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13
관해치료 다음부터는 긴 입원은 없다. 약 1주일씩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항암치료를 이어나간다.
정말 다행이지만, 집에서 막내의 먹을거리가 가장 큰 걱정이 되었다. 면역력이 매우 낮아서 식품섭취 지침을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3끼 모두 살균식으로 나오니 먹이기만 하면 되었지만, 집에서는 요리뿐 아니라 청소, 빨래, 등하원까지 아이 돌보는 일을 병행해야 해서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해내야지! 나는 엄마니까.
항암치료 중인 면역저하 소아암환자의 식품 지침은, 모든 식재료는 반드시 불에 가열해 먹여야 한다. (살균효과)
- 생채소나 과일은 껍질을 벗긴 사과, 바나나, 배, 귤, 감, 오이 정도만 허용된다. 좋아하는 포도나 딸기는 먹을 수 없다.
- 양념류도 반드시 끓이거나 1회용 소스를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찐 계란을 소금에 찍어 먹을 땐 1회용 소금을 써야 한다.
- 식수는 정수기가 아닌 생수나 끓인 물만 가능하다.
- 익히지 않은 음식, 조개류, 말랭이, 가루류, 잣, 내장, 실온 진열 빵, 잼이나 속이 있는 과자, 냉동 과일, 요구르트, 치즈 등 균이 들어간 음식은 금지된다.
- 조리 후 음식은 상온에서 2시간 이내, 냉장 보관 시 24시간 이내에 먹여야 하며, 냉장 보관 음식은 다시 5분간 팔팔 끓여서 줘야 한다.
- 식기는 식기살균기에 따로 보관하고, 조리도구는 뜨거운 물로 세척해야 하며, 도마 등은 나무 대신 플라스틱을 쓴다. 환아용 식기는 별도로 구분해 사용한다.
- 외식은 가급적 피하며, 불가피할 경우 바로 끓인 음식만 먹인다. 배달음식도 사실상 불가하다.
- 영양제, 홍삼, 한약 등은 금지한다. 항암제와 상호작용 위험 때문이다.
이런 규칙들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식사를 준비하려면 매 끼니마다 음식을 새로 끓여야 한다.
소량으로 밥을 짓고 반찬도 바로 만들어야 해서 무척 힘들었다. 카레나 미역국 같은 음식은 대량으로 끓여 다음날까지 먹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더 어렵다.
매일 아침 계란을 삶고, 카레, 떡국, 영계백숙, 콩나물찜, 볶음밥, 계란프라이, 김밥, 조미김, 데친 소시지 등 다양한 음식을 내주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고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굽고 찌고 삶고 다지고 볶아냈다.
간식은 허용된 과일, 팩 우유, 팩 주스, 병 주스 등을 줬다. 아이러니하게도 생과일은 금지지만, 통조림 과일은 먹을 수 있다. 깨끗이 씻어도 농약과 균이 많아 면역력이 낮은 경우 균에 감염되거나 탈이 날 수 있다고 하셨다.
빵은 매장에 진열되어 판매 중인 것들은 금지이다. 밀봉·살균된 편의점 빵은 허용된다. 속 없는 맨 빵류만 가능한데, 막내가 좋아하는 식빵과 모닝빵은 소포장 밀봉 제품이 적어 아쉽다.
한 번은 김밥에 꽂혀서 계속 만들어달라고 했다. 김밥을 만들 때도 지침을 지켜야 하니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햄을 물에 넣어 익히고, 생채소 대신 단무지를 볶아 속까지 익혔다. 밥을 새로 짓고 밥에 넣을 양념은 한번 팔팔 끓였다. 모든 재료들을 준비하여 만들어 먹기까지 2시간 이내에 해내야 하니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엄마. 이거 먹어도 돼?”
늘 안된다고 말렸더니 이젠 먹기 전에 꼭 물어보고 있다. 그 모습이 짠해서 냉장고에서는 막내가 먹지 못 하는 것들을 모두 퇴출시켰다.
과일이나 빵 등 평소엔 쉽게 접했던 음식들을 아이 앞에서는 못 먹고 몰래 숨어서 먹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너무 미안했다.
“엄마, 나.. 햄버거 먹고 싶어....”
병동에서 만난 13살 아이가 커튼 너머 엄마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항암치료 중에는 외부음식은 반입 불가하며, 햄버거는 생채소와 소스류를 빼고 먹어야 하기에 평소에 먹던 대로 먹을 수 없다.
시커먼 피부와 앙상한 팔다리로 조심스럽게 햄버거를 원하는 아이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잘 치료받으면 먹게 될 거라고 대답하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한편, 백혈병 환자를 위해 소포장 밀봉 시리얼 신제품이 출시되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렇게 적은 수요에도 선한 마음으로 동참해 주는 기업이 있음에 감사하다.
밀봉된 과자류는 개봉하고 4시간이 지나면 제한이 된다. 입맛이 없는 아이들은 조금 먹고 버리게 되므로 암환아를 위한 소포장 살균제품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