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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an 18. 2021

호빵 이야기

언젠가가 아닌 바로, 지금




호빵 이야기



 금처럼 귀한 달걀이 특가로 나왔다는 어느 쇼핑앱의 알람에 급하게 들어가 보았다. 2천 원여 하는 달걀을 사기 위해서는 최소 2만 원 이상을 구매해야 했다. 대충 이것저것 몇 가지를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까지 마쳤다. 하루가 지나 배송이 왔다. 대충 넣어 달걀 외에는 무엇을 담았는지도 가물가물했는데, 열어보니 호빵이 3 봉지. 원래 단팥호빵을 더 좋아하는데 단팥호빵이 1 봉지, 야채호빵이 2 봉지인걸 보니 어지간히 생각 없이 급하게 담았나 보다.


 호빵을 먹은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자주 먹던 간식이었고, 대학생 때는 술이 취해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들른 편의점에서 재미삼아 종종 사 먹곤 했었는데, 그것도 벌써 십여 년이 넘어간다. 요즘에는 편의점에서 호빵을 본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호빵을 먹는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갑자기 허기가 나 호빵을 데웠다. 손으로 하얀 호빵을 반으로 가르자 까만 단팥 사이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호빵을 후후 불며 먹고 있자니, 갑자기 한참을 잊고 있던 겨울밤의 호빵이 생각났다  우리 가족이 모여 살던 어린 시절의 겨울밤.





 겨울밤의 호빵은 우리 가족에게는 즐거운 간식거리였다. 군것질을 잘하지 않으셨던 아빠도 호빵은 즐겨 드셨다. 추운 겨울밤은  길어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다 보면 출출해져서 간식거리로 자주 호빵을 사다 먹었다. 어느 밤은 아빠의 흰머리를 뽑고 듬뿍 주신 용돈으로 사러 가기도 했고, 어느 밤은 사다리 게임 같은 걸로 엄마와 아빠가 돈을 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의 소소한 이벤트였다. 가끔 아빠는 퇴근길에 종종 호빵을 사들고 오기도 하셨는데, 아빠는 무뚝뚝한 편인 데다 말로 표현할  없는 카리스마가 있어서 굉장히 무서운 어른의 분위기를 가지고 계셨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존댓말은 물론이고 모든 극존칭을 썼는데, 그런 아빠가 어울리지 않게 아기자기한 간식을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뛰어 나갔던  같다. 검정 봉지 안에는 호빵과 요구르트가 식구수대로 들어있었고, 저녁을 진작에 먹고도 배가 고파하던 어린 딸들은 기꺼이 간식을 반겼다. 제비 새끼 같이 기뻐하며 달려드는 자식들이 아빠의 고단한 하루 웃음짓게 만들었을까. 아빠가 어떤 표정이셨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호빵을 먹다가 아빠께 전화를 드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짧은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으면서 괜히 쓸쓸하게 느껴져 호빵 얘기는 하지 못했다. 어느새 부모의 품을 떠난 자식들, 더 이상 퇴근을 하지 않는 아빠의 일상, 매일 밤을 함께 보내며 티브이를 보다 호빵을 사 먹던 일상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기에. 문득 지난날이 그립고 모든것을 변해버린 세월이 새삼 야속하게 느껴졌다.

 전화를 끊으며 이번 주말에는 꼭 호빵을 사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와 TV를 보며 뜨거운 호빵을 후후 불어가며 먹어야지. 그게 그냥 일상이었던 어렸던 어느 밤처럼. 이 기분을 아버지가 계시지 않을 먼 훗날에 느끼게 되었다면 너무 슬펐을 것 같다. 무심결에 구매한 호빵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드는 밤이다.








 이 글은 계란 파동이 있던 2017년 1월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려고 써두었던 글이다.  써두고 나중에 수정을 해야지 하고는 쭉 잊고 있었다. 열 달은 족히 지난 그 해 겨울 어느 날 브런치 서랍에서 이 글을 발견하고, 잠시 멍해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빠는 이 글을 쓴 후 한 달 후에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아빠와 호빵을 먹지 못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주말에 우리는 제주도로 여행을 하기로 했었는데, 일이 생겨서 일정을 조금 미뤘었다. 그때 여행을 갔다면 아빠는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이랬다면, 저랬다면 여러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자리하고 괴롭힌다. 무슨 바쁜 일이 그리 많다고 미뤘을까, 시간이 많이 남았을거라 생각하며 미루던, 소홀했던 그날들을 후회한다. 나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인데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가끔 영화같은 상상을 한다. 타임머신을   있다고 한다면, 나는  가족이 모여서 호빵을 먹던  겨울밤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젊었던 아빠와 엄마를, 어리던 우리의 겨울밤을  한번 영화처럼 보고 싶다.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돌아가신 후에 발견하다니. 드라마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내게 일어날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누구나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거라는 어느 법의학자의 말처럼, 나에게 일어난 일이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란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말은 알 것 같지만 막상 실행하기는 어려운 교훈이었고, 나에게는 ‘언젠가는’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걸 알지만, 그게 한 달 후일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니까. 우리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 무한한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작년 겨울, 우리 자매는 엄마와 함께 미루던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다.   일정에 회사를 비워야 한다는 것에 적잖이 망설이고, 떠나기 직전까지도 취소를 염두하고 비행기를 예약했었다. 올해가 되고보니   하와이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엄마와의 해외여행은 코로나 때문에 얼마나  미뤄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깨닫는다. 역시 미루는 것은 하지 말아야할 일이라고. 마음 먹은 것은 지금, 바로 해버리자고.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비싼, 그리고 슬픈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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