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간병 사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25

by 빨간나무




28개월 아기와 함께 4개월째 병원에서 생활 중이다.


항암의 'ㅎ'자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백혈병 환아의 보호자가 되어 서울의 큰 병원을 오가고 있다.


인생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닥친다. 구멍에 빠져도 헤쳐나갈 수밖에.





처음에는 연속 39일 입원을 했고, 그 이후로는 6~8일 단위로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세어보니 벌써 80일 이상을 병원에서 살았다.


육아용품이 다 갖춰진 집에서 아이를 돌보아도 힘든데, 한정된 물품과 좁은 병실 그리고 아파서 울고 보채는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고생은 네가 다 하지만...





입원한 첫날이 가장 평온한 날이다.


아직 치료를 시작하지 않았기에, 준비 과정으로 케모포트에 나비바늘을 꽂기만 하니 한 번만 울면 된다. 수치가 좋지 않으면 팔에 촉진제주사를 맞고, 수혈을 받기도 하지만..


아기가 잘 먹고 잘 놀기만 하면 그럭저럭 할 만하다.


병원 밥이 삼시세끼 나오고,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도 없으며, 셋을 돌보다 하나만 돌보면 되니 여유롭다. 육아의 장소가 병원으로 옮겨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금방 사라진다.


0시부터 금식을 시작으로 다음날은 검사와 치료가 밀려든다. 매번 전신마취를 감내하며 수술실을 다녀온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열이 오르내리며, 온몸에 발진이 나고, 구토는 기본값이다.


아기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데 빈 속에 쓴 약은 꼭 먹여야 한다. 그저 안아달라고 울어서 나와 한 몸이 되어 안고 달랜다.



이곳에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은 자연스레 포기된다. 잠은 사치이다. 양치나 샤워는 고사하고, 급한 볼일조차 참아야 하는 때가 있다.


항시 착용하는 마스크가 얼굴을 가려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얼굴은 엉망이다




처음엔 못 살겠다 싶었지만 이것도 점점 적응이 되었다. 막내가 영상을 보며 잠시 나를 찾지 않는 찰나, 후다닥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생겼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나오지만, 제때 먹은 날은 손에 꼽힌다. 한 입만 먹자, 고 실랑이를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결국 아이가 식사를 포기하면 보호자인 나는 다 식은 밥을 바닥에 앉아 후루룩 마셔야 한다.



음식냄새에 구역질을 하는 아이 앞에서 너무 미안하지만, 내가 먹어야 아이를 돌볼 수 있기에 억지로 삼킨다.



병원 생활은 대부분 5인실에서 이루어진다. 얇은 커튼 한 장 너머에 다른 환아가 있다. 환아 1명에 보호자 1인까지 모두 10인이 함께 지내야 하기에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해야 한다.


밤 10시 소등 후엔 작은 소리에도 서로 예민해진다. 아기가 자다 깨서 울면 바로 안아서 밖으로 나와야 했다. 그래서 아예 24시간 아기띠를 몸에 두르고 살았다.


아기가 깊은 잠에 들면 조심스럽게 눕히고 침대 발치에서 쪽잠을 잤다.


너무 많이 울 때는 병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복도를 걸으며 안아 재우거나 아무도 없는 병원학교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새벽 6시, 청소 여사님들이 우르르 몰려와 청소를 시작하면 그 소리에 맞춰 병실로 살며시 돌아왔다.



집에서는 쉬운 일도 병원에서는 수액줄과 폴대 때문에 쉽지 않다.


아이의 가슴속 중심정맥관에서 나온 줄에는 기본 수액에 항암제, 항생제, 수혈팩까지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심전도 스티커가 붙고 산소포화도 모니터까지 달리면 침대 밖에 나가는 것도 전투다.


이 상태에서 항암부작용으로 설사라도 하면, 한 손으로 폴대를 밀고 다른 손으로 아기를 안아 화장실로 가서 조심하며 씻겨야 한다. 기저귀에서 분리된 대변은 따로 무게를 재고, 사용한 세면대는 비누로 닦고 뜨거운 물로 청소해 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일이 반복되면 기계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수액줄 사고도 종종 일어나 심장이 내려앉았다. 한두 번 겪고 나니 줄이 꼬이거나 빠지거나 막히지 않도록 수시로 확인하게 되었다. 잘 때도 줄이 감기지 않도록! 내 잠은 설치며 계속 풀어줬다.


케모포트 바늘을 찌르거나 손등에 라인을 잡을 때,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도 엄마인 나는 붙잡아야 한다. 온몸이 땀과 눈물로 젖도록 울어도, 검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 꽉 붙잡고 협조해야 했다.


나도 울고 싶지만 울 수 없다.


하기 싫다고 빠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기에. 아이를 살리는 길이라 믿고 단호하게 검사를 받았다.


커튼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나와 아기, 단 둘이서 싸워야 했다.



병실 안, 커튼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간병과 육아가 완벽하게 뒤섞인다.


어느 것도 잘 되지 않는다. 그저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4개월이란 시간 동안 병원에서 지내며 막내가 많이 자랐다.


처음에는 단어만 하던 말이 문장으로 늘었다. 말이 늘자 원하는 걸 더 잘 표현하게 되었다.


몸무게를 재거나 엑스레이를 찍는 일은 아프지 않다는 걸 알고 울지 않기 시작했다. 낯설어도 이해하고 잘 따라주었다.


대신 주사나 소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벌써 울음을 터뜨리기에, 간호사 선생님은 이제 수화처럼 손짓으로 일정을 알려주셨다.


못 자는 밤이 계속될 때, 나는 다가오는 밤이 무서웠다. 매일 밤 아이는 아기띠에서 안겨 울었고,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과 수면 부족으로 고통스러웠다. 선채로 졸기도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100일이 지나자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가 자발적으로 침대에 누워 조용히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날 이후 누워서 자는 날이 늘었고, 자다 깨도 안아주면 다시 눕고, 심지어는 두 번이나 통잠을 자기도 했다.


매일 밤 울며 외치던 “안아줘, 나가자”는 말은 점점 줄어들었고, 병실에서의 생활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적응이 기특하면서도 한 켠으로는 짠했다.






심지어 입원생활 4개월 차가 되자, 아이는 나를 ‘심부름’까지 보냈다.


“엄마, 까까 사와. 아가 띠띠 봐.(보고 있을게.)”


지하 편의점에 다녀오려면 최소 5분에서 10분이 걸렸다. 병실 침대에서 나 없이 잘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언제나 걱정되어 한 번도 내려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원하는 과자를 콕 집어 사 오라고 시키고는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나를 잘 기다렸다. 샤워도 마음껏 못 하던 나에게, 이런 변화는 작은 혁명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다른 엄마들처럼 긴 외출을 해보게 될까. 아이는 계속 자랄 테니까.




이렇게 구구절절 힘들다고 적어보지만, 사실 발병 4개월 차인 우리는 병동에서 ‘초보’다.


오랜 기간 치료 중인 아이들과 가족들, 그들 곁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부모님들은 정말 위대하다.



간병이 육아보다 더 큰 무게로 다가오는 상황은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아이의 뒤에 서서 몰래 우는 엄마의 얼굴을 본 적 있다. 그 앞에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괜찮지 않은 걸 알기에, ‘괜찮냐’는 말조차 미안했다. 몰래 병실 자리에 영양제만 놓고 왔다.


이 순간에도 병원 어딘가에서 치료받고 있을 수많은 아이들. 모두 건강을 되찾아, 부디 다시는 병원에서 마주치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육아’만 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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