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 (2)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23

by 빨간나무

3.


12월 25일은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였다.


미리 예약한 무인 키즈카페가 있었지만 우리는 소아암 병동에서 4일째 머무르고 있었다. 막내가 계속 울고 보채서 안아주어야 했다.


그런데 오전 11시경, 갑자기 등을 대고 누워 스르륵 잠들었다. 나도 잠깐의 여유가 생겨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몇 분 후 이상함을 느꼈다.


고개가 왼쪽으로 꺾인 채 그대로였고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


깬 것은 아니었다. 팔다리는 쭉 뻗은 채였고, 눈동자가 위로 돌아가 떨리고 입 모양도 ‘오’ 하는 모양으로 멈춰 있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깼어...? 윤우야?”


몸을 만져보았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곧바로 호출벨을 눌렀다.


“선생님, 아기가 이상해요. 빨리 와주세요!”


간호사선생님이 달려와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흔들었다.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다.


생명의 신호가 너무 약하게 느껴졌다.


다른 분들도 달려왔고, 처치실로 옮기자 하셔서 아기를 안았다. 강직된 팔과 다리는 플라스틱 인형 같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엄마, 무섭게, 장난치지 마. 일어나, 일어나라고! 선생님, 우리 아기 왜 그래요? 방금까지 잘 있었는데 왜 이런 거예요? 괜찮아요? 괜찮은 거죠?”


너무 울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필 크리스마스, 공휴일이라 담당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고 당직 중인 낯선 분이 오셔서 지시를 내렸다.




알 수 없는 약물이 여러 개 주입되었다. 아이는 호흡이 가빴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심전도 모니터도 부착했다.


아마도 ‘경련’인 것 같다고 했으나 확언하지는 못했다.


이제 막 백혈병 치료를 시작한 참이다.


스테로이드를 먹은 지 3일 되었고 항암제는 투여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


4일 전에도 마취에서 못 깨어나고 출혈이 멈추지 않아 중환자실에 갈 뻔했었다. 그때가 최악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아기는 의식이 없는 채로 누워 있었다.




나는 옆에서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렀다.


진정제가 투입되어 자는 것이라 하셨다. 호흡도 안정되었으니 괜찮을 거라 하셨다. 그렇지만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곧이어 뇌 이상이 의심으로 CT 촬영을 한다고 했다.


의식 없는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 끝을 붙잡고 따라갔다. 신발을 신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쓰러지지 않으려 애쓰며 걸었던 기억과 복도에 사람이 없어 고요했던 기억이 난다.


CT실 앞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두 손을 겹쳐 잡고 기도를 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이대로 잘못된다면 나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CT 촬영 후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병실로 옮겨졌다.


최초 발견에서 4시간가량... 지났다.


오후 5시가 넘어서 아이가 깨어났다. 갑자기 몸을 비틀며 눈을 뜨고 팔다리를 움직였다.


“어... 어... 엄... 마... 안아.... 안아....”


안아 달라고 울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아주고 말고. 백번이고 천 번이고, 안아주지.

깨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사진은 이때와 관련은 없습니다..







다음 날 담당 선생님이 오셨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뇌 혈류가 증가하여 일시적으로 쇼크가 온 걸로 생각됩니다. 아마 괜찮을 테지만 정밀검사를 위해 내일쯤 MRI를 찍어보겠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를 설명하는 영어 단어가 있다면서 알려주셨다.


번역하자면 ‘고혈압으로 인한 일시적 쇼크’였다.



스테로이드는 백혈병 치료에서 필수약이란다. 한 달간 빠짐없이 복용해야 하는데 또 이러면 어떡하나. 무서웠다.


바로 그날부터 혈압을 낮추는 약이 추가되었다.





쇼크 이후 내 심장은 사라져 버렸다.


진단받은 지 고작 4일째,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멀쩡한 아이에게 이 약을 먹여야 하는지, 오진은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내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의심 없이 치료에 전념하라는,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계시받은 듯했다.



이보다 잔인한 방식은 없었다. 순응하고 치료에 적극 참여해야 했다. 그것만이 내게 허락된 범위였다.



애증의 스테로이드, 위 보호제, 요산 수치를 낮추는 약, 폐렴 기침약, 항생제, 변비약에 이어 혈압을 낮추는 약까지 추가되었다.


매일 세 번씩 20ml가 넘는 약을 먹여야 했다.


먹기 싫어 울어도 꽉 붙잡고 끝까지 먹였다. 쓴 맛에 구역질하다 토하거나, 울다 사레가 들어 토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분수토를 하거나 하면 다시 먹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 병원에서 시키는 일은 성실히 다 수행해야 아이는 나을 거란 믿음으로 했다.


곧 MRI 검사 시간이 통보되었다. 낮 2시였다. 먹는 진정제로 재워서 찍는 것이므로 새벽 6시에 깨운 뒤 낮잠을 재우지 말라고 했다.


1시가 넘어가자 아이 눈이 자꾸 감겼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시키고, 안아주지 않고 일부러 울리고, 새로운 장난감을 꺼내 놀았다. 졸려서 자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내야 했다. 피할 수 없으므로 잘 해내야 했다.


막판에는 앉아서도 눈이 감겨 쓰러지려 했다. 차가운 물을 수건에 적셔 닦고 얼굴에 물을 뿌렸다. 일부러 옷을 벗기고 기저귀를 갈며 귀찮게 했다.


2시가 딱 되자 재우는 이 왔다. 먹이고 안아주자 바로 잠들었다. 그대로 침대에 눕혀 MRI실로 갔다.



나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검사들을 이 작은 아이가 해내고 있다.


다행히 뇌에 이상이 없어 ‘일시적’인 것으로 판단하셨다.


이후에도 한참 동안 혈압을 재는 모니터를 부착해 시간마다 측정했다. 움직이면 다시 재야 하니 꽉 붙들고 협조해야 했다. 혈압이 높으면 기계음이 울리고 약이 추가되었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조금은 안심했지만, 잘 자는 건지 쓰러진 건지 몰라 잘 때마다 불안했다.


계속 아이를 살폈고 한시도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소아암병동에서 보낸 시간은 참혹했다.



도저히 길들여지지 않는 일들뿐이지만 모두 버티고 견뎌냈다.





그 공간에서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내 안에서 혼잣말이 들끓어 결국 밖으로 넘쳐흐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글을 썼다.


살기 위해, 아무 말이나 무슨 말이라도 써 내려갔다.


그렇게 그럭저럭 살아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잔상’은 남아 있다.



눈앞에 펼쳐졌던 참담한 장면들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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