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27

by 빨간나무



막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던 중 아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어머, 오랜만이에요. 셋째가 많이 컸네요. 어린이집은 어디 다니고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인사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안녕하세요... 올해는 안 다니고 있어요.”


“왜요? 복직하셨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 셋째가.. 아파서 쉬고 있어요.”


“아팠어요? 에구, 많이 아파요?”


“네, 좀 많이 아파서 다시 휴직했어요.”


“어디가 아파요? 얼마나 아프면 어린이집을 안 다녀요?”


대화가 진행될수록 불편했다. 나쁜 의도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리를 뜨고 싶었다.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가려했지만 그분의 시선은 듬성듬성 비어 있는 막내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사실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요. 많이 아팠어요.”


“암이요? 이게 무슨 일이야~??. 아기가 무슨 암에 걸려요?”


“... 백혈병이에요.”


한마디 한마디 내뱉기가 힘들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심지어 왈칵 눈물이 났다.



상대방의 눈이 커지는 걸 보고 “그만 물어보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느 병원 다니냐, 언제부터 아팠냐, 어떻게 알게 됐냐, 지금은 괜찮냐, 언제 어린이집을 다시 다니냐 등 질문이 이어졌다.



당신의 손주와 비슷한 아이라 걱정되는 마음에 물어보셨으리라.


차라리 못 들었으면 모를까, ‘백혈병’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서는 병의 무게에 쉽게 가지 못했고, 건강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도 모두 이해했다.



내 탓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밝히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는데, 이 분과는 예전에 알던 사이여서 인사를 받았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나아진 줄 알았다.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할 줄 알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했고 다시 마음이 내려앉았다.



치료 10개월째, 아직도 괜찮지 않았다. 여전히 속이 상했다.






가끔 지인들도 연락이 온다. 삼 형제를 돌보느라 못 받을 때도 많지만 일부러 받지 않을 때도 있다. 괜찮지 않은 마음이 다시 올라와 울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슬픔에 잠식당할 때는 지났지만 여전히 눈물이 난다. 절망할 만큼 했는데도 다시 처음의 감정에 처음처럼 직면하게 된다.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걱정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입장 바꿔 나라도 지인의 아이가 백혈병임을 알게 되면 마음이 쓰일 것 같다. 친한 사이면 더 챙겨주고 싶고 안부도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냐’는 질문에 빈말로라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때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나았다는 확신도 없고 치료는 계속되고 있다. 의식 없는 아이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던 충격적인 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막내는.... 아직도 2년은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 2살에 발병되어 3년의 치료가 끝나면 만 5살(6살)이 된다. 그때 치료가 종결될 거고, 11살에는 완치에 가까워지며, 그 후에도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치료받고 있거나 받았던 사실을 밝혀야 하는 상황은 반드시 올 것이다.


우리 삶에서 백혈병의 그림자는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볕 없는 음지에 가깝지만 시간이 지나면 쨍쨍할 때가 오고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 믿는다. 시간이 지나야 그리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우린 더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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