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진단 후 100일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17

by 빨간나무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세 달이 지났다.


확인차 골수검사만 끝나면 곧 퇴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간단한 검사라고 들었던 그날, 막내는 두 시간 가까이 깨어나지 못했고, 수술실 밖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우리는 그저 울기만 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국소마취만으로도 금방 끝나는 검사이지만, 막내는 수술실에서 피를 흘리며 깨어나지 못했고, 수혈을 받으면서 의식을 찾았다. 중환자실로 가지 않고 일반 병실로 옮겨져 너무나 다행이었다.


이제 곧 퇴원을 하겠거나 생각하며 나가고 싶었다. 그저 감기나 폐렴 때문일 거라고 믿고서 아무것도 실감하지 못한 상태였다.


급성 백혈병입니다. 당장 치료해야 합니다. 지금 밖에 아이 아빠도 계시면 들어오셔서 함께 설명 들으실까요?”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발 밑이 쑥 꺼지는 느낌이었다. 세상이 뱅글뱅글 돌았다. 생각이 멈춰버리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건강하게 뛰어놀던 아이였다. 단지 열이 있었고, 폐렴이 있다고 했을 뿐인데.


백혈병이라니....? 왜 하필 우리 아이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머릿속에 수백 가지 질문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는 “어떡해... 어떡해...”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세상, 백혈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병이 우리 가족의 삶을 뒤흔들었다.


소아병동에서 수혈을 받으며, 폐렴은 나아가는데 열이 계속 났던 이유도 이제야 이해가 갔다. 막내는 진단을 받는 그 순간에도 수혈을 받고 있었다.





한손은 수액, 다른손은 수혈...




의사 선생님은 울고 있는 나를 기다려주었고, 밖에 있던 남편도 잠시 들어와 함께 설명을 들었지만,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폐렴 환자였던 아이는 하루아침에 백혈병 환자가 되었고, 일반 소아병동에서 소아혈액종양병동으로 옮겨졌다.



그때까지 나는 백혈병이 어떤 병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현실이 아닌 드라마 속 주인공이 걸려 끝내 사라져 버리지만, 미디어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내 아이가, 두 돌을 갓 지난 나의 막내아들이, 그 병에 걸렸다.


중심정맥관을 시술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도 오진이 아닐까 의심했고, 이 약을 정말 먹여도 되는 걸까 갈등했다. 믿을 수 없었고,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곧 분노가 찾아왔다.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이토록 끔찍한 병이 왜 존재하는지... 찾아보고 또 찾아봤다.


그러다 결국,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렸다. 내가 셋째를 욕심낸 것부터, 임신 중 신경을 잘 쓰지 못했던 때를, 태어나서도 형들에게 옮아 잔병치레가 많았던 것까지. 끝없는 자책과 미안함에 무너졌다.


세상이 싫었다. 심지어 남편조차 보기 싫을 정도로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위로도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내 마음은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단계를 그대로 밟아갔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이론에는 본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이지만, 내 아이의 병은 그만큼이나 큰 충격이었다.


자녀가 암에 걸렸다. 성인이어도 감당하기 힘든 일인데, 우리 막내는 이제 겨우 두 살이었다. 감기는 몇 번 걸렸지만 입원 한 번 한 적 없고, 형제들과 같이 평범하게 자라는 아이였다.




분노의 5단계...





현실은 너무도 잔인했다.


우리나라에서 소아암은 1년에 천여 명, 그중에서도 혈액암은 약 3~400명이란다.


통계로 보면 매우 희귀한 병이지만, 나에게 해당이 되었으므로 100%의 의미를 가졌다.


병원 밖에서는 백혈병 환아를 거의 볼 수 없다.


그래서 더 절망스러웠다.


동네에 가면 아무도 우리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없다. 아이의 머리를 가리고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당당히 밝히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시간은 흘렀다.


모질고 혹독했던 치료 과정 속에서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아이의 상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몸속에서 암세포는 5% 이하로 관해 되었고 열 등의 증상은 소거되고 있었다.


올해 말 집중치료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고, 3년 뒤에는 치료가 종결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기고 있다.


과거의 백혈병은 치명적인 병이었지만, 지금은 극복 가능한 병이라고 한다.


잘 견뎌주는 아이와 묵묵히 함께해 주는 가족들, 헌신적인 의료진, 그리고 의학의 발전을 위해 애써준 모든 이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다.



아이가 살아있는 하루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