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모아장갑

by Outis

이 이야기는 밍당 작가님'말 없이 건네는 마음들' 매거진에 실린 3편의 소설을 작가님의 허락을 받고 오마주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https://brunch.co.kr/@mingdang2022/1


작가님과 가족분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작가님의 복귀를 기원하며 이 글을 바칩니다.


또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여러분께 드리는 저의 마음입니다.






“세계적인 대기업의 대표와 작은 바닷가 카페의 주인. 자넨 누가 더 행복할 거 같은가?”


수습기간의 마지막 날, 멘토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어째서?”


그 이후 수년간,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왔건만.

스스로 잦아든 생명 앞에서 나는 무력하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힘없이 늘어진 손이 침대 밖으로 떨어졌다. 가늘고 긴 다섯 손가락. 소유자의 가장 큰 분노와 원망의 대상이었음에도, 손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저 손이 아주 조그마한 주먹일 때부터, 우렁찬 첫울음에 맞춰 부르르 떨 때부터 나는 그녀의 곁을 지켰다. 조심스레 피아노 건반을 콕콕 찍어보던 작은 부리가 서서히 날개를 펼치던 모습을. 때로는 영롱한 별처럼, 때로는 어두운 심해처럼, 하얗고 까만 선율 위를 자유로이 비행하던 그 힘찬 날갯짓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녀는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왔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이 방해가 될까 봐 후원자를 연결해 주었고, 실력만으로는 우위를 지키기 힘들겠지 싶어 부모의 인맥과 정보망을 넓혀 주었다. 그녀의 부모는 다행히 내 노력에 부응하였고, 딸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키우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그녀 또한 열심히 따라주었다. 매일 이어지는 고된 연습을 불평 하나 없이 잘 소화해 냈다.

마침내 세상이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는 어린 피아니스트에게 환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주변의 기대만큼 그녀의 세상이 넓게 열렸다.


그렇게만 쭉 나아가면 되었는데.


쾅!

지친 날개 끝이 물에 젖은 걸까. 우아하고 현란하던 비행은 오래가지 못하고 거칠게 내려앉았다.

소리로 빚어진 감정은 매끈한 도자기가 되지 못하고 뒤틀려버린 점토 덩어리처럼 뭉그러졌다.


“내 손가락이잖아!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야, 왜!!”


자신의 손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보이지 않는 칼로 손가락을 베어내는 듯 섬뜩했다.

점점 커져만 가는 좌절과 분노를 주변에 거칠게 표출하면서도, 그녀는 손만큼은 상하게 하지 않았다. 아마도 피아니스트로서 끝까지 지킨,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을 거다.



그녀의 이름과 출생 연도, 그리고 영원히 멈춘 네 자리 숫자.

멍하니 그녀의 묘비를 바라보고 선 내 앞에 지령이 떨어졌다.


[당신의 멘토를 찾아가 다시 멘토링을 받으십시오.]


“... 어째서? 내가 틀렸단 거야?”


나의 멘토. 그의 질문에 나는 대기업 대표를 골랐었다.





우리는 수호천사다.

우리의 임무는 보호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어떤 천사에게 어떤 인간이 연결되는지까진 잘 모르나, 우린 우리가 맡은 인간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아쉽게도 늘 우리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인간이란 존재와 그들이 만든 사회는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지라 정해진 프로토콜이 없는 데다, 그들의 선택과 의지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실패한 것처럼.



한적한 겨울의 시골 하늘. 나는 지령에 따라 내 예전 멘토를 찾아서 눈 내린 농로길 위를 날아갔다.


“분명 이 근처라고 했는데... 어? 저기다.”


낯익은 멘토의 뒷모습. 그는 길 한가운데 웅크려 앉아 땅속에 파묻힌 돌멩이 하나를 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마침내 돌의 끝이 땅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모르고 지나가다가 걸려 넘어지기 딱 좋을 정도였다.

멘토가 내 기척을 알아채고 날 돌아보았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여! 마침 좋을 때 왔네. 자, 이쪽으로 숨자.”


재회의 인사를 나눌 틈도 주지 않고, 그는 길 옆에 무성히 난 수풀 뒤로 날 끌고 갔다. 천사라서 굳이 숨지 않아도 인간의 눈에 띄지 않을 테지만, 나는 군말 없이 수풀 뒤에 숨어서 그가 일부러 만든 돌부리에 무슨 일이 생길지 지켜보았다.


“아.”


지나가던 한 여자가 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팔을 허공에 버둥거리며 겨우 중심을 잡은 그녀는 가만히 돌멩이를 내려다보더니, 돌을 주워 손으로 탈탈 털었다. 그러나 땅속에서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흙을 돌은 꽉 물고 놔주지 않았다. 생각만큼 잘 안 되자 마음이 상한 여자는 어딘가로 휙 돌멩이를 던져버렸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어가는 돌을 보고 멘토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좋았어! 간다, 간다~”


뭔가에 부딪혔는지 돌이 떨어지며 콩! 소리를 냈다. 잠시 돌을 던진 것을 후회하던 여자가 발걸음을 돌렸다. 울타리 밖으로 한 남자가 걸어 나오는 걸 보지 못한 채.


“이봐요. 이런 걸 사람한테 던지면 혼나야 돼요, 안 혼나야 돼요?”


두툼한 겨울 야상차림에 장갑을 양쪽 어깨에 맨 남자가 머리를 문지르며 여자를 불러 세웠다. 그 모습을 본 여자는 순간 실소를 흘렸다가, 아차 하며 황급히 사과를 했다.


“죄송.......”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나와야 할 말을 안 꺼냈다기보단, 그나마 저만큼이라도 목소리가 나온 게 어디냐 싶은 느낌이었다. 밖으로 못 나오게 꾹 눌린 감정과 함께 말도 안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남자도 그걸 알았는지 더는 다그치지 않았다.


“거 참. 추워요?”


여자가 입은 트렌치코트는 살을 에는 한겨울의 바람을 막기엔 너무 얇았다. 남자는 덥석 여자의 손을 붙잡고 장작을 모아둔 곳으로 데려가더니, 모닥불을 피웠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와 연기, 커피와 담배. 한동안 남자의 목소리로만 이어지던 어색한 시간에 드디어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농사, 짓는 건가요?”


갑자기 멘토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 여자는 피아니스트였어.”


피아니스트. 과거형.

나는 두 남녀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엿듣고 있는 멘토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나의 소리 없는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더 잘해야 한다, 더욱더 유명해져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 탓에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왼손이 굳어버렸지. 결국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늘진 여자의 얼굴 위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그녀가 겹쳐 보였다. 만약 살아 있었다면 그녀도 저렇게 되었을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답답함과 자괴감에 꽁꽁 둘러싸여, 겨울이 얼마나 추운 지도 잊고서.


농사가 꿈이라는 남자와, 수천 개의 눈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여자.

아마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을 남자의 미래와, 화려한 조명을 뒤에 남기고 온 여자의 과거.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간극과 서로의 마음에 닿지 않는 언어. 둘의 생각은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질문에서도 엇갈렸다.


“손가락!”


“꿈.”


그런데 분명 빗나간 줄 알았던 남자의 말이 여자의 마음을 울렸다. 그의 다소 이상적이다 싶은 가치관은 꽁꽁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 정중앙에 가서 박히는 대신, 그 주변을 맴돌며 따스한 열로 조금씩 녹여내었다.


남자가 여자의 손에 장갑을 끼워주었고, 장갑을 낀 여자의 손이 남자를 붙잡았다. 모닥불이 꺼진 후에도 둘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자네, 저 장갑 이름이 뭔지 아나?”


카페로 자리를 옮긴 둘을 지켜보며 멘토가 뜬금없이 물었다.


“벙어리장갑, 아닌가요?”


“그랬지. 지금은 다른 이름이 있다네. ’손모아장갑’이라는.


커피잔을 감싼 두 손. 지금만큼은 미움받던 왼손도 그 온기 속에 같이 머물고 있었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뒤, 봄.


다시 찾은 그 동네에는 피아노 학원이 생겼다. 띵땅- 띵똥- 원장 선생님 한 명이 다 가르치고 운영하는 그 작은 학원에서는 조그맣고 서툰 손들이 저마다의 꿈을 펼치고 있었다.

원생 중에는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원장의 딸도 있었다. 장래 희망을 묻는 엄마의 질문에 그 아이는 활짝 웃으며 오늘도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멘토를 만나러 가기 전, 두 남녀의 첫 데이트 장소였던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유리창에 비친 빈자리들과 근심 어린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커피가 나왔고, 나는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맛을 음미했다. 산미가 돋보이는 인도네시아산 원두를 갓 볶아 내린 진하고 풍부한 향. 가게에 점차 고난을 가져온 8년의 세월도 커피맛만은, 커피에 대한 주인의 고집과 열정만은 바꾸지 못했다.

나는 카운터로 가서 쿠키 하나를 사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여기 커피 맛이 그리워서 먼 곳에서 찾아왔는데, 그동안 계속 지켜주셔서요.”


묵묵히 숫자만 내려다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한 뒤, 나는 카페에서 나왔다.


“아 정말! 네 잎 클로버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겨우 찾은 멘토는 길가의 잡초밭을 마구 헤집고 있는 아이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는 중이었다. 그것도 고양이 모습을 한 채로.

하마터면 “그게 대체 뭔 꼴입니까!”라고 소리칠 뻔했으나, 멘토가 그전에 눈치채고 재빨리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 발을 입에 갖다 대고서 ‘쉿!’하는 입모양을 만든 다음, 그는 능청스럽게 고양이처럼 울었다.


“니야오옹~”


“어? 고양이다!”


잔뜩 성을 내던 아이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아이의 손이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로 변한 멘토는 고르륵 소리까지 내며 아이의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 덕분에 완전히 화가 풀린 아이가 그를 안아 올렸다.


“헤헤, 너 진짜 귀엽다. 어? 너 배에 무늬가... 꼭 클로버 같아.”


아이의 말처럼 멘토의 배에는 세 잎 클로버같이 생긴 커다란 검은 점이 있었다. 그걸 본 아이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고양이를 살며시 내려놓고는 풀밭에 널리고 널린 세 잎 클로버 하나를 따갔다.

아이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진 후, 나는 멘토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고양이 모습을 한 멘토가 두 발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여, 오랜만이구만 그래.”


“저 애한테 설명 안 해줘도 되나요?”


“뭘?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다, 행운보다 행복이 더 소중하다, 그런 거?”


“그걸 전하고 싶으셨던 거 아니에요? 왜 말 못 하는 고양이로 변신하신 겁니까?”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경험이 더 선명한 거 아닌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때가 오면 스스로 깨달을 거야. 어? 그 쿠키 혹시 나 주려고?”


“절반만요.”


우리는 잡초밭에 주저앉아 쿠키를 나눠 먹었다. 따뜻한 봄날. 화창한 하늘.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문득 생각이 났다.


“저한테 물으셨던 그 질문이요, 답이 뭔가요?”


“뭔 질문?”


“대기업 대표랑 작은 바닷가 카페 사장, 둘 중 행복한 건 누구죠?”


“아 그거. 그때 자넨 대기업 대표를 골랐지. 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그럼 카페 사장인가?”


나는 아까 그 카페 주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쪽도 딱히 아닌 거 같아요.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에도, 소박한 자리에도, 쉬운 대답은 없네요.”


“정답이야.”


“... 네?”


“정답은 ‘그야 모르죠. 대기업 대표든 작은 카페 사장이든, 행복을 주울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거죠’라고.”


멘토가 쿡쿡 웃으며 손에 묻은 쿠키 부스러기를 탈탈 털었다. 나는 옆에 피어 있는 세 잎 클로버 하나를 따서 손에 쥐었다.


그때 어디선가 도란도란 사이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피아노 학원 원장이 딸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아이는 조그만 입으로 한창 재잘거리다가, 저 앞에 선 누군가를 발견하고 엄마 손을 잡아끌며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셋이 된 그들이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에 나는 세 잎 클로버를 갖다 대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러운 연말