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던 내가 국군 홍천 병원으로
다사다난했던 1학년 종료 후, 2017년 1월 16일 무작정 보병으로 지원했다. 아마 빠르게 군대를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지겨웠던 훈련소 생활이 끝나고 드디어 자대 배치를 받는 날, 내가 가게 된 곳은 '국군 홍천 병원'
보통은 간호 관련 특기가 있는 장병들이 지원해서 가는 곳이며 그게 아니다 하더라도 어떤 다른 특기가 있어야 갈 수 있는 천국같은 곳이었다. 천국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들 힘들다고 하는 혹한기 훈련이나 유격 훈련이 없으며 타 부대보다 부조리가 덜하고 추울 때는 따뜻하게, 더울 때는 시원하게 일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20살 숭실대학교 입학 이후로 내가 겪은 두 번째 변화였다.
빡빡 깎은 머리, 동그란 안경과 흐트러진 군복을 입고 행정반에 앉아있었던 내가 기억난다. 당시 나는 너무도 무서웠으며 내가 왜 병원에 왔는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중대장님은 나에게 '너는 아무 특기가 없이 왔으니 0부터 시작하는거다. 뭐든 배우면서 하면 된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으니 골라봐라'고 하셨고 그 세개는 세탁병, PX병, 후송중대를 가는 거였다. 이 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이와 같은 고민을 덜어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1생활관에 있던 병장들이다. 우리 병원은 신병이 들어오면 군생활 적응을 위해 1생활관에서 같이 생활한다. 그 때 나에게 잘해줬던(아마 집에 갈 사람들이라 잘해줬던 것 같다) 병장들이 말하길, PX 선임 분이 되게 좋고 휴가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었고 휴가를 많이 준다는 말에 PX로 가겠다고 말해버렸다.
PX에서는 다양한 업무를 해볼 수 있었다. 전단지를 뿌리고 매 월 말 재고 조사를 직접 해야 한다. 일치하지 않는 재고를 채워넣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행사 제품을 홍보하기도 했다. 창고에 수기로 날짜를 적어 넣으면서 일자를 관리했고 납품하시는 형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빵꾸가 났을 때마다 부탁을 하기도 했다. 우리 국군홍천병원은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MRI 기계를 보유하고 있었고 치료가 필요한 병사들이 성남에 있는 수도병원을 가기 전에 우리 병원에 들렀다가 가게 된다. 그래서 매번 사람들로 넘쳐났고 주말에도 면회객들이 많아 편히 쉴 수 없었다. 이렇게 한 매장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편의점 업계에서 근무해보고 싶었다. 이 때부터 나는 GS리테일을 목표로 잡고 공부했었고 스펙을 쌓아갔다. 나중에 다시 말할 테지만, 결국에 GS리테일 인턴 이후 최종 전환면접에서 탈락했고 이는 내 커리어가 완벽하게 꼬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PX는 월 매출이 7천만원에서 1억 사이로 나오는 곳으로, 엄청난 곳이었다. 물류 하시는 분들이 물량 좀 더 넣어달라고 이것저것 사주고 가시는 분들도 많았고 냉장고에 다 채워넣고 가시는 분들도 계셨다. PX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우수 판매병 타이틀을 얻을 수도 있었다. 또 CS리더스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병원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에게 CS 강의도 담당했던 적이 있다.
나는 PX를 관리하면서 실제 사람의 쇼핑 심리가 눈에 보이는 걸 선택하게 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유통기간이 임박한 빵을 판매할 때는 항상 제품을 가장 상단, 인간의 눈이랑 위치가 일치한 곳에 디피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바로 판매되었다. 또 코카콜라와 같은 인기 상품들은 굳이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모두 구매해갔으며 날씨가 너무 더울 때는 두유라 하더라도 시원한 제품을 구매해갔다. 주류나 홍삼, 화장품같이 병사들이 휴가 때 구매해가는 제품들은, 밖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PX 내에 판매되는 가격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병사들에게 말해주었고 이는 그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을 줬다. 후임 병사들 지인이 면회왔을 때, 나라사랑카드의 환급 혜택을 적극적으로 알려주며 그들을 돕기도 했었다.
나는 이 때부터 '소비자' '고객'을 위한 마케터, 혹은 관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소비자 심리에 대해 공부하고 분석해보면서 실제로 그들이 필요한 제품은 무엇인지, 먹히는 마케팅 전략은 어떤 것들이 있는 지를 공부하고 실제로 활용해볼 수 있는 곳에 취직하기를 원했다. 아직 더 많은 공부가 선행되어야겠지만 언젠가 소비자 행동 분석을 통해 그에 합당한 전략을 기획하는 담당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