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하는 마음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26

by 빨간나무



오늘은 퇴원하는 날이다. 일주일 후 다시 입원해야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척 행복했다.


이번 치료도 잘 견뎌내어 대견했고, 무사히 끝난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20층 병동 밖을 나서는 순간,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짧은 순간,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병원에 온 사람들은 환자이거나 환자의 가족일 텐데, 그 가운데서도 우리 아이는 유독 눈에 띄었다.


창백한 얼굴에 부어 오른 몸, 머리카락이 없는 모습은 가슴속에 숨겨진 케모포트를 보지 않아도 누가 봐도 치료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어이고... 아기가 어린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딱하다는 표정을 짓고 아이의 머리를 힐끔거린다. 답답해서 계속 모자를 벗었던 탓에 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께서는 말을 걸기도 한다.


나의 자격지심일지 모른다. 어디든 숨고 싶고, 편히 숨을 쉴 수 없었다. 연민이나 동정 따위를 바란 적은 없었으니 관심이 오히려 상처가 되었다.




그럼에도 병원 안에는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있어 조금은 신경을 덜 쓸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순간, 막내는 동네에서 더없이 특별한 아이가 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머리카락이 없는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긴 시간 병원에서 지내다 돌아오니 변한 것은 우리뿐이었고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동네 아이들과 친구들은 모두 건강히 뛰어놀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을 보니 위축되고 불편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아무도 타지 않기를 바랐고, 밖에 나갈 때는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어린 아기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일이었다.


정말 드물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제 그것이 나의 현실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기조차 싫었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놀라고 걱정하며 같이 슬퍼해주는 마음조차 버거웠다.


‘힘내라’는 말이 이렇게 폭력적인 말일 줄 몰랐다.


이 슬픔의 깊이를 아무도 공감해주지 못했다.



병동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의 대화만이 위안이 되었다. 응원한다며 전화와 희망의 글을 보내는 지인이 있었지만, 고맙다 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답을 하지 않았다.


걱정하는 마음은 감사했으나, 너무 큰 관심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욕을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내 에너지를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지인은 아이에 대해 묻지 않았고, 지나가다 만나도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히려 그런 태도가 고마웠다.



결국 모두 내 마음의 문제였다.


걱정하는 마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동정이든 호기심이든 신경 쓸 필요가 없는데도 온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아걸어 잠갔다.


그때의 나는 바라는 것이 더 없었다. 생명의 신호가 꺼져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수백 번 이름을 불러본 엄마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마음을.



이렇게 처음 내 마음은 가시를 뻗친 고슴도치와 같았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원망하고, 보이는 영역에 가시를 세웠다. 걱정과 불안에 잠식되어 절망적인 미래를 그렸다. 첨예한 끝으로 모든 것을 베고 또 베어내며 공격하고 방어했다.


이미 치료 과정을 거쳐간 분들이 ‘다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말을 남겨주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니 이제 치료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집중 치료’의 마지막 항암을 앞두고 있다.


이후에도 2년간 항암 치료가 계속되지만, 서서히 일상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써두었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마음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변모하는 마음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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