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09
병원에서 지낸 지 한 달이 지났다. 막내는 이제 만 25개월이 되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14일째 날, 결국은 탈모가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들었던 이야기였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 병동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머리카락이 없었다. 치료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막내는 그중에 단연 튀었다.
머리카락이 없는 아이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땐,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병원에 아픈 아이들이 모두 모여있어서 밖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아파야 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병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머리카락은 빠질 것이고, 치료를 마치면 다시 자라날 거라고. 모두가 겪는 과정이라고 계속 되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옷에 붙은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도, 식판에도, 3~4가닥씩 떨어져 있었다. 탈모가 진행되는 시기는 다 다르다고 한다. 보통은 항암 3~4주 차쯤 빠지지만, 아이에 따라서 거의 빠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막내는 이제 시작인 것 같았다.
그 후론 하루가 다르게 빠져나갔다.
모근이 녹아내린 털이 아직 붙어있었던지, 살짝만 쓸어도 힘없이 떨어졌다. 돌돌 말려있는 양면테이프를 들고 다니며 옷과 침대, 베개, 바닥까지 계속해서 쓸었다. 잠시 누워있다 일어난 자리마다 수북이 빠져있었다. 식판 위의 반찬에도 머리카락이 날려왔다. 고운 아이의 뺨 위 위로도 툭툭 내려앉았다.
하루, 이틀, 사흘… 세 가닥, 열 가닥이 아니라 '우수수' 빠졌다가, 곧 '숭덩숭덩'이 되었다. 한 움큼씩 떨어져 나가니 버틸 재간이 없어 4일 만에 두피가 훤히 비쳐 보였다. 눈에 띄게 휑해졌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직접 마주하고 나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몇 번이나 눈물을 삼켰다.
며칠이 지나자 더 이상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건드리지 않아도 빠져나온 머리카락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미 생명력을 잃은 그것들에게서 스산한 기운마저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보다도, ‘이럴 바엔 그냥 다 빠져버려라’ 하는 심정이 들었다. 그저 끝나지 않는 이 비가 그치길 바랐다.
탈모는 정수리 부근을 깨끗이 비우고 잠시 멈췄다.
아예 삭발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면역력 수치가 일정 이상 되어야 이발소 출장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병원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 지하 이발소를 안내받았다. 소아암병동까지 출장 와서 삭발을 해주지만, 혹시라도 상처가 생기면 감염 위험이 크기 때문에 백혈구 중 호중구 수치가 1000 이상일 때 권장된다고 하셨다. 지금은 그 수치가 0에 가깝기 때문에 자를 기회조차 없었다.
남은 머리카락을 소중히 지키기로 했다. 아픈 병원 생활에 또 다른 나쁜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막내는 60~70대 할아버지 스타일과 비슷해졌다. 동그란 두상이 드러나 오히려 예뻤다.
인터넷에서 보니, 항암제에 의한 탈모는 단순히 빠지는 것만이 아니라, 두피가 가렵거나 화끈거리는 이상 감각도 동반된단다. 말을 아직 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그런 불편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안쓰러웠다.
그래도 애써 담담하려고 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다, 치료제가 효과 있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아직 외모에 민감한 나이도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내도 점점 무리에 스며들고 있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나면, 정말 '백혈병 환아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 따라가지 못했다. 문득 울컥한다.
그래도 괜찮다. 머리카락이 없어도 넌 여전히, 아니, 더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우주에서 제일 예쁜 내 아가야, 넌 변함없이 우리 가족의 기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