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29
각종 검사와 마취, 금식, 채혈, 투약을 견디느라 말도 못 하는 아기는 몸부림치며 울었고, 나 역시 자책과 절망 속에서 정신이 너덜너덜해졌다.
게다가 탈모도 받아들여야 했다. 아기의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빠진 머리카락이 너무 아깝고 슬퍼서 하나하나 쓸어 모아 봉지에 담았다. 여리여리하고 부드러운 솜털 같은 아기의 머리카락이 너무나 소중했다.
시간이 흘렀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다가 또다시 빠졌다. 남은 긴 머리카락과 새로 난 짧은 머리카락이 뒤섞여 이상한 머리모양이 되었다.
집중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귀 쪽 머리를 다듬어주고 싶었다. ANC 수치가 기준 이상으로 유지되는 것을 확인하고 미용실을 예약했다. 아프고 나서 처음 가는 것이다.
낯선 곳에 예민한지라 자르지 않겠다고 난리가 날까 걱정이 컸다. 집에서 역할 놀이로 마음을 준비시켰지만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방문 당일, 졸리지 않을 시간을 고려해 미용실로 향했다. 형들의 단골 미용실이지만 막내에게는 처음이었다.
듬성듬성 빠진 머리카락으로 누가 봐도 아픈 아이인걸 알 것 같았다. 도착 전에 미용실에 투병 중임을 알리고 가위 날 소독과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기를 부탁드렸다.
흔쾌히 이해해 주셨지만.. 진상손님이 된 것 같아 시작 전부터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거울 앞자리로 옮겨 가운을 걸치기 시작했다. 역시나.. 막내가 거부하며 울었다. 안아주며 달랬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옷을 버릴 생각을 하고 내가 안고 자르기로 했다. 미용사는 최대한 빨리 머리를 잘라주려 애썼다. 나도 꽉 잡고 협조하려고 했다. 하지만 1분 1초가 힘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귓가에 상처가 났다.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귓불까지 번져 어깨 위로 떨어졌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혈소판 수치는 충분했다. 피는 멈출 것이다. 그러나 우려하던 상황이 생기자 머릿속이 멈췄다.
미용사는 “죄송하다”라고 연신 사과했다. 오히려 우리의 잘못이다. 아이가 자꾸 움직였기 때문에 베였다.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웠다.
막내는 상처가 나기 전부터 울음을 멈추지 못했고, 우리의 몸과 옷엔 머리카락이 잔뜩 묻었다.
당황한 상태에서 대충 마무리를 하여 이발이 끝났다. 감사인사를 하고 미용실을 나섰다.
여전히 우는 아이를 안고 돌아오는 길은 천리만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살펴봤다. 귓불을 따라 흔적을 남겼으나 피는 이미 멈췄다. 소독을 하고 보니 상처도 전혀 깊지 않았다. 감염이나 통증도 전혀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예약해 준 미용실이었기에, 남편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고 했다.
다친 곳은 괜찮냐며 여러 번 사과하시고, 돈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단다.
우리는 ‘불편한 손님’이 되었다. 너무 송구스러웠다. 아이는 아주 괜찮고 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 후 막내는 가끔 “미용실은 다시 안 갈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그럴 때면 그날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귓불에 묻은 핏자국과 조마조마했던 내 마음이 방금처럼 느껴진다.
미용사 입장에선 낯선 환자와의 경험에 조심스러웠을 테고, 내 입장에선 피를 본 순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으면 표정으로 다 드러났을 것이다.
아픈 아이라는 걸 확인하고 온 것만 같아서 속이 상했다. 그냥 가지 말걸...
호중구 수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이발하고,
어디서도 투병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때에...
막내가 보통의 날을 예사롭게 살아가면 좋겠다.
색다른 점 없이 흔히 있는 모습으로,
너무나 평범해서 기억에 남지 않을 손님이 되고 싶다.
그런 날이 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