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11
관해유도요법 4주 차 1일,
드디어 첫 치료의 마지막 날이다.
빈크리스틴을 15분 동안 투여한 뒤, 점심을 거부하고 우유만 한 팩 마셨다. 항암 치료 중 입맛이 변한다더니 평소 잘 먹지 않던 흰 우유를 매끼마다 하나씩 먹고 있다.
우유가 울렁거림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다음 날, 또다시 수술실에 가게 되었다. 골수검사와 척수강내 항암시술을 같이 진행했다.
이번 골수검사에서 암세포가 5% 미만이면 관해가 성공한 것으로 본다. 만약 실패하면 2차 관해를 시작한다고 하셨다. 소아 림프모구 백혈병 환자들의 성공률은 95%가 넘는다고 하셨으나 혹시 모를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신마취를 위해 자정부터 금식했다. 병실 앞에는 이동식 침대와 이름이 적힌 모래주머니가 준비되었다.
이번이 4번째 전신마취였다. 울고 있던 아이를 달래며 마취 주사를 놓는 순간, 또 마음이 미어졌다.
회복실로 옮긴 뒤 연락을 받고 들어갔다. 잠시 후 마취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산소마스크와 심전도기가 싫다고 고개를 저으며 빼는 시늉을 했다. 잠시 후 맘마를 달라고 고래고래 울었다.
그런데 시끄러운 반응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잘 깨어났다는 증거라서.
오후 늦게 주치의 선생님께서 찾아오셨다.
병실 커튼을 살짝 열고서 “관해 잘 되었습니다.”라고 알려주셨다. 모두가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아이의 몸속에 암세포들이 사라졌다니 감격스러웠다. 긴 시간 동안 가혹한 치료를 잘 버텨준 아이에게 고맙고, 의료진께도 감사했다.
약 1달 후에는 미세잔존질환(Minimal Residual Disease) 결과가 나오는데, 이는 재발과 크게 관련된 중요한 수치이며, 유전자 변형과 염색체 검사 결과를 포함해 앞으로의 치료 일정이 결정된다고 하셨다.
39일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잠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지 모른다.
휴식은 짧다. 며칠 후 다시 입원해서 공고 치료가 시작된다. 혈액 수치가 좋지 않아 감염에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남겨진 아이들을 안아줄 수 있고, 밤에 복도를 배회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가장 큰 소원은 편히 자고 편히 씻는 것이었다.
치료비는 39일간 500만 원이 나왔다.
산정 특례 혜택 덕분에 5%만 부담했다. 제도가 없었다면 3천만 원에 육박하였다. 표적항암제나 비급여 주사, 이식까지 하게 되면 수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가족들이 보내주신 헌혈증 덕분에 수혈 횟수에 대한 비용 일부는 차감되었다. 39일간 총 12번의 수혈을 받았고 헌혈증의 개수만큼 무료가 된다.
퇴원 당일, 짐을 미리 싸놓았다. 아이에게 외출복과 휑한 머리를 가릴 모자를 씌웠다. 환자복을 벗자 확연히 달라진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에 병원에 들어올 때만 해도 수북한 머리숱에 귀여운 외모였다. 지금은 얼굴은 터질 듯이 부어오르고 팔다리는 앙상하며 걷지 못해 안겨만 다니고 있다.
머리카락은 가운데는 모두 비워지고 옆과 아래에는 조금씩 남아있다. 혈색은 창백하여 누가 봐도 아픈 아이의 모습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집에 갈 생각에 우리는 행복했다.
병원비 심사가 지연되어 오후 2시가 다 되어 퇴원했다. 케모포트 바늘을 뽑아내자 아이의 몸과 연결되어 있던 병원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동을 나섰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을 통해 나왔다. 너무 낯설었다. 바깥세상이 온통 균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다. 손을 쉼 없이 소독했고 마스크를 바짝 당겨 쓰고 집으로 돌아갔다.
막내는 오랜만의 집이 낯설었는지 여기저기 기어 다녔다.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을 다시 만나 행복해했다.
첫째와 둘째는 내 곁에 꼭 붙어 있었다. 우리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만나게 되어 꿈만 같았다.
모두가 막내를 위해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동생을 대했다. 물건들은 물론, 집 곳곳을 수시로 소독하고 청소해야 했다.
행복한 순간이 며칠 지속되었지만 마음 한편은 너무 아팠다. 병동에서는 모두 아픈 아이들이라 그 속에서는 다름을 몰랐다. 오히려 막내가 상대적으로 건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집에 오니 건강한 형들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빠져있고, 쇄골 아래에는 흉터 속에 케모포트가 들어있다. 엉덩이에는 골수검사를 해서 커다란 거즈가 붙어 있고, 다리는 너무 말라 걷지 못하고 기어 다녔다. 형들도 동생의 바뀐 외모에 낯설어하고 불쌍해했다.
막내가 서있으려고 시도했지만 자꾸 주저앉았다. 1달은 아예 걷지 못해 근육이 다 빠져버렸다. 돌 전 아기처럼 기어 다니는 게 최선이었다.
“동생 얼굴이 왜 이렇게 커? 왜 못 걸어?”
아직 백혈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둘째라 물어왔다. 우리가 병원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린아이이다. 약이 독해서 많이 힘들었다고만 설명해 주면서 나는 여러 번 울컥했다.
관해 시기에는 걷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서서히 다시 걷기 시작한다고 들었다. 불안하지만 우리 막내도 다시 걸을 것이다.
부기도 빠지고, 케모포트도 완치 후에 뺄 수 있으며, 머리도 다시 자랄 거라고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 나을 거야,라고 여러 번 되뇌었다.
그래도 집에 왔잖아. 우리가 집에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