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30

by 빨간나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을 때, 내가 엄청 아팠다.


시작은 장염이었다. 전날 남긴 전복 내장이 아까워서 먹은 것이 원인이었을까, 38도의 열이 오르고 복통과 설사, 구토가 이어졌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은 다시 올랐고 온몸이 아파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만 있었다. 가족들은 모두 출근하고 막내만 남아 있었지만, 밥을 차려줄 힘조차 없어서 물에 밥을 말아 겨우 먹였다. 미안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병원에 갔다. 약을 지어 왔지만 바로 나아지지 않았다. 구역감 때문에 아예 음식을 먹지 못했고, 3일간 설사를 20번 넘게 하면서 5일 만에 3kg이 빠졌다. (불행히 다시 살은 쪘다. )


그런데 약해진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장염이 낫자 곧바로 기침감기에 걸려 한 달이 넘게 고생했다. 항생제를 2주 이상 복용해야 했다.



열이 나고 토할 때, 막내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긴 치료 기간 동안 힘없이 늘어져 있던 아기가 생각났다. 그래서 버텼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24개월의 아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가 아픈 뒤로 나는 아플 수 없었다.


항암치료 중인 아이 앞에서 내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를 지키려면 내가 아프면 안 되었다.


치료 일정을 소화하고 아이를 살리려면 나 말고는 돌볼 사람이 없기에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했다.






집중치료가 끝나고 긴장이 풀렸는지, 수백 번 힘든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원래 두통, 불면증, 피부염, 비염 같은 고질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었지만 평소엔 심하지 않았다. 병동에만 다녀오며 몸은 망가졌다.


특히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져 온몸이 가렵고 빨갛게 변했다. 새끼손가락에 한포진이 생겨 자다 깨서 미친 듯이 긁었다. 면역 체계가 무너진 탓인걸 알면서도 몸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약약을 먹으면 졸려서 아이를 돌볼 수 없다. 실제로 피부약을 먹고 잠들어 항암제를 못 먹인 날이 하루 있었다. 엄청 자책했다. 이후론 약은 진통제 정도만 복용했다. 막내를 위해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에 누워 잠을 청할 때 무의식 중에 손톱을 뜯었다. 성인이 된 후 그런 버릇은 없어졌는데 취약한 부분이 쉽게 무너졌다. 정신을 차려보면 손톱에서 피가 났다. 열 손가락, 발가락을 다 뜯어서 일상생활이 괴로웠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또다시 뜯었다. 특히 병원에 가기 전날, 혹은 첫날에 일이 발생했다. 어쩔 수 없다. 불안을 손톱으로 표현하는 건지.



나도 내가 어디까지 무너졌는지 모르기에.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병동에서 투병 중인 아이들이다.


진단을 받고 긴 시간을 함께 투병했던 몇몇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도 낫지 못하고 있다.


‘생존율’이라는 말은 죽지 않고 살아남는 비율을 수치로 나타낸 것일 뿐, 어린아이에게 ‘생존율’을 논한다는 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행복한 경험을 하며 뛰어놀기에도 부족한 나이에 암세포와 싸우며 병원에서만 지내는 아이들을 어떻게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백혈병은 정말 무서운 병이다. 고형암은 1기에서 4기까지, 위험도에 따라 나뉜다. 하지만 혈액암은 무조건 4기에 준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혈액을 타고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어디든 침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세포를 죽이려면 독한 항암제를 병용하거나, 어떤 경우는 조혈모세포 이식밖에 방법이 없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항암제가 효과 없거나 이식이 실패하면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느 날 남편이 왜 계속 한숨을 쉬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나아갈수록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더 생각이 났다. 기뻐할 수 없었다.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고, 슬픈 마지막 모습이 환영처럼 재현되었다. 눈을 감아도 종종 떠올랐다. 너무 가엾고 불쌍하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가슴이 답답해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가족도 아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걸 글로 쓰는 것도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한동안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했다.


학원을 가기 싫다고 우네, 감기가 낫지를 않네, 밥을 골고루 안 먹네, 성적이 좋지 않네, 게임을 너무 길게 하네, 이쪽에서 하는 걱정들이 너무 하찮았다.


지금 내 옆에 숨 쉬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의무를 다하는 것인데 아무도 그걸 몰랐다. 나도 몰랐으니까, 영원히 모를 수밖에 없고 그게 맞는데도 불편하고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


모두가 셋째의 안부를 묻고 치료가 잘 되길 빌어주는 동안, 나는 병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상담을 신청해 받고, 영양제를 챙겨 먹고, 나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휴식을 취하고, 아픈 부위에 약을 바르기도 했다.


조금씩 조금씩, 이제는 내 안부를 스스로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은 한편으로 아이가 나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안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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