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몰랐을 이야기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20

by 빨간나무




1. 혈액형 바뀌는 사연


소아암병동에 있다 보면 익숙했던 상식들이 뒤집어졌다. 혈액형 역시 그중 하나다.


혈액형은 부모에게서 유전되어 평생 바뀌지 않고, 수혈도 혈액형에 맞춰서만 가능한 줄로만 알았다. 과학시간에도 배웠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면 혈액형이 바뀔 수 있다.


조혈모세포는 혈액을 만드는 골수 속의 세포이기 때문에, 이식을 받으면 공여자의 것이 생착하여 새로운 혈액세포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A형 아이가 O형 공여자의 세포를 받으면, 혈액형이 O형으로 바뀌는 것이다.


심지어 혈소판과 혈색소의 혈액형이 각각 다르게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빨간 피(혈색소)는 A형으로 받고, 노란 피(혈소판)는 O형으로 받기도 한다.


처음에는 들어도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병동에서는 이식받는 아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다.










액와체온계

2. 액와 체온계


혈액병동에 처음 전실하자마자 '애가체온계'를 사 오라고 하셨다.


“애가... 뭐라고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알고 보니 ‘애가’가 아니라 ‘액와’, 즉 겨드랑이 체온계였다.


내가 어릴 때 사용하던 유리 체온계가 액와 체온계였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엔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요즘은 소아과에서도 대부분 귀체온계를 사용하니까.


그러나 이곳, 소아혈액종양병동에서는 오직 액와체온계를 쓴다.


귀보다 겨드랑이 체온이 1도쯤 낮게 나오는데, 이게 더 정확하기 때문이란다.


액와로 37.5도 이상이면 발열로 간주되고, 38도를 넘기면 이미 위험신호다.


백혈병 환자에게 열은 곧 감염의 시작일 수 있기에, 미세한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열이 나면 곧바로 해열제와 항생제가 투여되고, 균 검사, 소변 검사, 폐 엑스레이까지 진행된다.


처음 이 병동에 왔을 때도 가장 먼저 개인 물품으로 액와체온계를 구입하라고 하셨다.


지하 1층 의료기상에서 12,000원이면 살 수 있었지만, 낯선 병실에 혼자 남겨진 아이는 계속 울었고, 나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겨우 달래서 영상을 하나 틀어주고,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가 체온계를 사 온 기억이 선하다.



이제는 귀체온계는 거의 쓰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이 병동에서의 ‘당연한 상식’이 밖에서는 기이하게 여겨지더라도, 내게는 익숙해졌다.


그 사실이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3. 의사도 아닌 보통의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아세요?



막내와 같은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의 표준위험군은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지 않는다.

(위험군, 유전자 변이 여부, 잔존 MRD, 재발 등에 따라 추후에 할 수도 있다. )




이와 다르게 '급성 골수성 백혈병'조혈모세포 이식이 치료의 핵심이다.


조혈모세포는 조직적합항원(HLA) 검사를 통해 적합한 사람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


형제자매부터 먼저 검사하고, 그다음으로 타인, 제대혈, 부모 등에서 공여자를 찾는다.


일치가 되면 생명의 연결이 시작된다.


공여자는 3일가량 입원해서 골수세포를 채집해 제공하고, 환아는 고강도의 전처치로 본인의 세포를 모두 죽인 뒤에 새로운 세포를 이식받는다.


공여자와 환자의 정체는 서로에게 절대 공개되지 않는다.


신이 아닌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기적이다.








나도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을 하였다.

(만 39세까지 가능하다. )


이 또한 아이가 아픈 뒤에 알게 되었다.


채혈 한 번이면 등록 가능했다. 나 역시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누구이든 기꺼이 임할 것이고, 소아면 더 좋겠다.








4. 백혈병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처음에 아이가 진단받았을 때, 백혈병에 대해 전혀 몰랐다.


백혈구 수가 많아지는 병쯤으로만 알았고, 암이라는 것도 몰랐다.


백혈병은 종류도 치료법도 다양하다.





“엄마, 백혈병은 피가 하얘지는 병이야?”


한자로 백혈병을 풀어 말해줬더니 첫째 아이가 물었다. 나도 몰랐던 걸 아이에게 설명해 주려니 마음이 복잡했다.






소아암병동에는 다양한 병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


재생불량성빈혈, 혈소판감소증 같은 혈액질환을 가진 아이도 있고, 림프종, 백혈병 같은 혈액암 환자, 그리고 혈액이 아닌 고형암 환자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소아 백혈병은 대부분 ‘급성’으로, 림프모구성(ALL)과 골수성(AML)으로 나뉜다.


ALL은 B세포, T세포, 버킷세포 변이에 따라, 또 위험군 분류에 따라 치료 방식이 달라지고, AML은 M0~M7 등 여러 아형으로 나뉘며 각각의 경과가 다르다.



같은 병동, 같은 공간에 있어도 아이마다 치료는 모두 다르다.


각자의 작은 병상에서, 모두 치열하게 각개전투를 치르고 있다.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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