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08
관해유도요법의 2주 차가 시작되었다. 항암 치료 일정은 지난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빈크리스틴은 주 1회 수액으로, 아스파라기나제는 격일로 3회 엉덩이 주사로 맞고, 매일 촉진제 주사를 팔에 맞고 있다.
오늘의 혈액수치는 백혈구 480, 혈색소 9.4, 혈소판 52000, 호중구는 0.00이다. 결국 혹은 드디어 호중구가 0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항암치료 후 백혈구가 낮아지는 건 당연하다. 오히려 약이 잘 듣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0이라는 숫자는 너무 차가웠다. 감염에 무방비 상태라는 뜻이니까.
그래서 매일 번갈아가며 양쪽 팔에 촉진제 주사를 맞아야 한다. 촉진제는 골수를 자극해 백혈구 생성을 촉진시키는 약제이다. 이 전에 채혈했던 손등의 멍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엉덩이와 팔에도 주사 자국이 늘어만 간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잘 놀았던 아이가 오늘은 힘이 없었다. 등을 대고 누워 자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3시간을 꼼짝 않고 누워서 잤다. 24시간 내게 매미처럼 붙어 울기만 하더니, 웬일로 잠을 자줘서 나도 오랜만에 아이와 떨어져 잠을 청했다. 누적된 피로로 자는가 보다 했다.
하지만 끙끙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온몸이 뜨거웠다. 12일 만에 다시 열이 났다. 액와체온계는 38.4도를 가리켰고, 이마는 그보다 훨씬 뜨겁게 느껴졌다. 아이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잘 자고 있던 게 아니라 아파서 힘이 없었던 것이었다. 미리 알아채지 못해 미안했다. 다시 열이 나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항암치료 중 열은 흔하다. 항암제의 부작용일 수도 있고, 골수기능이 억제되면서 혈액들의 기능 저하로 나는 열일 수도 있고, 혹은 균에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 많은 아이들이 겪는 부작용이다. 하지만 막상 열이 나니까 온갖 나쁜 상상이 몰려왔다.
간호사 선생님께 알리자 바로 케모포트와 말초혈관에서 채혈해 균 배양 검사를 했다. 해열제와 항생제도 즉시 투여됐다. 소변 검사, 폐 엑스레이까지 한꺼번에 진행됐다.
아기는 계속 울었다. 열 때문인지, 불편해서인지, 무서워서인지. 아무리 안아줘도 편하지 않았다. 계속 몸을 뒤척였다. 열이 나면서 식욕이 떨어지고, 안아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퉁퉁 부은 얼굴이 낯설었다.
사실 이 정도 열은 소아암 병동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는 고열, 구토, 감염, 그 이상의 일들이 매일 벌어지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묵묵하게, 씩씩하게 하루를 산다. 그러나 내게는 지난번 일이 생생하다. 아이가 의식을 잃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또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눈앞이 흐려졌다. 그래도 병원이니까 다행이다. 해열제, 항생제, 검사를 바로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해야 한다. 심전도 모니터도 다시 붙었다. 선생님들께서 계속 살피러 오셨다.
열이 난 다음 날 아침, 아기가 분수토를 했다. 꾸엑꾸엑 콸콸콸... 상상도 못 했던 양이었다.
여러 번에 걸쳐 토를 해서 안고 있던 내 몸에도, 아이의 몸에도, 병실 바닥에도 토가 쏟아졌다. 이곳에는 나뿐이다.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해야 했다. 처져있는 아기를 대충 닦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혔다. 바닥과 주변에 튄 토를 소독제로 닦아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보호자 샤워실은 환아가 함께 갈 수 없어, 나는 당장 씻을 수 없었다. 찝찝한 몸으로 다시 아기를 안았다. 그래도 토하고 나서는 조금 기운을 차렸는지 장난감을 만지기도 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열이 난 지 사흘째. 어제보다 조금은 먹고, 조금 더 길게 장난감도 만졌다. 다행히 해열제를 먹으면 열이 떨어지고 있고, 열 간격도 길어지고 있다. 항암치료 일정은 그대로 진행 중이다. 징징대며 안아달라고 하고, 한동안 누워 있기만 한다.
아이의 컨디션이 곧 내 기분이다. 아이가 웃으면 나도 웃고, 아이가 울면 나도 무너진다.
3일마다 검사를 하고 있다. 폐에는 이상이 없고, 균도 발견되지 않았다. 내일은 열이 나지 않기를 바란다. 밥도 잘 먹고, 스티커를 붙이며 웃어주는 그 표정 하나면 다른 건 필요 없다.
그동안 누렸던 당연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시간이었나.
그것도 모르고 교만하게 살아서 이런 벌을 받는 걸까?
그렇다면 내게 벌을 줄 것이지 왜 이 어린 아가가 아프게 된 걸까.
그게 더 큰 벌이라서?
그게 목적이라면 이미 달성했다.
나는 지옥을 걷고 있다.
혈액을 타고 급성으로 온몸에 퍼지는 암세포들이 제발 사라져 주기를 기도한다.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지만 이제 와서 내가 아프면 삼 형제를 돌볼 수가 없다.
건강히 살아서 막내를 지키고, 이 병과 싸워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막내야,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