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07
입원한 지 22일째, 진단받은 지 15일째,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6일째 되는 날이다.
오늘의 일정은 빽빽했다. 매일 새벽 5시 채혈을 통해 그날의 혈액 수치를 확인하면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자고 있는 아이의 중심 정맥관에서 채혈을 한다. 보통은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픈 처치들로 예민해져 있어서 간호사선생님이 가까이 오기만 해도 깨서 소리를 지르며 깼다. 매일 제대로 자지도 못하니 너무 피곤하지만 나보다 힘들 아이를 생각하면서 달랬다.
결과에 따라 수혈을 받거나 수액 종류가 달라지기도 하고, 추가 검사가 결정되기도 한다. 오늘은 백혈구 700, 혈색소 7.9, 혈소판 14000, 호중구 40이다.
'백혈구 중 호중구'는 면역력을 수치화한 것이다. 0에 가까워지는 중이라 감염에 조심해야 한다. 혈색소와 혈소판은 기준보다 낮아 모두 수혈받게 되었다.
시간마다 열을 재고 혈압을 확인했다. 겨드랑이에 끼우는 액와 체온계를 불편해서 울고, 팔을 조이는 혈압계도 싫다고 움직여서, 간단한 검사에도 아이를 꽉 잡고 협조해야 했다.
또한, 하루 3~4번 때맞춰 먹는 약이 배달된다. 아기는 약병을 보기만 해도 울지만 무조건 먹여야 한다. 먹는 약은 한 번에 20ml가 넘어갈 만큼 양이 상당하다.
오전 9시 30분, 노란 혈소판이 도착했다. 수혈을 받는 동안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하여 또 열과 혈압을 재고 있다. 그 시간마저 아기에게는 끔찍하다. 혈소판은 약 2시간가량 투여되었다.
오전 11시에는 수술실로 내려갔다. 오늘도 척수 강내 암세포 검사와 항암제를 넣는 시술이 있다.
2주마다 척수액을 뽑아 전이가 되었는지 검사하고 빈자리에 소량의 항암제를 밀어 넣는다. 과거에는 뇌 속 장벽 때문에 항암제가 영향을 덜 미치는 곳에서 재발이 잦았고, 이로 인해 생존율이 낮았다고 한다.
지난 검사에서 아직 전이된 게 없지만 예방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척수강내 항암시술을 하고 있다. 관해 기간 동안 총 세 번 시술하게 되는데, 어린 아기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전신마취를 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0시부터 금식을 시작해 오전 11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침부터 “맘마”를 외치며 울던 아이를 계속 안고 달래야 했다.
물 한 모금도 못 마시는 이유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이인지라 하루가 더디고 고됐다. 내 허리는 점점 한계에 다다랐다.
수술실에 들어가 이름과 정보를 확인하고 마취가 시작되었다. 고장 난 로봇처럼 눈을 뜬 채로 굳어버린 아이를 누이고 수술실 문을 나섰다.
전신마취 후 이송되는 모습이 세 번째이다.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행히 잘 깨어났다.
“어엄마아…”
산소마스크를 쓰고 느리게 말하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안도했다. 나를 알아봤고, 자가 호흡이 가능하고, 산소포화도와 심박수도 안정적이다.
40분 더 회복실에 누워있다가 병실로 돌아왔다. 척수강내 항암제가 잘 흡수되도록 2시간 동안 누워 있어야 한다. 이때 일어나면 두통과 구토를 할 수 있다고 하여 나도 같이 누워 안정을 취했다.
아이는 힘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물부터 천천히 먹여본 뒤, 밥도 시도했는데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그리고 다 토해버렸다. 토봉지는 손 닿는 곳에 뒀다. 나는 겨우 봉지를 갖다 대고 토를 받아 무게를 재어 기록해 둔다.
오후 2시에 혈색소 수혈팩이 도착했다. 혈액팩을 매달고서 수혈을 받았다. 뚝뚝뚝 빨간 피가 케모포트를 통해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수혈받고 나면 수치가 확 오르지만, 그마저도 정상 수치는 아니고 곧 다시 밑 빠진 독의 물처럼 떨어진다.
수혈을 받을 때면 ‘헌혈의 집’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영화표나 간식을 주기에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헌혈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느 분의 고귀한 나눔으로 아이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곧이어 허벅지에 항암 주사를 맞았다. 이틀에 한 번 엉덩이에 맞는 아스파라기나제 항암주사는 오른쪽, 왼쪽 번갈아 맞고 있지만 매번 똑같이 아파했다.
큰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근육이 너무 뻐근하고 뾰족한 얼음조각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했다. 아이를 아기띠로 안고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은 채 허벅지에 주사를 다 맞았다.
잠시 후 팔에 백혈구를 촉진하는 주사도 맞게 될 거라고 하셨다. 또 울겠다..
금식, 전신마취, 척수 바늘, 주사, 소독, 채혈... 이 조그마한 아이가 겪는 고통이 너무 크다. 아픈 기억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간호사 선생님이 가까이만 와도 “아니야!” 하며 운다.
나는 안아줄 수밖에 없다.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옆 침대 아이가 아무것도 못 먹고 계속 토하는 소리를 들어도, 머리카락이 다 빠진 아이를 봐도, 폴대에 항암제, 수혈팩, 영양제가 주렁주렁 연결된 모습을 보아도, 이젠 아무렇지 않다.
기저귀와 구토물의 무게를 재어 기록하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같은 병동의 아이들 모두가 이런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아이들은 암병동에서 놀고, 웃고, 살아간다.
막내는 혼자 누워 길게 자지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 늘 아기띠로 안아 나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래도 이 커튼으로 나뉜 작은 병실 공간 안에서 치료받고 먹고 자고 놀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고 있다. 힘든 하루였지만, 이 하루가 지나면 완치에 더 가까워진다고 믿으며 내일도 버틸 것이다. 우리 참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