에 넣어둔 닭가슴살과 함께 버려졌다. 아직도 황태를 보면 허겁지겁 마트에 다녀온 동생과 열심히 끓여서 갈아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가 만나게 되었을까, 죽음은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지는 날에는 그런 원론적인 생각들까지도 이어져간다. 초코가 떠나고 한참 동안 주변에는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못할 거라 얘기했다. 하지만 당연히 싫어서는 아니다. 너를 만남으로 너무나 행복했음을, 너의 존재가 나에게 너무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음을 초코가 가는 날 귀에 속삭였던 것처럼 나는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슬픔이 옅어지고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도 있겠지.
며칠 전 꿈에서 초코와 신나게 노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후 멍한 채로 중얼거렸다.
초코야 한번만 더 네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