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J Jan 24. 2021

카레 이야기

나와 친해지는 중






 어느 휴일, 부지런을 떨며 대청소를 했다. 평소 냉장고에 식자재가 많이 있어도 습관적 장보기를 하는 나에게 가족들은 잔소리를 하곤 했다. 청소를 하면서 냉장고를 비우리라 마음먹고 본격적인 냉장고 털이에 들어갔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카레를 발견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혼자를 위한 요리는 조금 귀찮아해서 대충 한다. 게다가 카레는 양이 꽤 많아서 두 명 이상 먹을 수 있을 때 하는 요리였다. 약간 고민을 했지만 카레 상자를 보는 순간 그 강렬한 맛이 맴돌아 서둘러 만들기로 했다.



 어릴 때 제일 먼저 만들어본 음식이 카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캠핑을 가서 카레를 만들었는데, 오뚜기 카레 박스 겉면에 있는 사진대로 감자, 당근, 고기, 양파 등을 넣어서 만들었다. 그때부터 주재료는 큰 변화가 없고, 종종 옥수수를 넣어 먹기도 한다. 대부분 함께 먹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감자를 많이 넣고, 싫어하는 당근은 조금만 넣곤 했다.

    집밥 백선생에서  여러 카레 레시피를 보면서 카레도 저렇게 다양하게 만들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번도 그대로   적이 없었다. 과찬하자면 스스로  창의력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카레에 비춰보면 창의력이라고는 일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구나 싶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언젠가 어묵탕을 할까 해서 사둔 스지와 목이버섯이 보여서 꺼내보았다. 스지 카레라니, 상상만으로 이미 기분이 좋아진다. 도쿄 히로오(尾)에 소꼬리 카레를 먹으러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다. 작고 아담한 가게였는데 처음에는 재료 소진으로 실패,  먹고 싶은 생각에  번째에 성공을 했고, 인상적인 맛에 여러 번을 갔었다. 스지나 소꼬리처럼 스스로 만드는 카레에 넣을 생각을 잘하지 않는 재료를 주재료로 쓰면 기분이 색다르고 약간의 기대감이 생긴다. 생각이 그렇게 기운 김에 목이버섯과 새송이버섯  역시나 카레에  넣지 않는 재료를 넣었다. 그러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감자를 빼고 당근을 많이 넣기로 했다. 별다를  없는 일이다. 그런데  생각을  후에 약간의 흥분을 했다. 좋아하는 스지와 당근이 가득 들어간 카레를 상상한 순간 요리의 주인공이 오롯이 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는 재료를 준비한다. 당근을 싫어하는 동생이 골라내기 힘들다고 푸념한 후로 되도록이면 크게 썰었던 당근은 내가 좋아하는 대로 작게 깍둑썰기를 했다. 그게 뭐 별거라고, 마치 삼십 년 정도 시집살이라도 하다 혼자가 되어 밥해먹는 사람처럼 후련해진다. 당근과 새송이버섯, 양파, 불린 목이버섯은 순서대로 볶아내고, 스지는 따로 물에 끓여내 익은 후에 먹기 좋게 썰어내고 육수를 볶은 채소들에 부어 끓인다. 카레를 넣어 다시 뭉근하게 오래 끓여낸다. 스지 때문에도 푹 끓여야 맛이 있다. 일본에서 유행한 ‘어제의 카레’도 꽤 맛있지만 바로 직후의 카레를 더 좋아한다. 좋아하는 현미밥 위에 카레를 담아냈다.


 한입 뜨는 순간 CF 모델처럼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진다. 쫄깃한 스지가 씹히고 육수로 감칠맛이 더해진 카레는 정말 맛있었다. 좋아하는 잘게 썰어진 당근도 입안의 풍미를 더했다. 맛있다. 앞으로 카레는 무조건 스지 카레다 싶을 정도다.







 나를 위한 요리라. 혼자 사는 사람에게 그리 대단할 것이 없는 말이다. 김치찌개에 참치를 넣지 않는다거나, 칼국수에는 국수만큼이나 애호박을 가득 넣는 것처럼 음식은 그때그때 내가 먹고 싶은 것들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유독 스지 카레를 만들 때 신이 났을까. 곰곰이 그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순간의 신나는 기분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동생이 결혼을 하고 혼자 살게 된지 1년이 조금 넘었다. 혼자 살게  후로 나는 내가 몰랐던 나와 종종 마주친다. 막상 습관이 되니 커피도 차도 뜨거운 것을  좋다던가, 삼겹살은 마늘참기름장에 찍어 먹는  좋아한다거나, 짜장라면은 일년에 한두번 정도밖에 먹지 않는다는 사소한 취향부터, 사진으로만 남겨두면 왠만한 추억의 물건들은 버려도 괜찮다 생각하는 대범함(^^)이라거나 날씨에 따라 시트러스향과 머스크향의 바디용품을 달리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소한 것들까지 말이다.
 요즘 들어 나는 나와 내가 얼마나 친한지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내가 친하게 지내는 타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나는 나를  모르고 있을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이런 작은 순간에 좋아하는 나를 깨닫고는 놀랄 때가 아직도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보다  모를 때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고, 반성이 되는 일이기도 했으며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정말 별것 아닌 작은 일로 깨닫게 되는 나의 취향, 모르고 있던 나의 취향. 나는 요즘 더 나와 친해지는 중이다.





그날의 스지 카레



이전 05화 꼬막 비빔국수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