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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를 해도 못 만났던 북스테이를 만나게 됐다, 내 인생의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기 전에.
예약을 하게 됐을 때, 마치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이 힘들 때, '짠'하고 나타나 구해주는 남자 주인공을 만난 느낌을 받았다.
줄곧 기자만 고집했던 내가 새로운 분야를 하기로 결심하고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행운처럼 예약이 됐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단비책방 북스테이는 원래 금토만 운영하셨는데 올해(2024년)부터 수목금토로 바꾸셨다는 게 아닌가.
사장님의 결심과 나의 때가 만나 운명처럼 이 책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 8시에 도착했음에도 너무 예뻐서 감탄이 나왔다. 캄캄했던 탓에 외부는 보지 못했고 실내만 봤음에도 놀라웠다.
휴가로 온 터라 도착 당일 아침, 부산에서 바다수영을 하고 4시간 30분을 달려와서 그런지 너무 피곤했지만 이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는 게 아쉬웠다.
휴대폰을 한다거나, 누워있는다거나, 수면을 취하거나 하는 '그냥' 그런 행동을 왠지 하기 싫었다.
그래서 졸리는 것을 꾹 참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클래식을 틀어놓고 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불이 다 꺼진 마을에 사람 한 명 다니지 않는 곳에, 유일하게 단 하나 밝은 집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이 순간이 내게 계속 머물러주었으면 했다. 아마 삶에서 피곤함을 많이 느끼는 분들일수록 그 마음은 퍽 커질 테다.
모두가 잠든 밤에, 새벽에 혼자 이 많은 책들 속에서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고 있는 기분이란...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니 미소란 단어로 부족했다. 실실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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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성스러운 시간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뒤척여도 '새벽'이 지나고 나면 잠깐이라도 말끔하게 살아지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시간 덕분에 머릿속 때들은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늦은 새벽에 잠들었음에도 3시간 뒤인 6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광경은 놀라웠다. 푸릇푸릇한 산과 예쁘게 가드닝 된 수국들이 나를 향해 반갑다고 인사하는 듯했다.
그제야 입실할 때 보지 못했던 주변 환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땐 여름에게 고마웠다. 해가 일찍 떠 주변을 더 오래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에 단비책방을 찾은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북스테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출입문을 이용할 수 있다)
눈을 뜨자마자 다락방 창문을 통해 산과 풀잎들이 나를 맞이했다. 창문 앞에는 조그마한 선반이 있는데, 마침 어젯밤에 읽던 책을 펼쳐 놨던 터라 아침에 본 그 모습은 일부러 꾸며놓은 듯했다.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밤새 있었던 책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어제도 봤지만 나를 만족할만한 독서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리곤 어제 살펴보지 못했던 정원과 별채를 둘러보았다.
책방지기가 책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원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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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바람은 언제 어느 때 보아도 짓궂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맞이한 바람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선율 같았다. 비와 바람은, 몰아치는 창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이 시간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장치였다. 숙소가 독채로 1,2층 모두 쓸 수 있었기에 소리가 잘 들려 충분히 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투명 유리로 돼 있는 별채에서 더 잘 느껴졌다.
별채에서 책을 읽다 유리를 한참 바라봤다. 유리창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내 눈동자도 따라갔다. 위에서 아래로 하염없이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물은 ‘왜’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을까 ‘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별채 앞 화분의 잎사귀가 물줄기의 흐름을 막고 있을 때도 꾸역꾸역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닿았다. 물론 잠깐 맺혀있던 시간이 있었지만 말이다.
'잎'이라는 장애물이 있어도 결국은 순리대로 흐르는 물줄기처럼 우리 인생도 잠깐 맺혔었다 다시 잘 흘러가지 않을까. 그리고 맺히지 않고, 계속 흐르기만 하면 지치지 않는가. 그러니 너무 서두르고 걱정하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