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한 마음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12

by 빨간나무


39일간의 첫 치료가 끝나고 집으로 왔다. 이제는 약 1주일씩 항암치료를 받으며 입원과 퇴원이 반복된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더니 우리 집이 너무 낯설었다. 매일 락스로 소독해 주시는 소아암병동에 비해 비위생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점차 집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있다.


웬만하면 외출을 하지 않지만, 형들의 등하원길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갈 때가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엘리베이터에 아무도 타지 말기를, 아무와도 마주치지 말기를. 퉁퉁 부은 얼굴과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외모가 다른 아이가 되어버리고 이제는 걷지도 못하는 막내를 데리고서 나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아줌마를 마주치고 말았다.


“어머~~ 오랜만에 보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냐는 말에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안녕하지 못하니까.


평소 같으면 가벼운 이야기를 이어 나갔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불편해서 빨리 내리고 싶었다.


그분은 평소처럼 나를 대했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분의 눈이 막내를 향하는 것도, 이야기를 이어가는 분위기도, 모두 다 불편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또 다른 아주머니를 만났다. 서로 가볍게 인사하며 스쳐 지나가려는데 아주머니의 눈이 커지고 이상한 표정이 비췄다.


유모차 커버 속 셋째가 답답하다고 모자를 벗어버린 상태였다. 머리카락이 다 빠진 얼굴을 봤겠지?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도 마주쳤다. 어떤 분이 다가와서 아는 체를 했다.



“윤우 엄마~~ 셋째는 좀 괜찮아요?”


훅 들어온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너무 당혹스러웠다.



“아.. 네.. 알고 계셨네요.... 많이 괜찮아졌어요.”



“OO 이한테 들었어요. 병원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나네요. 이제 치료 끝났어요?”


“그저께 퇴원을 했는데 또 입원해서 한참 동안은 치료받아야 되네요..”



“힘들겠어요. 나을 거예요. 힘내요~~”



“네. 감사합니다.”



내 등을 토닥이며 지나가신 그분은 어떠한 악의도 없었다.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고, 오랜만에 나를 보니 반갑고 궁금했을 것이고, 응원의 말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모른 척해주길 바랐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치료에 대해 어디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 건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저 너무 불편해서 자리를 뜨고 싶었다.


힘내라는 말이 이렇게 폭력적인 단어였던가?


타인의 일방적인 희망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화살이 되어 귀에 꽂히고, 그 말에 힘이 나기는커녕 구멍만 생기고 만다.




- 제가 아는 지인의 자녀도 백혈병이었는데 지금은 다 나아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건강해요.



- 소아는 성인과 다르게 치료가 잘 된대요. 완치율이 요새는 80~90%래요.











그러나 아이가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우리 아이도 나중에 지인의 ‘그 아이’처럼 누군가에게 위로의 대상으로 기억될까? 흔하지 않은 병이니 몇 다리 건너까지 회자될까?


나쁜 마음이 아니란 걸 안다.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


셋째 아들이 암에 걸렸다.


내 세상은 셋째가 아프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긴 밤을 울었다.


임신 때부터 발병 전까지, 수 없이 곱씹으며 자책했다.




백혈병 치료가 시작된 지 3일째,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셋째가 쇼크로 의식을 잃었다. 그때 이미 지옥에 다녀왔다.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더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것이다. 늦게 발견했으면 지금 생존율은 더 낮아졌을지도 모른다.


이제 고작 2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치료과정은 혹독했다.


아이는 1달을 못 걷고 계속 기어 다녔다. 약 부작용으로 외모가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지금까지 전신마취를 여러 번 하면서 수술방에 들어갔고, 앞으로도 계속 같은 방법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검사와 항암을 해야 한다.


독한 항암제를 맞고 머리카락이 계속 빠지고 있다. 성장지연, 불임, 영구치손실 등 항암 부작용 때문에 암세포에 대한 치료가 잘 되더라도 계속 추적해야 한다.



울면서 수술방 앞에서 대기하던 시간을,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절망을,

항암치료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간병하는 고됨을,

며칠마다 수혈을 받으며 고비를 넘기는 상황을,

안을 때마다 가슴속에

케모포트가 만져지는 순간의 미안함을...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이 쪽의 세계를 저 쪽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당연한 사실이다. 예전의 나도 전혀 몰랐으니까.


그러니 나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이해를 바라는 마음은 없다.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했던 나도 얼마나 모르고 살았나. 병원에는 이토록 투병 중인 사람이 많다는 걸. 생사를 오고 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제는 길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이 제일 큰 위로가 된다. 그래서 입원 생활이 힘들지만은 않다.


병동에서 만난 엄마들이 고맙고 의지가 된다. 진심으로 아이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위로를 받고 싶고, 그게 힘이 된다. 그런데 또 어쩔 땐, 너무 걱정 안 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은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신경 안 써도 되는 사람들, 스쳐 지나갈 타인들은 아예 몰랐으면 좋겠다. 알더라도 아는 척을 안 했으면 좋겠다.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과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모르는 척 지나쳐주길 바라는 마음의 중간을 나도 모르겠다.


아이가 정말 괜찮아지면, 그래서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면, "다 나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오면,


이 옹졸한 마음도 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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