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일상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14

by 빨간나무




긴 병원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차에 타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 마음은 이상했다. 고작 첫 번째 치료가 끝난 것뿐이라,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집에 간다는 기쁨은 있지만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병동에 있을 땐 거기가 마치 영화 속 공간 같았고, 밖으로 나오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 믿었지만, 퇴원해도 곧바로 현실에 적응할 수 없었다.



12월 22일, 백혈병을 진단받은 날보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막내는 혈액암을 치료하기 위한 고강도의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아주 조심스러운 상태였다.


소아암환자를 키우는 집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먼저, 오래된 물건은 다 정리하여 버리고, 청소업체를 불러 대청소를 했다. 창틀의 곰팡이까지 치웠다. 또, 소독업체를 불러 온 집을 소독했다.


첫째와 둘째의 건강 관리도 했다. 퇴원 전후 일주일 동안 등원시키지 않았고, 온 가족이 외출을 삼가고 집에만 머물렀다.




막내동생을 위해 마스크를 쓰는 둘째



형제들은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했다. 잘 때는 벗어야 하니 이부자리를 다른 방에 마련했다. 나는 막내와 생활하고, 아이들은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다.


더 큰 아이면 화장실이 딸린 방을 내어주고 무균실을 표방해 지낸다고 들었지만, 만 2살인 막내는 그럴 수가 없었고, 아직 기저귀를 쓰고 있어 화장실 소독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게 다행이랄까..



가족들은 외출하고 돌아오면 현관에서부터 옷을 벗어 치우고 소독제를 뿌린 뒤 바로 씻었다. 집안 곳곳을 자주 정리하고 소독했다.


장난감, 식기, 침구 등 막내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따라다니며 닦고 소독했다. 소독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막내도 손을 내밀며 “쪼도쪼도(소독)”라며 기다리곤 했다.


이렇게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모든 일에 예민해졌다.



다행히 첫 휴식기인 1주일 동안 가족들은 모두 건강했고 막내도 컨디션이 좋았다. 집에 와서 편한 잠자리에 가슴에 달린 라인이 없이 뒹굴 수 있으니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다.


꿈만 같았다. 집에서의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1주일이 지나고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다음 치료가 이어졌다. 그리고 1주일 후 퇴원을 하였고 두 번째 휴식기 역시 약 일주일간 이어졌다.


이번에는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 덕분인지 전보다 순조로웠다.


집에서 가벼운 산책이 허용되었지만 혹시 몰라 집에만 있었는데, 이번에는 용기를 내 유모차에 막내를 태워 밖으로 나갔다.



유모차 커버 속에서 산책을 두어번...


오랜만에 바깥구경에 막내가 정말 좋아했다.

병원 외출이 아닌, 일상 속 외출을 하다니!



비록 유모차 커버 속에만 있었지만 오랜만에 강아지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앞으로 지금보다 나아질 일만 남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평범한 시간이 쉽게 허락되지는 않았다.


퇴원 후 계속 밥을 잘 먹지 않았다. 항암치료의 여파인지, 식욕을 올리던 스테로이드를 끊어서인지, 혹은 혈액 수치가 나빠서인지 알 수 없었다.


낮에는 그럭저럭 잘 놀지만 밤에는 깨서 울고 보채는 일이 계속되었다.


혹시 빈혈일까?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수치가 나쁜 건 아닐까? 안아 재우며 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디가 불편한지 말을 못 하므로 그저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막내는 가끔 손발이 매우 뜨거워졌다. 병동에서도, 집에서도 그랬다. 그럴 때면 더 불편한 기색을 보여서 쉼 없이 주물러줬다.


항암제의 부작용 중에 피부가 건조하거나 저리는 등의 상황이 있다고 안내를 받았는데, 어느 날 보니 손과 발의 피부가 얇게 벗겨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벗겨지는 피부껍데기,

또 빠지는 머리카락들,

씻길 때 보이는 가슴의 큰 흉터,

엉덩이에 남아있는 주삿바늘 자국,

밤에 깨서 '아파!!!' 하는 울음 섞인 목소리,

어딘가 불편해서 꽉 안기는 숨결,

얇고 마른 두 다리,

부기가 덜 빠진 얼굴,

아직도 어설픈 뒤뚱뒤뚱 걸음마.....


아이가 아프다는 것도 잊을 만큼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이런 순간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앞으로의 항암치료에 대한 두려움과 완치로 가는 믿음이 공존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평범하면서도 가슴 아픈 일상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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