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백혈병에 걸렸대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21

by 빨간나무



백혈병 진단을 받고 나(엄마)와 막냇동생은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첫째와 둘째는 사진이나 영상통화로 잠시 볼 수 있었다.


첫 치료를 마치고 39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막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슴에 큰 흉터가 생겨 그 속에는 케모포트가 삽입되어 있었다.


걷지 못해 기어 다녔다.


약 부작용으로 얼굴은 두 배로 부풀었고 팔다리는 앙상했다.


풍성하던 머리카락도 모두 빠져 있었다...



1달 만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너무 낯선 모습에 첫째와 둘째가 적잖이 놀란 듯했다.




두 돌된 아기.. 불과 3주만에 다른 모습이 되었다.... 스테로이드 부작용과 힘든 치료로 걷지못했다.





동생이 ‘백혈병’에 걸려 오랫동안 치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9살 첫째와 6살 둘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첫째는 까불고 덜렁거리지만 걱정이 많고 섬세한 아이였다.


막내는 5살 차이가 나는 어린 동생이었다. 지나가다 볼을 꼬집거나 안경을 벗기고 도망가도 허허 웃고 넘기곤 했다.


그러니 첫째는 동생을 안타까워했고 무척이나 걱정했다.


그 마음은 이따금 던지는 질문으로 표현되었다.



“엄마, 백혈병에 걸리면 어떻게 돼?”

“막내, 나을 수 있지?”

“얼른 나아서 같이 여행 갔으면 좋겠다.”

“병원 가서 엄마 힘들었겠다.”



막내가 의식을 잃었다는 전화를 받고 어른들이 충격을 받자, 첫째도 큰일이 났음을 감지한 듯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며 계속 기도했다고 한다. 평소 무교인 집안임에도 말이다.





반면, 둘째는 병의 무게를 잘 알지 못했다.


병명은 너무 어려운 말이었고, 오랜만에 본 동생이 이상해 보였을 뿐이었다.


“왜 기어 다녀?”

“머리카락은 어디 갔어?”

“무슨 병이랬지? 배귤병?”

“그래서 백혈병이 뭐라고?”


‘백혈병’이라는 단어를 몰랐으면 했다. 그러나 둘째는 그 단어가 신기한 듯 여러 번 물었다.


둘째는 평소 엘리베이터나 길에서 만나는 이웃과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활발하고 애교 많은 성격이었다.


누구와도 금방 친해졌고, 때로는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쏟아내 엄마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저는 ♧층에 살아요. 아저씨는 몇 층 살아요?”

“저는 ♤♤유치원 다녀요. 누나는 어디 가요?”

“저 자전거 엄청 잘 타요.”

“어제 라면 먹었어요.” 등등.


그래서 나는 둘째가 이웃들에게 동생의 소식을 알릴까 봐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늘 다니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던 중 갑자기 “제 동생이 백혈병에 걸렸어요.”라고 말해 미용사를 놀라게 했다. 미용사는 들은 것 같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월에 새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동생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어느 날 둘째가 말했다.


“엄마, 나 어제 말했는데?”


“뭐? 뭐라고 말했어?”


“동생이 백혈병이라고. 근데 친구들이 모른대.”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린 친구들이 모르고 지나가겠지 하고 빌었다.


그런데 며칠 뒤, 하원하며 만난 선생님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귓속말로 말씀하셨다.


“어머니, 동생이 많이 아프다면서요? 백혈병이라고 하던데..... 이제 괜찮은 건가요?”


“네.. 잘 치료받고 있어요.”


알리고 싶지도, 위로받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입장도 곤란했고, 위로를 건네는 사람의 마음도 알기 때문이다.


상대도 모른 척하기에는 너무 큰 일인 것이다. 그런데 어렵게 건네는 위로를 받아들일 여유도 내게는 없었다.


다시 한번 둘째를 붙잡고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백혈병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마. 친구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하지 마. 금지야!”




걷지 못하는 동생과 함께 기어가주는 둘째형



이런 일은 있었지만, 둘째는 평소처럼 동생을 끔찍이 아꼈다.


걷지 못할 때 함께 기어 다녀 주며 나름의 방식으로 응원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더 크면 동생이 아팠던 기억도 희미해질 것이다.



모두가 잊어갈 즈음 치료가 끝나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러면 “동생이 아파요”라는 말은 “동생이 다 나았어요”로 바뀌고, 어느 순간에는 아예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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