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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이스트(Echoist)(1)

by Outis

“아가, 빵은 손가락이 아니라 집게로 집어야 해요.”


엄마 목소리다.

날 위해 카운터 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목을 위로 쭉 빼고 카운터 너머의 일을 엿보았다.

엄마 앞에는 나 또래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애의 양손에는 막 진열대에서 꺼낸 빵이 잔뜩 들려 있었다. 엄마가 친절하게 웃으며 집게와 쟁반을 건네주어도 그 애는 멀뚱멀뚱 엄마 얼굴만 쳐다보았다. 대체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줄곧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던 한 아줌마가 얼굴을 찌푸리며 엄마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보아하니 저 아이의 엄마인 거 같았다. 아줌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짜고짜 엄마한테 따졌다.


“아니, 애가 집게로 잡기 힘들어서 그런 거잖아요. 뭘 그런 걸로 트집을 잡고 그래요?”


“아유 손님, 트집 잡으려는 게 아니라요... 손으로 잡다 보면 다른 빵에 손이 닿을 수도 있고, 위생적으로 안 좋아서요.”


“어머 웃겨, 우리 애가 얼마나 조심스러운 아인데요. 그리고, 닿았는지 봤어요? 봤나고요! 어린애라고 무조건 편견부터 갖는 거예요, 지금?”


아줌마는 이제 엄마한테 삿대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눈동자와 입꼬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유 그게, 어른이 해도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정 힘들어하면 어머니께서 집게로 꺼내 주시는 건 어떨까요?”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창피해서 그런 건지, 아줌마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줌마는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면서 꽥 소리를 질렀다.


“뭐야?! 내가 무슨 빵 하나 사는데 그렇게 벌벌 떨면서 사야 해? 당신네 빵 그 정도는 아니거든?!”


“아이고 손님, 진정하시고요...”


“진정은 무슨, 됐어요! 야, 그 빵 도로 넣어 놔. 나가게.”


“아 저... 손님, 손 닿은 건 계산을 해주셔야 하는데요...”


“허! 내가 왜 안 살 거에 돈을 내야 하는데? 지금 당신 강매하는 거야?! 안 되겠네! 리뷰에 다 쓸 거야. 여기 빵 사지 말라고. 맘카페에도 올릴 거라고, 내가!”


“엄마, 이거 안 사? 나 먹고 싶은데.”


“우리 애기, 이런 거 먹으면 배탈 나요~ 더 좋은 데 가서 사줄게, 알았지?”


아줌마는 아이가 들고 있던 빵을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아빠가 새벽부터 정성껏 구운 빵이 쓰레기처럼 내동댕이 쳐지는 걸 보고 엄마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별 그지 같은 것들이 재수 없게! 가자.”


아줌마는 말을 잃고 서있는 엄마를 한번 흘겨보고는, 울상이 된 아이의 손을 붙잡고 가게문이 부서져라 열어젖히며 나갔다. 차라앙! 심술궂은 아줌마의 손에 잘못도 없이 당한 문이 서글피 울었다.


엄마는 조용히 몸을 숙였다. 카운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가 지금 뭘 하는지 난 알 수 있었다. 분명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 떨어진 빵을 줍고 있을 거다.


나는 슬그머니 의자에서 일어나 엄마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내가 가기도 전에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올 거 없어. 넌 공부나 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물기 묻은 목소리. 엄마의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내가 가면 안 그래도 흠뻑 젖은 엄마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질 거 같아서였다.





정우네 베이커리. 우리 집은 빵집이다.


구수하고 달콤한 빵냄새에 손님들은 들어오자마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빵을 고를 때는 사람들 표정에 설렘이 가득하다. 계산을 마치자마자 못 참고 바로 봉투를 뜯는 손님도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싶으면 꼭 다시 찾아오는, 단골손님도 꽤 많은,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아, 뭐야! 어제도 다 팔렸다더니, 오늘도 없어?”


너무 맛있어도 사람은 화가 나는 모양이다.


아빠보다 한참 어린 손님이 아빠를 혼내고 있었다. 그런 손님에게도 아빠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노력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그게 워낙 인기가 있어서요.”


“그럼 더 만들면 되잖아! 자꾸 이렇게 헛걸음시켜도 되는 거야, 엉!”


“그게, 저희도 재고나 그런 걸 다 생각하고 만들고 있어서요.”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이해해 줘야 되는데? 그럼 안 팔리는 걸 덜 만들고 잘 팔리는 걸 더 만들면 되잖아! 그 정도 머리도 안 돌아가서 무슨 장사를 한다고! 퇴근하고 바로 왔는데도 없으면 도대체 날더러 어쩌란 거야!”


“아, 필요하시면 선불로 예약주문 하셔도 됩니다.”


“됐어. 내가 무슨 빵 하나 사자고 예약까지 해야 해? 으휴, 장사머리 하고는. 쯧쯧쯧...”


차라앙! 또 아무 잘못도 없는 문이 봉변을 당했다.


왜 저럴까. 속상하다.


엄마 아빠는 진상 손님들에게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근처에 두 개나 있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이유를 알고 나니 어째 더 속상해졌다.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정우야, 공부 열심히 해라. 그래서 넌 꼭 ‘사’ 자로 끝나는 직업을 가져. 아님 대기업에 취직하든지. 장사는, 절대 하지 마라.”


빵이 좋아서, 빵 만드는 게 좋아서 선택한 천직을 아빠는 내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했다.

빵냄새에 둘러싸여 자란 빵집 아들은 곧잘 꿈속에서 아빠를 따라 빵을 만드는데.


“... 네.”


나는 오늘도 카운터 구석에 앉아 열심히 공부를 한다.





유치원 자유 시간.


“가위바위보!”


“은희가 술래다!”


“싫어! 다시 해!”


“그런 게 어딨어? 빨리 술래 해!”


“싫어! 나 안 해!”


분명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술래를 하기로 했는데, 술래가 된 은희가 안 하겠다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은희를 아이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야, 빨리 일어나! 하기 전에 그렇게 정했으면 해야지.”


“너 때문에 못 놀잖아!”


“싫어! 술래 다시 정할 때까지 안 해!”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 은희와 다른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을 굴렸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이 너무 불편하다.

빨리 좀 끝났으면 좋겠건만, 은희는 계속 술래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괘씸해서라도 은희를 꼭 술래 시키려 하고 있다.


“... 그럼 내가 술래 할게.”


결국 나는 못 참고 술래를 자처했다.

모두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잠깐 서로 눈치를 주고받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역시 정우는 너무 착해.”


평소에도 곧잘 양보하는 내게 아이들은 익숙해진 듯했다.


“그럼 정우가 술래다. 다들 도망쳐!”


방금까지 도끼눈을 하고 있던 아이들도, 얌체짓을 하던 은희도, 즐겁게 웃으며 술래인 날 피해 도망을 쳤다.


아이들 사이가 다시 좋아져서 다행이다.

다행인데.


“놓쳤지롱!”


“헉, 헉...”


왠지 가슴이 답답하다.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

다들 나더러 착하다고 하잖아. 나보고 고맙다 하잖아.


그럼 된 거지 뭐.


“여러분, 조금 있으면 추석이에요. 그래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답니다.”


선생님은 커다란 바구니에서 하나씩 선물꾸러미를 꺼내어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여자 아이들은 분홍색, 남자 아이들은 파란색 꾸러미를 받았다.


쉬는 시간. 다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어디선가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분홍색 싫은데. 파란색이 좋은데.”


짧은 단발에 치마라면 질색을 하는 하민이가 입을 쭉 내밀고는 선물꾸러미를 허공에 빙빙 돌리고 있었다.


“아, 왜 꼭 여자는 분홍색이냐고. 촌스럽게.”


하민이가 계속 볼멘소리를 하자 단짝친구인 재희가 말했다.


“야, 그럼 정우한테 바꿔달라고 해. 걘 다 해주잖아.”


훤히 다 들리는데. 굳이 숨기려 한 거 같지도 않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착한 아이. 고마운 아이. 내가 기대했던 건 그런 인정이었는데.

내 이마에 찍힌 낙인은 그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걸.


“그럴까? 정우야, 너 파란색 받았지? 나랑 바꾸자.”


“......”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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