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언론 신뢰지수가 낮은 EU
수습 때, 동기들 중 가장 잘하는 사람을 법원으로 보낸댔고, 법원으로 배치됐다. 그리고 3개월 만에 법을 개정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취재원들을 만날때면 천상 기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연락하는 판사들이 있다.
또한 당시 한 부장판사 추천으로, 법원 내 꽃꽂이 동아리에 유일하게 기자 멤버였다.
매일 밤낮으로 약속이 있었고, 술을 못하지만 항상 2개월 치 약속이 '이 사람' 이름으로 항상 미리 잡혀있다.
덕분에 7-8년차 선배들도 안 만나주는 판사들과 친분이 있어, 내로라하는 기자선배를 도와준다.
책상 위에 판사가 꽃을 가져다 놓았지만 항상 정중히 거절한다.
감사하게 좋게 봐줘서 건강 상한다며 녹용을 받는다.
자꾸 거절해도 손에 쥐어줘서, 법원 기자실 선배들한테 다 돌린다.
이 사람은 자기의 일을 못하는가, 잘하는가?
죽어야만 그제서야 듣는 척이라도 해주는 세상...이 야만적인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다.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오요안나님의 소식을 접했을 때 바로 눈물부터 나왔다.
내 얘기랑 너무 똑같아서.
혹자는 프리랜서라 그렇다는데, 말은 똑바로하자.
이른바 언론고시를 통과한 후, 정규직 기자였던 나도 저것 그대로 당했다. 앞서 언급한 그 법을 개정하게 만드는 기사를 쓴, 3개월 이후부터 괴롭힘은 시작됐다. 나 역시 몸 상태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가서야 해당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추후에 다른 곳으로 이직하긴 했다. 이전 퍼포 덕분에)
자격지심으로 뒤틀린, 불쌍한 사람들 때문에 나를 망가뜨리긴 싫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 남들이 기준이 아닌, 내가.
무엇보다 해당 기자 외엔 모두와 잘 지냈기에, 아무리 사내 몇명 선배들이 가스라이팅해도 난 내 자신을 지켜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친했던 선배,동기도 방관자였다. 그냥 피해자만 문제 일으키는
애가 돼, 되려 이상한 취급받는다.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평판이 된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기자를 계속 하고 싶으니까. 바보라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은 힘이 없냐? 그것도 아니다. 그냥 별개의 객체로서 존재하고 싶었다. 누를 끼치기 싫었고, 당당하게 내 능력으로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참고로 언론 입사할 때 부모님 직업과 학벌까지 모두 적게한다. 그러니 입사 첫 날, 인사를 하는데 날보고 다 수군거렸다. 대놓고 너의 스펙과 배경 때문에 분위기가 그랬던 거라고 말해준 친절한 선배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일이 터졌고, 입이 돌아가 119에 실려갔다. 입이 뒤틀린 상태는 3일쯤 유지됐고, 모든 걸 stop하라는 의사의 말이 없었다면 난 지금쯤 이글을 못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도 적게 자고 하는 일에 비해 돈도 적게 받는 직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는 재밌는 일을 찾는게 어렵지 않은가?
그러니 그런 일을 찾았음에 감사하며, 또 준비한 시간들을 되내이며 버틴 것이다.
당시 화두가 '공정'이었던 만큼, 그들만의 리그에 있는 무언의 힘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쑥덕거림에 화답하는 짓이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지금껏 그 무언의 힘 없이도 별개의 존재로 잘 살아왔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기자가 된 이상 더욱 쓰고 싶지 않았다. 내로남불,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론 살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참으면 언젠가 누군가 한 명은 내 진심을 알아주겠지' '나만 떳떳하면 되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쯤되면, 그 리그의 힘을 쓰라고 권장하는 사회 아닌가? 지금의 내가, 또 이 글이 방증한다.
그들만의 리그에 속해 있다면 그 무언의 힘을 써야하고, 그 쓰임이 어느 곳보다 효과적인 곳에서 권력 감시 기능을 하고 있다.
반대로 사실상 이 언론을 감시하는 곳은 없다. 덕분에 2025년에 청탁으로 입사하는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업계다. 그러다보니 그 속에서 썩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이들이있다. 피해자가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들...수직적 구조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그렇게 '문화'라는 이름으로 지켜오고 있다.
한 선배가 그랬다.
"이 바닥은 선배면 끝이야. 억울하면 니가 선배하든가, 아님 기자 일 하지말든가"
근태와 일 못함을 이유로 드는 것까지 어쩜 그리 똑같을까, 창의성을 요구하는 곳에서 창의적이지 못하게.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가슴이 아팠지만, 솔직히 놀랍지는 않았다. MBC라고 다를까...한겨레 ㅅㅎㅅ, 세계일보 ㅂㅁㅇ, 헤럴드 ㅅㅇㅅ, 뉴스 토마토 ㅎㄷㅇ 등 곳곳에 있는데...
이번을 계기로 다시는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게 쉽게 바뀔거면 "원래 우리 문화가 그래"라는 말도 하지 않을테니.
다만 그들이 용기내 다른 곳으로 가기위해, 평판조회할 때 "언론에 있었다" 하면, 평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라도 해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원래 우리 문화' 안에 꿈을 담보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다른 사회에서까지 그러면...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그리고 큰 용기내 최초로 보도하신 기자 선배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실제로도 연락드렸는데 나를 도와주려고까지 하셨다)
덕분에 '원래'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가학적인지 다시금 느끼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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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사람의 용기도 역시 많은 방관자들 앞에선 힘 없이 무너졌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고 'ㅉㅉ', '불쌍하다' 'M이 그렇지 뭐' 하는데...묻고 싶다, 본인이 목격자면 증명할 자신있는지.
다행히도 나는 자신있다, 당당하게 증언할 자신이.
그래서 경험을 해봐야한다, 좋든 나쁘든. 세월(나이)이 아닌, 경험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 이게 나이와 관계없이 어른이 돼버린 사람들의 비밀이다.
그리고 나는 마냥 아무것도 모르고 밝거나, 다 겪어 바래져 이기적인 사람보다 경험많은 어른이 돼버린 사람이 좋다.
여기서 경험많은 어른은, 사회가 썩은 걸 알지만 본인의 고유함(밝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럼
서로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만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되면 좋겠단 바람과 함께. (바람은 바람일 뿐이란 것도 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