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18
12주차는 외래진료를 다녀왔고, 13주차는 항암휴식기를 보냈다.
처음으로 2주라는 긴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 있었다. 음식 섭취에 대한 지침도 느슨하게 지키고, 가끔은 산책도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의 끈을 놓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언제든 응급상황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는 ‘백혈병’ 환자였다.
14주차 항암치료를 위해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골수검사와 척수항암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관해가 잘 유지되는지 확인하는 목적이 있다고 했다.
밤 0시부터 금식을 하고, 아침 9시에 수술실로 들어갔다. 원래 10시 예정이었는데 한 시간 당겨졌다.
왠지 불안했다. 새로 오셨다는 전공의 선생님이 낯설었고, 두 가지 시술을 동시에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다 40분쯤 지나 회복실로 호출을 받았다. 막내의 침대 주변에는 파란 옷을 입은 의료진이 여럿 둘러싸고 있었다.
이때부터 너무 놀랐다.
아이의 숨소리는 꺽꺽거렸고,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의식은 없는데 계속 기침을 해서 산소포화도가 88까지 떨어졌다. 삐삐 기계음이 계속되고 의료진은 여러 가지 긴급한 처리를 시작했다.
코에 줄을 넣어 석션을 하였고 팜컵을 가져와 아이의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조금이라도 숨쉬기 편하라고 턱 밑에 수건을 받쳐 턱을 들게 했다.
이 난리에도 아이는 여전히 깨지 못하고 여전히 호흡이 불안정했다.
그 옆에서 나는 울지 않으려했으나 또 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았다. 이전엔 회복실에서 15분, 길어야 40분이면 깨어났기에 점점 더 불안해졌다.
마취과 선생님은 아플 것 같아서 진통제를 평소보다 더 썼기 때문에 오래 자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계속 산소포화도가 떨어지자 ‘길항제’를 5분 간격으로 두 차례 주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래도 반응이 미미했다. 턱 밑을 세게 눌러도, 발바닥을 간지럽혀도, 간신히 손이 움찔하거나 끙 소리를 내는 정도였다.
이러면 일어날거라고 하면서 취했던 조치들이 아무런 결과를 보이지 못했고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새 2시간이 되어가고있었다.
나 역시 아이를 깨우기 위해 끊임없이 이름을 불렀다. 눈물이 계속 차올랐다.
첫 골수검사 후 깨어나지 못했던 기억과 관해 때 쇼크로 쓰러졌던 순간이 겹쳐 떠올랐다. 극도의 공포가 밀려왔다.
회복실의 선생님 한 분이 화장지를 건넸다. 우는 것도 미안해서 나는 그저 죄인이었다.
아이가 잘못될까봐 겁이 났다. 그저 무력하게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 시간들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으!”
그러다 갑자기 아이가 소리를 내었다. 번쩍 눈을 떴다. 그러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아직 꿈속에 있는 것처럼, 마치 인형처럼 멍했다.
“윤우야, 엄마야!!!! 엄마 보여? 우리 경찰차 보러 가자. 일어나. 이제 그만 자.”
계속 말을 걸자 눈을 꿈뻑꿈뻑 했다.
“어.....어아아...”
입을 떼었지만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했다.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눈을 떴다며, 산소마스크를 쓴 채 병실로 올라가라고 했다. 병실로 가서 쉬면 점차 명료해질거라고 했다.
이송사원이 와서 비몽사몽한 아이를 태워 소아암병동을 향했다.
침대로 돌아와서도 의식은 또렷하지 않았다. 지시사항은 제대로 하지 못했고 말도 느릿느릿했다.
건전지가 다 된 장난감 혹은 다 늘어난 카세트 테이프처럼, 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닌 듯 했다.
갑자기 물을 달라하여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마취 후 일정 시간 동안은 재우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억지로 말을 걸었다. 자극적인 영상을 틀어주며 의식을 붙잡았다.
30분쯤 지나자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감았다. 다시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30분 지났으니 괜찮은걸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런데 잠이 든지 5분쯤지났을까. 이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아이의 몸이 떨렸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팔,다리,몸이 마사지 기계를 갖다댄 것처럼 덜덜 떨렸다. 발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눈은 뜨지 않았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선, 선, 생님!! 빨리 여기, 여기 좀! 와주세요. 아기가 이상해요!!”
다행히도 병실문 맞은 편이 의료진의 회의실이었고 거기에 교수님이 계셨다. 비명을 듣자마자 당직으로 계시던 분이 긴급하게 달려왔다.
아이의 눈을 열어 확인하고 이름을 불렀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체온과 혈압, 심박수, 산소포화도 등을 재는 기계가 부착되고 그대로 처치실로 옮겨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옮겨지는 중 끙 소리를 내고 번쩍 눈을 떴다 감았다. 하지만 그 후로 반응이 없었다.
“동공반사는 정상이고, 방금 소리를 내었으니 괜찮을거에요. 저희가 좀 더 확인해볼게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40.4도에요.!”
갑자기 체온이 급격히 상승했다. 37.4도에서 38.9도, 그리고 40.4도까지. 액와체온계가 고장난건 아닐까? 30분 이내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열이 올랐다.
얼굴은 혈색 없이 창백했지만, 몸 전체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너무 무서웠다.
또한, 혈압도 높았다. 4개월 전 고혈압 쇼크로 의식을 잃었을 때가 떠올랐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눈물이 끊임없이 났다.
잘 치료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일이 생겼을까? 열은 왜 나는걸까? 몸의 떨림은 왜 멈추지 않을까?
전신마취 후 골수검사와 척수항암을 동시에 해서 그런걸까? 얼마나 힘들까....
이 작은 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서, 엄마가 몰라서, 미안했다.
의사선생님이 빠르게 지시하여 해열제, 스테로이드, 항생제 등 이름모를 약물이 계속 투여되었다.
폐 사진을 찍기 위해 엑스레이 차량이 왔다. 폐렴은 아니지만 증상이 있으므로, 코에 면봉처럼 생긴 기구를 찔러 바이러스 검사를 했다.
나도 코로나 검사 때 코를 찔려봤다. 엄청 아픈데도 아이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몸도 여전히 떨리고 있다.
의료진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도 없어서 일단 처치실 밖으로 나왔다. 문에 기대섰다.
이미 내 얼굴은 엉망이다. 저번에도 여기에서 비슷하게 보살핌을 받았다. 또 다시 들어와 있다니...
피가 마르는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아이가 눈을 뜨더니 꽤액 거리며 분수토를 했다. 아까 마셨던 물이 그대로 나왔다.
당황스러워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를 옆으로 눕혔다. 흡입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토가 멎자 아이가 비명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보여? 엄마야!”
“어...엄마.... 안아........안아.......”
오늘 하루 아이의 이름을 몇 번 불렀는지 모르겠다. 그제야 말을 하는 아이를 보고 나도 울었다.
이제 정신이 드는지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산소마스크를 떼려고 손을 뻗었다. 그렇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간호사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젖은 환자복을 갈아입혔다. 작은 가슴이 숨을 쉬며 오르락내리락했다.
이후 담당 교수님이 오셨다.
“지난번 쇼크와는 다른 양상인 것 같습니다. 마취 후 열이 나는 경우도 흔하고, 약물 부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깨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지켜보겠습니다.”
여전히 불안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는 병원이고, 응급상황이 생기면 빠르게 처치해주실거라고 생각했다.
해열제 덕분에 열은 내리는 추세였고 몸의 떨림도 사라졌다.
엄마 엄마 부르며 우는 아이를 진정시켰고, 원하는 대로 산소마스크를 떼주었다. 그런데 산소포화도가 다시 떨어졌다. 마스크를 싫어하니까 대신 콧줄로 연결해보자자고 하셨는데 또 빼달라고 울었다.
"울어도 해야 해."
이렇게 아이와의 씨름이 반가웠다.
좀 더 지켜보다가 다시 병실로 옮겨졌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열이 오르고 힘이 없이 잠에 빠졌다.
또 쓰러진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는데 담당선생님께서는 자는거라고 안심시켜주셨다. 해열제는 시간마다 투여되었고 다른 약들도 추가되었다.
1시간 가량 자다 깨어난 아이는 아직도 멍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산소 수치를 유지하기 위해 밤새 콧줄을 확인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빠지면 포화도가 90으로 내려갔다.
진짜 잠든건지 또 의식을 잃은 건 아닌지 무서워서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전신마취만 아홉 번, 그 중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잘 깨어났는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혈액 수치가 좋았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의학지식은 전혀 없지만, 처음에는 마취 시 투여된 약물들 때문이 아닐까 의심했다. 혹시 용량이 달라졌거나 종류가 바뀌었을까..?
교수님께 여쭤보니 약은 동일했고,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하셨다. 약한 감기 바이러스가 검출되었지만 그것이 원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작고 여린 아이의 몸에 독한 항암제와 반복되는 전신마취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대신 해 줄수 없어 마음이 미어진다.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으니 다음에도 또 이럴까 봐 걱정된다. 교수님께서는 앞으로는 마취제 용량을 감량하거나, 새 약은 쓰지 않고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하셨다.
아직도 전신마취 검사가 열 번 넘게 남아 있는데, 미리 걱정해봐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무섭고 불안했다. 그동안 조금 마음을 놓고 지냈던 걸 반성했다. 정말 더 조심하며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입원 기간은 더 길어졌지만, 병원이어서 다행이다. 이 모든 일이 병원에서 일어났기에 아이가 다시 깨어날 수 있었다.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